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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허형식 장군의 기마 동상이 세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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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칼럼-23] 허형식 장군 82주기 추모식 거행

▲ 허형식 장군 ⓒ 중국 민족출판사 / 박도

2024년 8월 3일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겸 총참모장을 역임하신 허형식 장군 순국 82주기 기일이다. 허형식 장군은 대한제국 시절 13도 창의군 군사장을 역임하신 왕산 허위 선생의 집안 조카로서 1909년에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나셨다. 왕산 허위 선생 순국 이후 집안 가솔들은 일제 등살에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15년 허씨 일족들은 북만주로 이주하였다. 이후 북만주에서 항일운동 일선에 투신하여 가열차게 투쟁한 결과 장군의 나이 31세 때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과 제3군장에 오른 만주 제일의 항일 빨치산이었다.

1940년대 초 일제의 토벌이 극심해지자 대부분 항일 빨치산들은 러시아로 피신했다.

하지만 허형식 장군은 동북의 인민들을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외세에 의존, 목숨을 구걸치 않고자 끝까지 북만주의 동포를 지키며 반일 활동을 했다.

그런 가운데 1942년 8월 3일 새벽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송령 골짜기에서 일제 토벌대의 기습을 받자 당신 부하는 살리고 당신은 살신성인, 장렬하게 전사했다.

지난 8월 3일 구미시 임은동 허 장군의 생가터 앞 왕산기념공원에서 열린 82회 추모제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부(지부장 박찬문) 주최로 열린바, 뜨거운 염천에도 허장군 조카 허창수씨, 허형식장군기념사업회 장기태 회장, 전 동북아 역사재단 연구위원 장세윤 박사 등 다수의 귀빈이 참석하여 장군의 행적을 드높이 기렸다.

▲ 허형식 장군 82주기 추모식장 ⓒ 전병택

백마 타고 오는 초인

나는 1999년 여름 중국 일대 항일유적지를 답사하던 중,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의 행적을 알게 된 후, 크게 감동받은 바 있었다. 그러하여 그 이듬해인 2000년 여름, 홀로 북만주를 헤맨 끝에 장군의 희생지를 찾아 기념비에 들꽃을 드리고 귀국한 바 있었다.

귀국 후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오대산 월정사에 입산하여 허형식 전기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016년 11월에 민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을 발간했다. 이후 고향의 뜻있는 후배들이 허형식장군기념사업회를 구성하여 해마다 장군 기일이면 장군의 생가 터 앞 왕산공원에서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그 언젠가 우리나라가 명실상부, 외세로부터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로 발돋움할 때 허형식 장군의 기미 동상이 고향 구미 금오산 들머리에 우뚝 세워지리라 믿는다.

이육사 시인이 만주기행 중 백마를 탄 외척 허형식(육사 어머니 허길의 사촌) 장군을 만난 뒤 그를 흠모하여 지었다는 <광야>의 결구로 이 기사를 갈음한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허형식 장군>표지 ⓒ 눈빛출판사

박도 기자

<2024-08-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허형식 장군의 기마 동상이 세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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