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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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끝까지 다른 길을 걸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 의거’ 79주년 기념식이 7월 20일(토)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렸다. 이날 함세웅 이사장을 비롯하여 임헌영 소장, 김용만 민주당 의원, 서울시의회 성흠제 의원, 윤대성 광복회 화성지회장과 연구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하여 부민관 폭파 의거를 기리고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조문기(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 유만수, 강윤국 세 애국지사가 대의당 당수 박춘금 등 친일파 수괴들과 총독부 고위 관료들의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던 부민관을 폭파하여 대회를 무산시킨 날은 해방을 얼마 앞두지 않은 1945년 7월 24일이었다. 일제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맹세하고 결사 항전을 다짐했던 박춘금과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념식 이후 답사는 옛 부민관 자리에 세워진 서울시의회 본관을 시작으로 사이토 총독이 쓴 정초석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미의병 발상지, 신민회 근거지 상동교회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석이 있는 한국은행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답사에서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이 두드러지게 대조되었다.

특히 박춘금은 간토대지진 당시 일제가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 탄압할 목적으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조선인 희생자의 시체 처리와 복구 작업을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파 박춘금이 살아온 길과 다르게 군대 해산을 거부하고 의병에 나선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정미의병 발상지이다. 현재 서울 시청역 인근 부영빌딩 근처에 가면 정미의병 발상지라는 표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차량이 주차되어 표석을 가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친일파들의 무덤이 국립현충원에 고이 안장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답사에서 만난 두 개의 정초석에도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 정초석에는 “이 머릿돌은 일제 침탈의 흔적이지만 남겨 둠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라고 안내판이 있다. 그러나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초석에는 안내판이 없다. 많은 사람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지만, 사이토 총독이 쓴 정초석에 대한 안내판이 없어 일제 침탈의 역사가 서울시립미술관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임종국 선생님께서는 “오욕의 역사도 역사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끝까지 다른 길을 걸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 그리고 서울 곳곳의 일제 침탈의 흔적을 우리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내년이면 부민관 의거 80주년이다. 몇 해 전까지 부민관 폭파 의거 기념식은 과거 부민관 건물이었던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서울시의회가 협조하지 않아 서울시청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다. 내년의 의거 80주년 기념식이 아무쪼록 서울시의회에서 거행되어 당시 의열항쟁의 의기와 자취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기념식과 답사를 위해 광복회 화성시지회가 재정 후원을 해주었고 가족 대표로 참여한 유민 현 광복회 대외협력국장도 기념식 후원금(50만원)을 보내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 박이랑 대외협력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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