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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정권의 역사 쿠데타, 국민 역린 건드렸다” 전 독립기념관장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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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혹평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역사학자인 그는 윤석열 정부와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강하게 비판했다.

8월13일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후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시사IN 신선영

“독립운동가 후손은 큰 상처를 입었고 역사학자들은 기막혀한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68)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두고 한 평가다. 그는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다. 지청천 장군은 쌍성보 전투 등 만주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다. 해방된 뒤에는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무임소장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청천 장군의 딸이자 이준식 전 관장의 모친인 지복영 선생 또한 광복군으로 활동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이준식 전 관장은 일제강점기 농민운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학자이기도 하다. 지청천 장군의 후손이 무장투쟁이 아닌 대중운동을 전공한 까닭을 묻자 “어머니나 외할아버지의 역사를 연구하면 편견이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준식 전 관장이 독립기념관장 임기를 마친 때는 2021년 1월이다. “퇴임하며 나의 공적 활동이 끝나고 역사와 관련된 활동도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상황은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정치세력이 끝난 줄 알았던 역사 논쟁을 일으켰다.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때 이 전 관장은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유공자 후손, 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낸 목소리였다. 이 전 관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대해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며 혀를 찼다.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이준식 전 관장을 만났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대해 알았나?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김형석이라는 교수가 있구나’ 정도였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는 분(학자)이 대부분이다. 근대사 연구자, 특히 독립운동사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100세가 넘은 동명이인(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줄 알았다’고 한 이도 있다. 쉽게 얘기하자면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연구 성과가 적고, 학계 존재감이 작은 사람이다. 최근에 책을 냈다고 하던데, 책이라는 건 누구나 낼 수 있다. 학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를 많이 썼다고 들었다. 이런 이가 독립기념관장에 덜컥 앉은 후, ‘중립적이고 객관적 입장에서 자료를 엄정하게 검토한 결과 기존 역사학자,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이 한 이야기는 다 틀렸다’고 하니, 연구자들은 황당한 거다. 평생 연구한 결과물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비판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이 되어야 하나?

저명한 학자만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 관장으로 임명된 전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개 독립운동가 후손이다. 법률에 규정된 건 아니지만 일종의 관행처럼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한다’는 원칙이 오랫동안 지켜져왔다. 역대 관장 10명 중 두 명만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니었다. 김삼웅· 한시준 전 관장님인데, 독립운동사와 관련한 여러 연구·활동을 해온 분들이라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문제 삼지 않았다. 김형석 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도 아니고 독립운동사 전문가도 아닌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한 언행도 많이 한 사람이다. ‘설마 (정부에서) 이 정도로 스크린을 못하고(가려내지 못하고) 임명할까?’라고 생각했는데 임명을 강행하더라.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번 임명을 공개 비판했다. 개인적 친분이 있나?

독립유공자 관련 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다. 성향이 다르다. 그분은 나를 빨갱이로 볼지도 모를 일이다(웃음). 같은 독립유공자 후손이고 광복회 회원이라고 정치 성향까지 같은 건 아니다. 보수적인 분도 많고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지지를 공개 표명한 분들도 다수다. 이종찬 회장은 그중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다고 유명한 분이다. 이번처럼, 그야말로 의견 통일이 돼서 정부를 비판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따져 보면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추진 논란 때 반대한 게 최초이고 이번이 두 번째 같다. 사실상 모든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이건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종찬 광복회장과의 면접에서 김형석 관장은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답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란 나라밖에 없었고 그래서 우리 국민 국적은 일본’이라면 독립운동은 어디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이 논리를 따라가자면 ‘독립운동가는 폭도’라는 일제의 주장도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일제 강점을 불법으로 보며, 한국 사법부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불법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그 결과가 광복이다. 일제의 항복 선언을 직접 받아낸 건 아니지만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다는 건 보편적 상식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 아니라면 독립운동도 무의미하고, 친일이라고 욕먹는 사람들도 사라진다.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김형석 관장의 언급이 이 맥락에서 나왔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니까 개인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직을 맡으려고 하는 건 과욕이다.

김형석 관장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에 사실상 오류가 있다”라며 재검증을 주장했다.

우선 독립기념관장은 그럴 권한이 없다. 〈친일인명사전〉은 민간단체(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했다. 시민들의 모금으로 시작되어 전문가들의 참여로 발간했기에 법적으로 독립기념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다. 학문적 위상도 남다르다. 〈친일인명사전〉은 민간 자료이지만 나름의 사회적 권위를 갖고 있다. 예컨대 어떤 인물이 친일파라는 비난을 뒤늦게 받으면, 꼭 나오는 반박이 ‘〈친일인명사전〉에 안 올랐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의 보수세력도 인정하는 자료가 됐다. 친일파로 등재된 인물의 후손들이 〈친일인명사전〉 내용 수정·배포 금지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전부 그들이 패소했다. 김형석이라는 인물이 무슨 권리로 그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건가? 독립기념관장으로서는 민간 기록을 재검증할 권한이 부족하고, 학자로서는 학문적 입지가 부족하다.

