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2024-04-26> 한겨레21☞ ‘시민의 송현공원’에서 이승만·이건희·주차장은 빼라
시민단체 연대체 ‘서울워치’, 졸속 결정된 개발 계획 공론화 요구
전문가들, 균형발전·환경·교통·조경 관점에서 재검토 필요
2024년 4월19일 오전 민족문제연구소 등 16개 독립운동·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과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김영배, 오기형 의원, 곽상언 당선자 등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 국민은 제22대 총선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 실정과 역사 퇴행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이제 윤석열 정부와 여당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더 이상 이승만기념관은 물론 독재자 이승만에 대한 그 어떤 우상화와 미화 작업에서도 당장 손을 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추진 중인 ‘이승만기념관’의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공원) 안 건립을 지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설익은 발언
같은 날 불교계에서도 이승만기념관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회장 최승태)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송현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승만은 불교계를 범죄의 소굴로 몰고 ‘정화 유시’를 발표하여 불교계를 분열과 갈등의 나락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그런데 송현광장(송현공원)은 4·19혁명 당시 경무대(청와대)로 가는 길목이며, 조계종과 태고종 (사찰) 등 불교계와 이웃하고 있다. 이런 공간에 이승만기념관을 짓는 것은 불교계를 모독하는 처사”라고 밝혔다.
이승만기념관 반대 목소리는 미국에서도 나왔다. 안창호, 박은식, 심훈 등 11명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오늘날 이승만에 대해 많은 사료에 근거한 평가는 독립운동 지도자로서 실패한 인물이라는 사실로 귀결된다. 그동안 축적된 여러 사료들은 이승만이 독립운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명백한 증거들로 넘쳐난다. 이승만을 독립운동 영웅으로 기념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이며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승만기념관 송현공원 안 건립 논란은 2024년 2월23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으로 불거졌다. 당시 오 시장은 “현재 (이승만기념관 건립) 가능성이 가장 높게 거론되는 곳이 송현광장”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앞서 2023년 11월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만원의 성금을 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역사, 불교, 천주교, 동포 단체들은 3·15의거일과 4·19혁명일에 잇따라 한목소리로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3월14일 보도자료에서 서울시는 “올해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에서 기념관 입지와 관련해 서울시에 공식 제안하거나 협의한 바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 이승만기념관의 송현동 부지 입지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원론적 의견을 밝혔다.
반대 운동에 참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기획실장은 “시민단체의 반대 운동이나 최근 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한 이후 이승만기념관 송현동 건립은 조금 주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중앙정부나 서울시가 이 사업 지원 방침을 취소하지 않고 있어 지속적인 반대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사업을 추진 중인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의 박재원 기획팀장은 “송현동은 청와대와 가까운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이어서 이승만기념관 후보지 가운데 일순위다. 이승만기념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공정히 다뤄서 국민을 통합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5월 중에 좀더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재단은 2024년 4월25일까지 건립 기금으로 120억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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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송현공원 터를 차지한 시설은 2022년 10월 발표된 서울시의 대규모 지하주차장이다. 이 지하주차장은 이건희기증관을 제외한 송현공원 터 2만5973㎡에 지하 2층으로 들어서며 주차 면수는 450면, 연면적은 2만6623㎡에 이른다. 주로 지역 주민이 아니라 관광객, 방문자를 위한 시설이다. 주차장도 이건희기증관과 시기를 맞춰 2025년 하반기까지 실시 설계를 마치고 착공해 2028년 완공될 예정이다. 두 사업이 착공되는 2025년 하반기엔 송현공원 전체가 폐쇄되고 파헤쳐진다.
두 사업이 본격화하자 시민단체들은 연대단체인 ‘서울워치’의 4월26일 정기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서울워치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서울환경연합, 문화연대, 녹색교통,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공개센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가장 먼저 문제 삼는 것은 이건희기증관 건립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문재인 정부에 의해 졸속으로 결정됐다는 점이다. 2021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가족이 2만3천여 점의 미술품 등을 기증했고, 곧바로 정부는 기존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을 활용하는 대신 이건희기증관을 따로 짓겠다고 결정했다. 송현공원 터는 2000년 삼성생명이 미국 정부로부터 사들여 삼성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다가 정부의 반대로 포기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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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차원에서도 송현동의 이건희기증관과 주차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3만7141㎡의 송현공원 터 가운데 1만㎡에 연면적 2만5천㎡ 규모의 이건희기증관, 나머지 2만6천㎡에 연면적 2만7천㎡ 규모의 지하주차장이 들어서려면 사실상 송현공원 전체가 파헤쳐진다. 이렇게 지하를 파고 거대한 구조물을 지으면 생태계나 물순환에 치명적 악영향을 준다. 최영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송현공원은 서울 도심에 녹지와 공유지가 부족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토지를 확보한 곳이다.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고 녹지를 훼손하고 지하 공간을 파는 일은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결국 거대한 콘크리트 지하주차장으로 인해 빗물이 스미지 못해 지하수와 하천이 마를 것이다. 그 위의 나무들도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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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공원 관점에서 보면 송현공원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조경학)는 “송현공원에 가보면 손댈 필요 없이 현재 상태가 가장 좋다. 백악과 인왕산, 도심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는 도시의 여백이다. 비어 있는 것이 공원의 다양한 활용에도 더 유리하다.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을 중단하고 이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어떨까? 시민들에게서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철 시시한연구소 공동소장은 “서울처럼 빽빽한 도시에선 공간의 여유가 필요한데, 오히려 오 시장은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고 한다. 오 시장이 개발하려는 송현공원과 혁신파크, 용산 철도 정비창 등 대규모 공유지를 묶어서 종합적으로 대응할 것 같다. 시민단체들이 공유지 대응 연대단체를 꾸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건희기증관을 추진 중인 문체부의 강대금 지역문화정책관은 “문재인 정부가 이건희기증관 입지를 결정할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송현동으로 결정됐다. 물론 지방에 국립미술관을 신설하면 환영할 일이고 균형발전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을 결정하는 기획재정부의 판단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현공원에 대규모 주차장과 건설을 추진 중인 서울시의 신선종 대변인은 “지하주차장에 대해 아직 시민단체에서 어떤 구체적 요구가 온 것은 아니다. 의견이 서울시에 온다면 해당 부서에서 검토해 대응하겠다”며 “이승만기념관은 추진 주체인 기념재단에서 제안이 온다면 논의해 검토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 려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