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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네스코 기록유산 4·19, 세계 시민혁명의 교과서 되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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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④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지난해 5월19일 ‘4·19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했다. 연합뉴스

오유석 | 성공회대 연구교수(사회학)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지난해 5월19일 ‘4·19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했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넘어, 4·19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이 기록은 1960년 2·28 대구 학생시위부터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까지 그 원인, 전개, 그리고 혁명 이후 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등 혁명의 전후 과정과 관련한 것들이다. 4월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이 생산한 문헌, 녹음·영상, 구술, 사진, 수기 및 편지, 일기, 박물, 신문, 정부 공문서, 유인물·선언문·성명서 등을 포함한다. 현장 사진기록과 수기들은 지금도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우쳐준다.

1960년 4월19일 그날,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독재의 하수인이 된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대학생, 시민은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이렇게 피로 세운 용기의 기록이 오늘날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4·19혁명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15년, 냉전이 빚은 한국전쟁 종료 이후 7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나 성공한 혁명으로, 세계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 됐다. 한국이라는 분단된 최빈국에서 비롯한 이 혁명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 ‘더 타임스’에 실렸던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비관적 시각을 깨뜨렸다.

이 기록물은 당시 학생과 시민이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는지, 어떻게 불의에 맞서 싸웠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혁명은 비폭력적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학생 운동과 시민 저항의 모범이 되었다.

4·19혁명은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민주화의 제2차 반전’ 시기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없었던 불모지, 한국에서 일어났다. ‘아시아 최초의 반독재 민주주의 혁명’이며, 1970년대 이후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일으킨 제3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신호탄으로, 그 영향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터키, 대만, 남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독재정권들은 자국에서도 비슷한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하지만 4·19혁명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정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2017년 촛불시위는 모두 4·19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4·19혁명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교육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함을 상기시켜준다. 이 기록물은 민주주의와 시민혁명의 살아있는 세계 교과서로서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2024-04-29> 한겨레

☞기사원문: 유네스코 기록유산 4·19, 세계 시민혁명의 교과서 되다 [왜냐면]

※관련기사 : ‘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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