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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국힘 시의원들은 왜 굳이 욱일기 게시를 허용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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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하루만에 철회된 ‘일제국주의 상징물 사용 제한 조례’ 폐지 시도

▲ 도쿄 올림픽 당시 올림픽선수촌의 한국 선수단 숙소동 앞에서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가 응원 현수막 문구를 문제 삼으며 욱일기를 든 채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대한체육회는 숙소 외벽에 태극기와 함께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적힌 문구를 내걸었다. 2021.7.16 ⓒ 연합뉴스

일본제국주의 상징물들이 우리 눈앞에 점점 자주 나타난다. 재작년 11월 6일에는 자위대 관함식에서 한국 해군이 욱일기에 경례했다. 석달 뒤인 2023년 2월 16일에는 구한말과 일제 때 일본인들이 차지했던 서울 남산에서 나루히토 일왕(천황)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해방 이후 최초로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다음달인 3월 10일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 욱일기가 등장했다. 5월 29일에는 해상자위대 함정이 그 깃발을 달고 부산항에 들어왔다. 금년 2월 14일에는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일왕 생일파티가 서울에서 또다시 열렸다.

욱일기 게시를 위한 시도

하루만에 철회되기는 했지만, 제76주년 제주 4·3추념식이 열린 이달 3일에는 서울시의회에서 욱일기 게양을 가능케 하는 조례안이 발의되는 일이 있었다. 국민의힘 김길영 시의원의 발의와 같은 당 시의원 19명의 찬성으로 발의된 이 조례안의 제목은 ‘서울특별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이다. 조례안은 한 문장으로 돼 있다. “서울특별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를 폐지한다.”

2021년 1월 7일 제정되고 당일부터 시행된 ‘서울특별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제5조는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을 공공 장소에 설치·게시·비치하여 타인에게 노출하는 행위”,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을 타인에게 노출할 목적으로 공공 장소에서 소지하는 행위”, “시가 주관하는 사업·행사 등에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을 판매·전시 등 노출하는 행위”를 제한한다.

조례가 금지하는 일제 상징물의 의미에 관해 제2조 제1호는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와 조형물 또는 이를 연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된 그 밖의 상징물”로 정의했다. “군사기”가 맨앞에 명시된 데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조례의 주안점은 욱일기 사용을 막는 데 있다.

▲ 김길영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서울특별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을 발의했다가 하루만에 철회했다. ⓒ 서울특별시의회 의안정보 페이지 캡처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이 점점 팽창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도구를 갖고 있는 일본은 이달 11일 미·일·필리핀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일·필리핀 군사협력이라는 또 다른 도구도 갖게 된다. 자위대가 동아시아 북부와 남부에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거기다가, 전날 열릴 미일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일동맹이 역대 최강 수준으로 격상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을 추종하는 한국 극우세력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수요집회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나듯이, 지금 한국 극우세력의 화력은 통일운동세력 타파보다는 반일전선 타파에 보다 더 집중돼 있다.

이런 시국에 위의 2021년 조례를 폐지하면, 서울시 곳곳에서 욱일기가 펄럭이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내건 폐지 명분이 상당히 궁색하다. 시의회 홈페이지 ‘의안 정보’에 따르면, 이들은 폐지 조례안의 제안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시민들에게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히 함양되어 있고,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에 대한 공공사용 제한을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판단됨.

서울시민들의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하고 욱일기 등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므로 굳이 조례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법규가 잘 시행되고 있다면, 법규를 그냥 놔두는 게 상례다. 법규가 잘 시행되므로 법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보기 드문 궤변이다. 조례를 폐지해야 할 마땅한 명분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일이다.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서울시민들의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와 모순되는 진술이 ‘제안 이유’에 언급된 또 다른 문장에 나타난다.

이들은 일제 상징물을 금하기보다는 “교육과 홍보를 통한 시민들의 역사인식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제 상징물 전시를 금하지 않는 대신, 그 대안으로 시민들의 역사인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말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서울시민들의 역사인식에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하다는 앞부분과 모순되는 대목이다. 이들이 명분뿐 아니라 대안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김길영 의원은 이번 발의가 논란을 일으키자 4일 시의회에 철회를 요청했다. 발의 취지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게 이유다. 하루 만에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번 일은 욱일기를 비롯한 군국주의 상징물이 한국에 침투하는 최근 추세를 반영하는 한 장면이다.

극우세력의 힘

▲ 2021년 11월 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앞에서 1,516차 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는 가운데, 인근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피켓과 함께 태극기,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 권우성

일제 상징물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꼭 과거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현재의 위기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 일장기가 펄럭이는 곳은 일본대사관뿐만이 아니다. 극우 집회에서도 일장기가 펄럭일 때가 있다. 일제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됐다며 식민지배 청산을 방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극우세력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지표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다. 극우세력이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약자들의 생활수준이 일반적으로 낮아진다. 한국 극우세력이 일제를 미화하는 것은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측면도 있지만, 약자 억압을 합리화하는 가치관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극우세력의 일제 미화는 일반 대중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제 상징물이 한국에 점점 들어오는 것은 그것을 한국에 밀어넣는 일본의 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한국에 끌어들이는 극우세력의 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갈고리 십자가가 그려진 나치 깃발 아래서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독일 민중도 고통을 당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패망 이후의 독일은 하이켄크로이츠로 불리는 나치 깃발의 사용을 금했다. 전후의 독일이 나치 문양을 금지하는 것은 극우 전체주의세력으로부터 일반 대중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와 달리, 욱일기와 기미가요 등은 지금도 여전히 사용된다. 일본을 추종하는 한국 극우세력도 그런 상징물에 호감을 표한다. 약자를 혐오하는 극우세력이 좋아하는 그런 상징물은 한국 대중에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징물의 확산은 한국 대중의 삶이 그만큼 열악해지고 있다는 증표다.

김종성 기자

<2024-04-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국힘 시의원들은 왜 굳이 욱일기 게시를 허용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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