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한겨레] ‘사도광산 등재’ 시민사회가 홍보 기회로 역이용해야 [왜냐면]

122
민족문제연구소, 정의기억연대 등이 속한 시민단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부정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관련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강철구 |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유네스코 등재 대상 유산이란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을 말한다. 만일 사도광산이 정말로 우리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그 인류에는 우리 한국인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된 분들 중 아직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희생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이 부분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특히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도 지난 6월 사도광산과 관련해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권고하며 보류를 결정해 양국 협상에서 한국이 우위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기회를 우리 정부와 외교부는 결과적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국회가 7월25일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까지 채택했는데도 ‘강제동원’이 빠진 채 합의했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은 7월28일부터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조선인 출신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환경의 역사 전시와 추도식도 하겠다고는 하지만, 일본 정부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약속 사항을 성의있게 이행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사도광산 내에 승용차 157대와 관광버스 3대가 주차할 수 있는 전체 면적 1000㎡(330평) 규모의 전시관이 아닌, 사도광산에서 약 2㎞나 떨어진 외곽지역에, 그것도 승용차 20대 정도의 주차공간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등재 범위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기 어려운 곳에 전시하겠다고 한다. 이건 마치 광화문 표지판을 일산에 갖다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일본은 등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구색만 갖추는 정도일 뿐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군다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권고는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일본은 2025년 한일수교협정 60주년이 지나면 슬그머니 없앨 수도 있다. 이런 일본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었을 외교부가 일본과 합의했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이번 사도광산 등재 합의 당시에 우리 정부는 군함도 문제의 불이행 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가져왔어야 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무려 7년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서 유엔에서 경고까지 받았는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한국과의 신의를 가벼이 저버린 행위이다. 그러니 지금의 사도광산 약속을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처럼 번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불신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번 사도광산 등재를 기회로 삼아 강력히 주장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일본은 사도광산의 합의로 군함도 관련 약속 미이행마저 한국 정부가 묵인해줬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 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 및 이에 관심을 가진 정치인들과 협력하여 지속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실상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등재를 했다 해서 전 세계 관광객들이 교통도 불편한 곳에 배를 타고 가서 관광할 정도의 대단한 유산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내수 관광이 상당히 활성화된 나라기 때문에 사도광산 방문객 대부분은 일본 관광객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따른 조선인 노동력 동원 기록과 역사기록이, 우리의 손이 아닌 일본에 의해 알려질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군함도와 달리 어떻게든 일본의 이행 약속을 반드시 지키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일본 사회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니가타영사관을 통해, 그리고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등과 같은 일본의 시민단체 등과 협력관계를 맺어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기록을 적극적으로 일본 사회에 홍보해야 한다. 우리가 하기 힘든 것을 오히려 일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역이용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더 이상 일본 사회가 방관자나 협조자가 되지 않도록 활용해 나가는 다양한 지혜를 찾아냈으면 한다.

<2024-08-05> 한겨레

☞기사원문: ‘사도광산 등재’ 시민사회가 홍보 기회로 역이용해야 [왜냐면]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