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립투사·강제동원 피해자 후손
“역대급 오염된 광복절…제2 독립운동이라도”
“보수정권, 전엔 국민 눈치는 봤는데…선 넘어”
“할아버지가 ‘이놈들아, 내가 이 꼴 보려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했느냐’며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 분노하며 눈물 흘리실 것 같아요.”(지청천 장군 외손자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억울하다. 나라 없이 억울하게 끌려가 일했는데, 나라가 있는데도 대통령이 있는데도 억울하다’ 아버지라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죠.”(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정창희 어르신 장남 정종건씨)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79번째 광복절을 둘러싼 살풍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한겨레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과 일제 강제동원·원폭 피해자 고 정창희(2012년 사망)씨 장남 정종건씨를 만났다. 일제 시대 투사와 피해자의 자손은 뜨거운 볕이 쏟아지는 2024년 여름 거리에서 1인 시위, 기자회견을 벌이며, ‘우리 정부’와 싸우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흉상 철거 논란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배상 제시,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친일 의혹 인사의 전면 배치에 이르기까지. 참담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서야 했던 순간을 곱씹으며 이들은 “역대급으로 오염된 광복절”이라고 낙담했다. 그리고 “제2의 독립운동이라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외할아버지 흉상 철거 추진 소식을 듣고
이준식 전 관장은 광복군을 이끌며 항일 투쟁을 벌인 외할아버지와 여성 광복군으로 활약해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린 어머니 지복영 선생을 보며 자연스레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13일 오전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과 함께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겨레와 만난 그는 “(정부의 친일 행보로) 이렇게 오염된 광복절이 있었나 싶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 참담한 마음이 들어 돌아가신 선생님들을 뵐 낯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외할아버지 지청천 장군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맡아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지난해 8월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관련 이력 등을 문제 삼아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독립군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 철거를 추진했다. “소식을 들은 밤 분하고 부끄러워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 분들의 흉상은 단순한 흉상이 아니라, 독립군이 대한민국 육군의 뿌리라고 인정하며 세운 상징적 조처였어요.”
논란 끝에 흉상 철거는 무산됐지만, ‘분하고 부끄러운 밤’은 이어졌다. 지난달 뉴라이트 계열 김주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에,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지난 6일엔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는 논란을 산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됐다. 이 관장은 “독립운동을 지우고 그 자리에 친일 역사를 집어넣는 것이 뉴라이트의 오랜 숙제였는데, 현 정부에서 하나둘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고 불안을 토로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그는 특히 ‘독립기념관장 인사 참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관장은 “1982년 일본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서술을 넣어 왜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들이 분노했고, 모금 운동을 벌여 생긴 게 독립기념관”이라며 “독립기념관장의 취임 후 첫 마디가 ‘친일 인명사전 손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독립기념관장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아버지를 웃음거리 만들 수 없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이자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피해자인 고 정창희씨 장남 정종건(67)씨도 거리에서 정부 규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3월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한 뒤부터다. 경기 안산 자택 근처에서 만난 정씨는 “아버지의 투쟁은 지켜봤지만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다 ‘제3자 변제 배상’이 아버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생각에 법원 공탁을 거부하는 유족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에는 일본에 직접 사과를 받기 위해 도쿄 일본제철 본사를 직접 찾아 갔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국에서 승차권을 인쇄하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청년이었지만 21살 되던 1944년, 일본 히로시마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동원됐다. 일본인들에게 구타 당하며 파이프 용접을 했다고 한다.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돼 동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맞닥뜨렸고, 자신은 피폭됐다. 해방 뒤 한국에 돌아왔지만 위통·고혈압·심장병에 시달려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정씨는 “아버지는 편찮으신 와중에도 강제동원 원폭 피해자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었고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년 만인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첫 결실이, 일본의 책임을 면제하고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피해를 대신 변제하는 ‘제3자 변제 배상’이라는 것, 더욱이 이를 한국 정부가 제시했다는 사실을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근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 표현이 삭제된 과정에서 정씨는 ‘나라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그냥 역사 속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요. 일본이야 그렇다 쳐도 우리나라 정부라면, 대통령이라면, 일본이 강제동원 지우기를 못하게끔 막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제 대통령도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광복 79주년, 이제는 일흔을 바라보게 된 투사와 피해자의 자손은 좌절을 딛고 다짐했다. “그동안 보수 정권은 그래도 국민 눈치는 봤는데 지금은 국민 여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선을 넘습니다. 제2의 독립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아요”(이 전 관장)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살아있는 역사는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정종건씨)
고나린 기자 me@hani.co.kr
<2024-08-15>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