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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송현공원에 이승만기념관 대신 ‘4월혁명 역사관’ 세우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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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 64주년을 맞은 지난 3월15일 오전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등 15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이승만기념관 반대 각계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⑤

한상권 | 덕성여대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의 ‘역사 쿠데타’ 시도에 힘입어 이승만 우상화 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승만기념관 건립 모금에 윤석열 대통령이 동참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 종로구 송현공원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시정 질문에서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네”라며, “가능성이 제일 크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공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답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독재자를 기리는 기념관을 세우면 안 되겠지만, 특히 송현공원은 안 된다. 이곳은 4월혁명의 ‘장소성’을 간직한 역사 공간이기 때문이다. 송현공원은 이승만 정부가 민주시민을 향해 발포한 중앙청(지금의 광화문)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공터다.

1960년 4월19일 중앙청 앞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 21명과 부상자 172명이 발생하였다. 사망자 가운데 구순자(당시 16)와 최신자(16)는 덕성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들의 모교인 덕성여중이 바로 송현공원과 인접해 있다. 이처럼 학살 현장의 지근거리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은 광주 금남로에 전두환 기념관을 짓겠다는 발상과 진배없다.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에 있는 구순자·최신자 학생의 묘비에는 “1960년 4월19일 중앙청 앞 시위 중 총상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의 피격 시간을 오후 5시50분께로 언론은 보도하였다. 두 여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날 오후 5시 이후의 발포는 경찰의 발포 가운데 가장 잔인한 것이었다. 시위대의 파상 공격에 수세에 몰렸던 경찰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오후 5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부터였다. 경찰은 그때까지의 수동적인 방위 태세에서 능동적인 공격 태세로 전략을 바꾸었다. M1총, 카빈총,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병력은 기관총까지 갖춘 장갑차 2대를 앞세우고 일렬횡대로 중앙청 앞에서부터 시위 군중들에게 맹렬한 일제 사격을 퍼부으면서 세종로까지 밀고 나왔다. 이 바람에 시위 군중은 말할 것도 없고, 길 옆에서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수없이 쓰러졌다. 심지어 경찰은 달아나는 학생들의 등에 마구 총을 쏘기도 했다.

두 여학생도 경찰의 소탕·섬멸 작전에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두 넋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꽃이 되었다. ‘사상자 기록’에 적힌 최신자 학생의 사망 원인은 ‘왼쪽 가슴 관통’, 구순자 학생의 사망 원인은 ‘두개골 골절’이다. 이들이 가슴과 머리를 맞고 사망하였다는 사실은 경찰의 발포가 정당방위가 아니라 살의를 품은 수평 사격이었음을 말해준다.

4월혁명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첫 민주 혁명이다. 또한 식민지 체제를 경험한 제3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터져 나온 시민혁명이자 아시아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증명한 기념비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4·19혁명 기록물’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정부는 대구 2·28민주운동과 대전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마산 3·15의거와 함께 4월혁명을 이끌어낸 역사로 기념하고 있다. 4월혁명은 헌법 전문에까지 올라간 민주화운동이다. 이참에 송현공원에 ‘4월혁명 역사관’을 세워, 민주공화국의 주권재민을 외치다 희생당한 영령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민주주의 교육공간으로 만들자.

<2024-05-01> 한겨레

☞기사원문: 송현공원에 이승만기념관 대신 ‘4월혁명 역사관’ 세우자 [왜냐면]

※관련기사 : ‘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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