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치하 한인·독립운동가 희생자 유해봉환 추진위원회, 10일 국회서 기자회견
“소련 전역에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숙청이 자행됐다. 그 과정에서 김한, 김단야, 박진순, 한창걸 등 대표적 한인 독립운동가, 항일혁명가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일제의 첩자’로 몰리거나 정확한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총살됐다.”
‘스탈린 치하 한인·독립운동가 희생자 유해봉환 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가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위와 같이 주장한 뒤 ‘스탈린 대숙청’ 시기에 소련에서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 봉환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학영 국회의원, 김용만 국회의원, 한인·독립운동가유해봉환추진위원회, 6.10만세운동유족회, (사)겨레하나, 권오설·권오상기념사업회 ,김단야기념사업회(준),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시민모임 독립, (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약산김원봉과함께, 이재유선생기념사업회,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등이 합동으로 주최했다.
우선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표한 ‘스탈린 대숙청 시기 한인 집단희생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료로 이름이 확인되는 희생자만 총 1만478명이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1932년 만주국을 세운 데 이어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하자, 스탈린은 1938년까지 내부 단속 등의 이유로 대숙청을 감행했다.
당시 소련에서는 70만 명 이상이 사형됐고, 20만 명 이상이 추방 또는 강제이주 당했으며, 80만 명 이상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인들도 일본에 협력할 수 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이날 위원회는 “1937년 소련 원동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 17만 명 이상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16,000명 이상의 한인들이 추위와 질병과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재소 한인들은 강제 이주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강제 이주 직전 연해주 한인 엘리트 약 2500명이 체포됐고 또한 소련 전역에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숙청이 자행됐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김한, 김단야, 박진순, 한창걸 등 대표적 한인 독립운동가, 항일혁명가들이 총살을 당한 것이다.
추진위는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 조치는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부터 시작됐으며, 일부 한인 희생자들도 1956년부터 복권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대규모로 복권이 이루어진 것은 1980년대 고르바쵸프 등장 이후이며, 소련이 해체를 앞두고 있던 1991년 ‘정치 탄압 희생자들의 복권에 대한 법령’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이후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복권 작업이 계속됐지만 희생자 복권은 단지 문서상으로만 이뤄졌을 뿐, 진상 규명이나 유해 발굴 및 유족으로의 인계, 한국으로의 인도 작업 등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당시에 수많은 국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됐지만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한 진상조사 및 유해발굴 봉환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추진위는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당시에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 정부는 과거 스탈린 치하 우리 한인독립운동가 정치적 학살과 관련해 가해자로서 마땅히 그 책임이 있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와 관련한 진상조사의 협조와 유해봉환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현재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대일항쟁기강제동원 피해지원’ 업무를 진행하면서 그 일환으로 ‘강제동원 한인 희생자 유해 봉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남태평양 타라와섬에 해군 군속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최병연씨의 유해가 80년 만에 봉환됐다.
글 김병기 기자·사진 권우성 기자
<2024-06-10>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