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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소년 이봉창이 다닌 문창학교 위치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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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봉창이 다닌 사립문창학교의 소재지 최초 확인
청파동 골목길 안쪽의 미용실 자리(청파동 2가 5번지)가 바로 그곳

사립문창학교 터의 현재 모습(청파동 2가 5번지 일대)
사립일반학교 일람표 (『경성번창기』, 1915, 133~136쪽)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폭탄투척의거를 일으키고 순국한 이봉창 의사(李奉昌 義士, 1901~1932)가 소년시절에 다녔던 사립문창학교(私立文昌學校)의 정확한 소재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곳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홍병기(洪秉箕, 1869~1949) 선생이 교장(校長)으로 있던 학교였으며, 애국지사 신숙(申肅, 1885~1967) 선생 역시 설립 초기에 학감과 교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로도 주목이 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용산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활동유적지의 현황과 관련사료를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서 사립문창학교의 소재지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내용을 새롭게 발굴하였다고 밝혔다. 『경성번창기(京城繁昌記)』(1915)에 수록된 「사립일반학교 일람표」에 따르면, 이 학교의 소재지 주소가 바로 ‘청엽정 2정목(靑葉町 二丁目, 지금의 청파동 2가) 5번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12년 9월에 작성된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국가기록원 소장자료)를 보더라도, 208평(坪) 규모에 달하는 이곳 대지의 소유자가 나중에 손병희에게서 천도교 교주의 직임을 물려받는 박인호(朴寅浩, 북부 가회방 재동)로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관계는 이 학교가 1910년대에 천도교에서 인계하여 운영했던 각종 학교의 한 곳이었다는 점과 그대로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 학교는 최초에 사립광성학교(私立廣成學校; 공덕리 소재)의 지교(支校)로 만들어졌다가 이내 이를 확장하여 1909년 2월 4일에 정식설립인가(설립자 이순하)를 받아 4년제 초등과정으로 개편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무렵에 나온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관련기사들에는 이 학교의 위치가 원래 청파 하마비동(靑坡 下馬碑洞, 지금의 효창동과 원효로 1가에 걸친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 대해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특임연구원은 “하마비동에서 청엽정 2정목 쪽으로 이전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이봉창 의사 스스로 제5호 신문조서(1932.2.9.)에서 ‘경성부 청엽정의 사립문창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진술한 만큼 그가 이 학교를 다니던 때와 졸업하던 시점(1915년)에는 ‘청엽정 2정목 5번지’에 이미 옮겨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빌라형 복층주택과 개인가옥(1층에 미용실)이 들어서 있으며, 이곳과 딱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터를 잡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옛 지적도를 살펴보면 주변의 골목길 형태와 같은 기본지형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있고, 특히 이봉창 의사가 통학로로 사용했던 공간구조를 그대로 되살려 이 일대를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에 새로 확인된 사립문창학교 터의 원위치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서둘러 표석 형태의 안내판 설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봉창 집터(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 인접지)~이봉창 묘소(효창원 삼의사 묘역)~이봉창 통학로(식민지역사박물관 옆 골목)~사립문창학교 터를 함께 아우르는 역사탐방행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전했다.

[참고자료]

사립문창학교의 소재지명 표기에 관한 여러 용례들

1912년 9월 작성 『토지조사부』(국가기록원 소장자료)
『경성부내 사립학교현상일반(1910년 10월말일 현재)』
사립문창학교 위치표시(청엽정 2정목 5번지)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 1929]

표시는 현재 식민지역사박물관 자리
– 파란색 줄은 이봉창 의사 통학로(추정)를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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