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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립기념관이 극우품으로?… 내부에서 터져나온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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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김갑년 독립기념관 이사의 자책성 경고

▲ 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은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독립기념관법 제1조)하기 위한 기관이다. 이런 독립기념관의 이사회에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거나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극우 인사들이 진을 친다면, 엉뚱하고 해괴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2월 1일, 박이택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이 독립기념관 이사가 됐다. 일본의 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됐다는 관점으로 독립운동 시기를 연구하는 극우단체가 낙성대경제연구소다. 그런 연구소의 책임자가 독립기념관 이사회에 들어간 것이다.

독립기념관법 제7조는 “관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이사”를 둔다고 규정했다. 이사가 15명이나 되는데 박이택 한 사람이 들어간들 무슨 힘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절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지난 3월 25일 ‘청원 24’ 사이트에 청원을 올린 김갑년 독립기념관 이사의 자책성 경고다.

고려대 교수인 그는 ‘반민족 친일 식민지근대화론 추종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이택 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철회 촉구’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자책감에 기인한다.

▲ 화상으로 인터뷰하는 김갑년 교수. ⓒ 김종성

지난 8일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김갑년 이사를 인터뷰했다. 김 이사는 설마 하는 생각을 가졌던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좀 순진했죠”라고 했다. 이어 극우세력이 독립기념관 이사회에 진출하기 용이한 지금의 구도를 상세히 설명했다.

독립기념관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9조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아래 임추위)가 설치돼 있다. 독립기념관법은 관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이사를 두도록 규정하는데 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국가보훈부 장관이 8명을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독립기념관 임추위는 이사 2명, 외부 전문가 2명, 보훈부 직원 1명으로 구성된다. 이 다섯 중 4인이 박이택 추천을 거부했다. 그냥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박이택이 지원자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임원추천위원 5인 중 4인은 경악했다”고 김갑년 이사는 말한다. 김 이사도 경악한 4인 중 하나다.

박이택을 보고 경악한 4인은 그를 심사 대상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5인 중 4인이 그랬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박이택의 독립기념관 진출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뚫고 들어갔다. 김갑년 이사는 “나머지 한 명인 보훈부 선양국장이 심사 강행을 주장”했고 결국 그 방향으로 귀착됐다고 했다.

공개되지 않은 임원추천위원회 점수와 순위

▲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된 박이택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이 지난 2월 22일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는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도 독립기념관 이사를 역임했다. 이런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극우 뉴라이트 인사가 독립기념관 이사가 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일본 측과 연대해 식민지근대화론을 유포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최고 책임자가 독립기념관 이사가 된 것은 지금이 윤석열 정권하이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이택과 함께 이사직에 지원한 후보는 총 16명이다. 그중 5명이 신임 이사로 임명됐다. 국가보훈부는 관행이라며 신임 이사 5명의 3배수인 15명을 후보로 추천해달라는 방침을 임추위에 전달했다. 지원자 16명 중에서 1명만 떨어뜨려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임추위가 15명을 선발하면 보훈부 장관이 그중 5명을 임명한다는 것이 보훈부 입장이었다.

임추위 5인 중 4인이 극력 반대했으나 박이택은 결국 15명 내에 들어갔고 이 15명의 명단이 보훈부 장관에게 올라갔다고 한다. 임추위 4인이 박이택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가 5등 이내에 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약 임추위가 매긴 점수 순서대로 15명의 명단이 작성됐고 박이택이 5위권 밖에 있었다면, 보훈부 장관이 합리적 이유 없이 박이택을 5위 이내로 끌어 올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훈부 장관이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구도가 준비돼 있었다. 김갑년 이사가 청원서에서 지적한 대로 임추위가 매긴 점수와 순위는 공개되지 않았고 보훈부 장관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장관에게 전달된 15명의 명단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성적순이 아닌 가나다순으로 되어 있었다. 그 15명 중에서 5명을 장관이 골랐던 것이다.

