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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관술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서에 연명해 주십시오!
독립운동가 이관술 선생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가장 가혹하게 탄압하고 착취했던 1930~40년대 민족말살통치, 전시총동원체제 시기에 국내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끝까지 맞서 싸운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 중 한 분입니다.
울산 지역 대지주 부잣집 장손 출신으로서, 서울과 일본 유학을 마친 수재이자 당대 최고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며 얼마든지 편안하고 유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나라의 독립에 앞장 선 이관술 선생은 해방 직후 실시된 최초의 여론조사에서 여운형, 김구, 이승만과 함께 ‘새로 건국될 때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민족의 어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판사 위폐사건’에 휘말려 한갓 위조지폐를 찍어내고 국가의 경제를 파탄시킨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행법을 위반하여 불법적으로 60일 이상 구금한 상태에서 경찰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허구로 날조된 사건이었습니다.
친일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1심 재판부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판결문을 작성하여 유죄판결을 내렸고 이관술 선생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2심 재판부가 이를 기각해 버림으로써 합법적으로 재판 받을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이던 이관술 선생은 1950년 6.25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보도연맹원 및 형무소수감자를 학살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불법 처형 명령에 의해 1950년 7월 초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으셨습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와 2015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관술 선생을 학살한 건 불법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우리들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모시지는 못할망정 조작된 사건을 통해 그분의 목숨과 명예를 앗아갔던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이제라도 바로 잡고, 그분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역사적인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이관술 선생님의 재심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이를 위한 탄원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기념단체 회원,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일동
[탄원서] ☞ 재판부 제출 탄원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