8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주체와 과정이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편찬위원회 상임 부위원장을 지냈다. 편향된 게 아니라 오히려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비판과 달리 편찬위에 참여한 학자들의 성향은 몹시 다양했다. 보수적인 역사학자들도 들어가 있었다. 매번 회의 때마다 아주 격렬한 내부 토론을 거쳤다. 결국 ‘이 정도까지는 합의할 수 있다’고 추린 게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4776명이다. 조금이라도 (친일 인사가 아니라는) 의심이 가면 다 뺐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저 사람 친일파’라고 비난해도 그게 자료로 확인 안 되면 싣지 않았다. 가치 평가를 집어넣은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몇 년도에 이러이러한 활동을 했다’는 건조한 문장으로 적었다. 지금껏 정부 인사가 이걸 수정하겠다고 나선 적은 한 번도 없다. 독립기념관 관장이 하기에는 특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김형석 관장은 ‘억울하게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 중 하나로 백선엽을 꼽은 바 있다.

의아하다. 편찬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발간 뒤 박 전 대통령 추종자들이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시위하는 일도 벌어졌다. 백선엽은 논란이 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친일) 이력을 인정했다. 회고록에서 자기가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썼다. 백선엽이 속한 간도특설대라는 부대 자체가 조선인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다. 이 (부대에 들어갔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친일파라고 봐야 하는데, 그는 ‘내가 조선인을 토벌했고, 토벌을 안 했다고 우리 독립이 빨라졌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썼다. 정작 〈친일인명사전〉 발간 때는 별 논란이 아니었는데 추후 백선엽을 국군의 정통성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 학계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김형석 관장이 백선엽을 거론하는 건 이 분야에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일례다.

자신의 책에서 김형석 관장은 건국 시점은 1948년이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의를 강조한다.

나는 건국이라는 화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른바 뉴라이트가 꺼내기 전에는 이 문제가 논란이 된 적도 없다. 건국, 건국절 논의란 결국 ‘광복 대신 건국을 기념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리를 연장하면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이 아니라 1945년 8월15일부터 1948년 8월15일까지 벌어진 ‘건국 운동’의 결과로 세운 나라라는 것이다. 여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진짜 주역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건국 운동가’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친일파라고 비난받는 형편이다. 그러지 말고 친일파를 건국의 주체로 온당하게 대접하자는 주장이 ‘건국’이라는 말에 숨은 속뜻이다. 이걸 비판하기 위해 학계는 1919년 임시정부를 이야기하고, 논쟁이 벌어지게 됐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건국 시점을 따지는 나라는 거의 없다. 프랑스가, 영국이 언제 건국했는지 따지던가? 대한민국 우파가 그리 좋아하는 미국도 건국이 아니라 독립을 기념한다. 건국 논쟁은 독립운동사를 대한민국에서 떼어내려는 불온한 움직임일 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삼자는 주장도 했다.

국부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별로 없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타이완의 쑨원,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정도 있겠다. 이들이 그렇게 불리는 건 그냥 초대 정부 수반이라서가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혁명 운동을 주도해 나라를 새롭게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만 국부라고 부른다. 이승만도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니 국부, 건국의 아버지라는 주장을 한다. 그건 헌법 정신 부정이다. 헌법 전문에는 헌법에 명시된 단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4·19혁명이다. 이승만을 국부로 띄우면 헌법에 적힌 ‘4·19 민주이념’은 형해화된다. ‘건국의 아버지를 내쫓은 일’을 어떻게 국가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건국절 논란이나 독립운동 부정도 같은 맥락에서 헌법 부정에 가깝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반국가 세력인데, 이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국가정체성 확립을 이야기하는,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다. 무엇보다 21세기에는 국부라는 개념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젊은 세대에게 ‘자학 사관’ 대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자는 뉴라이트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 주장이 특히 이해가 안 간다. 근대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일이 왜 자학인가. 독립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 민주화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 평화통일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왜 거북할까. 우리는 그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 된다. 친일의 역사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역사야말로 정통 역사라고 미래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 정통을 흔들기 위한 정치세력의 시도를 나는 역사 쿠데타라고 부르겠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는 반드시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악수를 두고 있다. 그런데 독립기념관은 대다수 국민이 그 존재를 아는 기관이다. 새삼 뜨거운 쟁점이 되어버렸다. 이번 일에 대한 반발로 확인됐듯 절대다수 국민은 건강한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한 줌 극우 세력에 기대기 위해 스스로 마지노선을 무너뜨렸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24-08-26> 시사IN

☞기사원문: “정권의 역사 쿠데타, 국민 역린 건드렸다” 전 독립기념관장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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