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전정호 작가 2인전 내달 15일부터
베를린 핫플 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서
‘저항으로서 민중미술’ 주제로 총 20여점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정권에 이르기까지 서슬퍼런 군부독재정권 아래 두 미술인은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농민과 노동자 대 권력자와 그 권력에 줄을 대는 자본가를 위시로 한 기득권층을 한 화폭에 대비적으로 투영해 당시 권력층의 눈엣가시로 부각돼 결국 체포돼 투옥됐다. 한배를 탄 동지이자 화가였던 이상호·전정호 작가가 44주년 5·18민중항쟁을 맞아 민중미술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다. 2인전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위반(이적 표현물) 1호 예술가로 국내에만 있고, 특히 광주가 당당하게 한 축을 형성하고 주도해온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우리만의 장르를 독일인들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번 2인전은 독일 Art5예술협회 공동대표 유재현씨가 총괄디렉터를 맡고,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대표인 정현주씨가 광주 큐레이터를, 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 소속의 베른하르트 드라즈가 베를린큐레이터를 맡아 진행된다. 정부나 지자체 등 관의 일절 지원없이 민간 주도로 마련된 전시는 오는 6월15일 개막해 7월7일까지 독일 베를린 핫플인 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에서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된다. 출품작은 이상호 작가가 통일과 광주정신을 주테마로 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1995) 등 10여점, 전정호 작가가 전쟁 및 환경과 생명을 주테마로 한 목판화 ‘전쟁을 멈춰라’(2022 목판) 등 10여점 등 총 20여점이 출품된다.
이 작가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대결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 나라이자 한 핏줄이라는 점을 형상화한 ‘통일염원도’(1987)를 비롯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담은 작품, 5·18과 대동세상을 투영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전정호 작가는 국가폭력인 전쟁과 반독재를 밀어내고 반민주주의 행태 타도 및 환경과 생태 등 두가지 주제로 나눠 접근한다.
이 작가는 통일 열차를 타고 지도자와 민중들이 백두산을 넘어가는 희망을 투영하는 동시에 광주를 알리기 위한 5·18민중항쟁과 당시 대동세상을 구현한 주먹밥을 형상화하는 가운데 계엄해제를 외치는 시위대를 총살하는 ‘학살’ 같은 작품이 포함됐고, 전 작가는 화석연료나 바다환경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안들을 포함했으며 미얀마 군부독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및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민주주의 탄압을 상기하는 작품을 망라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 두 작가는 1987년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공동작업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1호 예술가 출신으로. 이 작품의 원본은 1987년 6월 항쟁 후 광주 북구 유동 YWCA에서 열린 대동한마당에서 선보인 뒤 민중미술작가들이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모여 열린 ‘민중해방과 민족통일 큰 그림 잔치’에 출품, 선보이던 중 종로경찰서로부터 이적 표현물로 지정됐다. 그후 제주 신탁은행에서 전시 중 탈취당해 원본을 찾지 못했다. 그후 원본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검찰청에서 소각처리했다는 답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2005년 이 작품을 복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는 6m50cm 크기로 민중미술계 유서깊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제작, 배포됐다는 프레임을 씌워 이적 표현물로 낙인을 찍었다.
미국의 성조기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있는 스패너를 쥔 노동자와 성조기를 찢고 있는 농민,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머리에 방뇨하고 있는 백두산 천지에 서 있는 미륵동자 등이 등장한다. 그림 전면에는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 탄광노동자, 물고문 받는 운동가, 미국의 미사일 등이 그려져 있고, 화면 가장자리를 장식한 꽃은 진달래이다.
공안 당국은 대통령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한편, 민주주의를 전복해 공산국가를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봤다. 검찰은 백두산 천지에서 아이가 소변을 누고 있는데 그 아이를 김일성으로 해석했고, 백두산 위에 휘날리는 진달래를 북한 국화라고 우겼다는 설명이다. 참고로 북한 국화는 목란이다.
이 두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제주 신탁은행에서 작품을 탈취를 당하는 동시에 수배가 떨어져 무방비 상태에서 검거가 됐는데 그것이 최초로 국가보안법 사건이 됐다”며 “애초 제작했던 의도는 미륵세상을 염원한 것으로 미륵 동자가 나타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에서 제작했다”고 술회했다.
이 작품은 조선대 미술운동사 첫 전시 때 선보인 뒤 일본 교토시립미술관에서 두번째로 선보였으며, 이번이 세번째로 선보이는 자리다. 이 두 작가에 의해 유럽에서 선보일 민중미술은 1989년 성완경씨가 뉴욕 전시 당시 민중아트로 번역해 쓰던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주 민중미술을 통해 유럽 민중미술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재현 총괄디렉터는 한국과 독일이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분단역사라는 공감대가 있어 비교하기 쉬운 지점들이 있다는 반응이다. 유 총괄디렉터는 “두 작가분들이 유럽에 오는 게 처음이다. 유럽 내 어떤 농민 전쟁이나 국가폭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장소가 독일 나치 역사를 가졌던 곳이자 내년이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이 두 작가분들이 국가폭력에 대한 스토리나 통일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이슈들을 잘 담아가 이후 광주나 한국을 망라해 독일이나 유럽쪽에서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6월9일 출국해 한달간 머무른 뒤 7월9일 귀국할 예정이다. 오픈식은 6월14일 오후 7시.
고선주 기자
<2024-05-14> 광남일보
☞기사원문: 국보법이 옭아맨 ‘민중미술’ 독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