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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에 관한 교육적 단상(斷想) 1
– 수운 최제우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입각한 인간상 –
이정아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어린이 인권 선언’ 10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 9일부터 11월 12일까지 ‘방정환과 21세기 세계의 어린이들’이라는 주제로 2023 세계방정환학술대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11월 11 숙명여대 르네상스 프라자에서 진행된 <제4부 연구발표> 중 ‘어린이에 관한 한국의 사상운동과 21세기 어린이운동’을 주제로 한 <제3분과>에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발표 제목은 「천도교를 바탕으로 한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에 관한 서설」이었다. 감사하게도 박상진 서울대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이 토론을 맡아 주셨다.
이날 발표된 글은 『신인간(834호)』에 실린 졸고 「소파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의 내용에서 ‘인내천 사상’을 ‘시천주 사상’으로 수정하고 발췌하여 핵심내용을 짧게 요약한 글이었다. 의암 손병희의 사상은 보통 ‘인내천(人乃天)’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래 수운 최제우의 자각은 ‘인내천’이 아니라 ‘시천주’였다. ‘시천주’는 ‘모든 사람 안에 거룩한 한울님이 모셔져 있다’는 의미이다. 시(侍)는 ‘모심’을 의미하며, 천(天)은 한울이며, 주(主)는 존칭어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소파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이 아닌 「천도교를 바탕으로 한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에 관한 서설」로 제목을 바꾸어 발표하였다. 그리고 천도교를 바탕으로 한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으로 첫째, 시천주 사상에 입각한 평등사상, 둘째, 동심천사주의와 대비되는 동심한울사상, 셋째, 보국안민을 위한 개벽정신을 들었다.
이번 <민족사랑>에 싣는 글은 방정환의 사상적 기반이 천도교에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하여 소파 방정환에 관한 교육적 단상의 첫 번째 논의이다. 교육적 단상의 기초는 어떠한 교육적 인간상’을 추구하는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추후에 ‘교육의 목적’,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교육의 평가’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소파에 관한 교육적 단상의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방정환은 3·1운동 때에 보성학교 윤익선 교장이 발행하던 『조선독립신문』을 인수하여, 오일철과 함께 비밀리에 신문을 인쇄, 배부하고, 독립선언서를 몰래 돌리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일주일간 구금되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정환은 민족의 독립을 최우선에 두고, 3·1운동 이후 세력이 약화된 천도교를 살리기 위해 천도교 청년지도층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 소파는 소춘 김기전과 야뢰 이돈화와 같은 천도교 이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까닭에 방정환은 직접적으로 서양철학을 공부했는지에 대한 것은 확실치 않지만, 그가 사상적으로 영향 받은 소춘 김기전과 야뢰 이돈화가 서양철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방정환과 연관하여 『개벽』지, 『신인간』지 등을 중심으로 볼 때, 김기전이 근대철학의 소개에 주력하고 있다면, 이돈화는 근대철학을 바탕으로 인내천주의를 표현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김기전은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사상들을 소개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니체, 러셀, 루소, 제임스, 카펜터를 들 수 있다.
이돈화는 『개벽』지의 주간이었으며 그는 이미 1910년대부터 『천도교회월보』를 통해 천도교 교리의 이론화 작업을 하였다. 이돈화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신인철학』은 “거의 최초로 서양철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해서 우리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돈화는 서양철학을 적극 수용하여 동학사상을 근대화하는 한편, 당시 문화운동의 이론적 담론을 제공하려고 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은 인격이 있는 이상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인격이란 문화에 참여할 자격으로 정해지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돈화에게 있어 “문화란 곧 개조”라 말할 때 먼저 인격의 존재를 전제하게 되고 이러한 인격상에는 평등관이 성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당신네 세상에서 지금 쓰는 그 법률! 그것이 무슨 그리 절대 엄정한 것입니까. 공평치 못한 제도에 잇는 사회, 거기서 갖은 부정, 갖은 허위의 수단을 다하여 성공이니 출세이니 하고 머리를 들고 나온 자들이 저의 동류끼리만 손목을 잡고 나아가는 지금의 사회, 말하자면 자본계급만 옹호하는 정치, 그런 세상에서 무슨 그리 법률의 절대 엄정을 말하며 그 권위의 신성 공평을 말할 수 있습니까.
위의 글은 ‘절대 엄정하지 못한 법률’, ‘공평하지 못한 사회제도’, ‘자본계급만 옹호하는 정치’에 어떤 절대적이고 신성한 공평이 있겠냐고 탄식하는 글이다. 특히 이러한 방정환의 사회비판의식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어 보인다. 즉, 자본가계급의 배만 불리는 시스템과 힘들게 일해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이 시기 방정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소춘 김기전은 사회주의를 자주 소개하였고, 방정환도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정환은 ‘노동자계급해방’으로서 천도교 교리 중에 하나인 ‘지상천국(地上天國)’에 나아갈 수 있다고 인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상천국은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는 기독교 교리와는 전혀 다르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천국을 맛보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천도교 교리에서 지상천국은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포함한 ‘민중(民衆)’ 모두가 누려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
비참히 학대받는 민중 속에서 소수 사람에게나마 피어 일어나는 절실한 필요의 요구의 발로, 그것에 의하여 창조되는 새 생은, 이윽고 오랜 지상의 속박에서 해방될 날개를 민중에게 주고, 민중은 그 날개를 펴서 참된 생활을 향하여 날게 되는 것이니, 거기에 비로소 인간생활의 신국면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항상 쉬지 않고 새로 창조되는 신생은 민중과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소파는 불공평한 사회제도에서 불합리를 찾아내고 그 대안에 대해 설토하였다. 방정환은 소수 사람에게 부가 집중된 현실을 개탄하며, ‘민중’이 지상에서 경제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생(生)은 ‘비참히 학대받는 민중과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때 ‘민중에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생활을 주는 것’을 강조한 것은‘민중의 자유’에 대한 방정환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서구적 근대교육에 근거한 ‘자유’가 인간의 ‘개성실현’이라고 한다면, 방정환의 시천주 사상에 근거한 ‘자유’는 ‘한울실현’이다. 방정환이 바라고 희망하였던 ‘새로 창조되는 신생(新生)’은 ‘사회제도와 법률, 정치의 공평’이 이루어지고 ‘민중의 자유, 즉 한울실현’이 보장된 사회이기도 하다. 이로써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방정환의 교육적 인간상이 규정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방정환이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은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에 입각한 인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