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송현광장)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적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반대하는 쪽을 설득하는 일도 민간단체인 건립추진위원회 쪽으로 미뤘다. 지난 2월 서울시의회 답변이나 같은 달 기자간담회 때의 발언 강도에 견주면 추진 의지를 확연히 누그러뜨린 모습이다.
오 시장은 11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과 관련한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의 질의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측으로부터 이 장소(송현광장)가 최적지라는 요청을 받고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국민적 논의가 이뤄질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 결과 여론이 형성되는 데에 따라 이곳(송현광장)이 가장 적지냐 하는 논의가 시 차원에서 있어야겠고, 의회 차원에서도 의견을 모아야 일이 진척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오 시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 2월23일 시정질문 당시 답변과 결을 달리한다. 오 시장은 당시 이승만기념관이 건립돼야 한다고 보느냐는 최재란 민주당 시의원의 질의에 “네”라고 답하면서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광장”이라고 했다. 나흘 뒤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해 송현광장에 이건희미술관 외엔 아무것도 못 짓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송현광장은 굉장히 넓다. 건물 두개가 들어가도 전체의 5분의 1 정도다. 그것도 이건희미술관은 동쪽 끝에, 이승만기념관은 균형 잡힌 배치를 위해 서쪽 끝에 들어간다”고 답했다. 이승만기념관의 송현광장 건립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발언이었다.
오 시장은 반대 의견을 설득하는 문제도 건립추진위원회 쪽에 공을 넘겼다. 오 시장은 이날 “대표적으로 불교계에서 (송현동 이승만기념관에) 반대를 표명하고 계셔서 얼마 전 건립추진위 쪽에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이 계시니 직접 협의해주실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송현광장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가장 큰 장해물인 불교계 반발을 무마하는 일을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기구인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 미룬 것이다. 서울시나 오 시장이 송현동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위해 굳이 앞장서 총대를 메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지난 2월 시정질문 때는 “어느 정도 송현동으로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서울시가) 불교계와 협의도 하고 설득이 필요하다면 설득도 하겠다”고 했었다.
오 시장의 이런 기류 변화와 관련해 역사학계 등에선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송현동 이승만기념관은 대통령실과 여권, 보수 진영이 밀어붙이니 할 수 없이 오 시장도 총대를 멨던 것인데, 총선에서 참패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추락했기 때문에 기세가 꺾인 것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민감한 것은 국민 여론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 쪽은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2월엔 (오 시장 발언에서) 송현동이 갑자기 구체화되니 (송현동 기념관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들 뜻을 묻고 하겠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2024-06-11> 한겨레
☞기사원문: 이승만기념관 건립 물러선 오세훈 “여론 지켜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