이 같은 임명 구조는 정권이 낙점해 둔 인물이 별 어려움 없이 이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임추위원들이 특정 인물을 반대해도 보훈부 직원이 심사를 강행하고 보훈부 장관이 성적순에 개의치 않고 임의로 임명하는 구도에서는 제2, 제3의 박이택이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 이사 임기가 2년이므로 윤 정권 임기 내에 나머지 이사직에도 일제 찬양자들이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극우세력 진입 막는 데 무기력한 독립기념관법

▲ 김갑년 교수가 청원 24에 올린 청원서 ⓒ 김갑년

이번에 임명된 5인 중에서 박이택 한 사람만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래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간 인물이 뉴라이트인 오영섭 신임 이사다. 김갑년 이사는 “박이택이 워낙 문제였기에 오영섭은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은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윤 정권하에서 홍범도를 비롯한 무장독립투사들이 탄압을 받은 데는 작년 3월 7일 첫 회의를 가진 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의 역할을 배제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들을 재심사하는 이 기구는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인사들로 채워졌다. 그 9명 중 하나인 오영섭 이사가 독립기념관 이사회에도 진입했던 것이다.

오영섭 이사는 ‘자유’의 관점에서 독립운동을 해석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반공의 잣대를 독립운동에 적용한다. 5·16 쿠데타 56주년인 2017년 5월 16일 제57회 이승만포럼에서 ‘이승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지 활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그는 이승만의 반민족적 행위를 비판하는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의 주장을 공산주의자의 공격으로 폄하했다.

3·1운동이 벌어진 1919년에 이승만은 조만간 설립될 국제연맹이 한국을 통치하게 해달라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한국을 일본의 지배에서 국제연맹의 지배로 옮기자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한국을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1918년에 종전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됐다. 그래서 한국이 국제연맹 수중에 들어간다 해도 일본의 지배를 배척하기 힘들었다.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는 임시대통령 이승만이 반민족적 청원을 한 사실을 비판했다. 이런 이동휘의 비판을 이승만이 수용하지 않은 것을 오영섭 이사는 반공 배척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2017년 5월 16일 자 <뉴데일리>는 오영섭 이사의 발표를 이렇게 소개한다.

“오 교수는 ‘1921년 1월 중 3차례의 국무회의는 세력간 대립과 갈등 양상의 압축판’이라며 ‘첫 번째 회의에서 위임통치 청원은 외교상 실패이며 그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밀려들고 있으니 대책을 강구하자는 이동휘의 주장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위임통치 청원 논쟁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인 외교독립운동의 원활한 추진과 임시정부의 주도권을 사회주의세력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영섭 이사는 이승만이 임시정부를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부한 것을 두고도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당식 집단지도체제를 경계했기 때문에 소련식 위원제를 찬동하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반공이냐 아니냐로 독립운동을 평가하게 되면,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대부분의 무장독립투쟁이 독립운동역사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비판하고 훼방한 사람들이 도리어 독립운동가로 조명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김갑년 이사가 박이택뿐 아니라 오영섭에게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위험성 때문이다.

한시준 현 독립기념관장의 임기는 지난 1월 종료됐다. 후임 관장이 선출되는 대로 그는 떠나게 된다. 박이택과 오영섭의 임명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독립기념관법은 극우세력의 진입을 막는 데 무기력하다. 정권의 뒷받침을 받을 경우에는 극우세력이 독립기념관에 무혈입성할 수 있다. 김갑년 이사는 “박이택의 이사 임명으로 크게 우려되는 사안은 현 독립기념관 관장의 후임 임명과 관련이 있다”며 걱정했다.

조만간 관장 외에 이사 3명의 임기도 만료된다. 박이택의 사례가 선례가 됐기 때문에 극우 인사들이 관장직이나 이사직에 진입하기 용이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한다는 독립기념관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고, ‘식민 지배가 좋았다’, ‘친일은 부득이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독립기념관을 점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종성 기자

<2024-04-15>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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