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2024-04-23> 연합뉴스☞ 영화 ‘파묘’로 재조명된 이름 김상덕…”젊은세대 관심 다행”
반민특위 위원장 지낸 독립운동가…’파묘’ 최민식 극중 이름
아들 김정륙 옹 “父 68주기…경찰 사과가 명예회복 첫걸음”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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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상덕(1892∼1956) 선생의 아들 김정륙(89)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고문은 최근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한 영화 ‘파묘’의 흥행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영화 ‘파묘’는 극중 곳곳에 숨어 있는 ‘항일 코드’,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의 배역 이름도 독립운동가로서 1948년 창설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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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난 김 고문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갓난아이였던 막내 여동생은 끝내 숨을 거뒀고 네 살이던 김 고문도 누나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막내가 굶어 죽고 나니 충격을 크게 받으셨죠. 평소에는 자식들이 까부는 걸 보고 기분 좋아하시던 분이 고아원 가는 길에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 계셨죠. 보름에 한 번 고아원을 찾아올 때마다 아들을 꼭 끌어안아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셨어요.”
해방 뒤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덕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반민특위 설치에 앞장섰고 위원장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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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며칠 뒤인 6월 6일 반민특위는 경찰 습격으로 무력화됐고, 이후 김상덕은 1950년 7월께 북한 정치보위부 직원 2명에 의해 납북됐다.
김 고문은 ‘월북한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안고 신문 배달과 공사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그에 대한 감시는 1990년 아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이 수여된 뒤에야 끝이 났다.
먼발치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열다섯 소년도 어느덧 구순을 눈앞에 둔 노인이 됐다.
오는 28일 아버지의 68주기를 앞둔 김 고문은 더 늦기 전에 헌법기관을 파괴하고 민족정기를 짓밟은 데 앞장섰던 경찰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중에 아버지를 뵈면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어야겠죠. 훌륭한 아버지 밑에 못난 자식을 두셔서 지금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경찰이 과거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명예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겁니다.”
최원정 기자 away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