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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 –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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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민족문제연구소, 학계·교육계 전문가들과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집중 분석
사실 오류 등 수백 건, 교과서로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 미달

Ⅰ. 검토 경위와 결론

1. 민족문제연구소는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현직 역사 교사 13명에게 의뢰해, 최근 친일·독재 미화와 일본군‘위안부’ 서술 축소 등 편향적 서술과 자격 요건 조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발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긴급 예비 검증을 실시했다. 문제가 된 이 교과서는 지난 8월 30일 교육부 검정을 최종 통과한 9종 가운데 하나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반영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3일간에 이루어진 긴급 검증만으로도 날림·불량 교과서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했다.

3. 민족문제연구소가 전문가들의 1차 검증 의견을 취합한 결과, 우선 전반적인 시각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사실관계에서도 무려 300여 건이 넘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핏 보면 집필 기준에 따른 무난한 서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드러난 실상은 참담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이다.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음력과 양력 표기 오류, 명백한 오타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부적절한 사진·도표·자료 인용, 의도적인 유도성 질문, 부정확한 서술,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오류까지 그대로 옮긴 베껴 쓰기 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학력평가원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를 시대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학력평가원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오류 건수

5. 이상의 검토를 통해 민족문제연구소와 검증 관계자들은 학력평가원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➀ 역사 전공자가 주도해 집필한 책이 아니며, ➁ 짧은 기간 내에 기존에 간행된 여러 교과서를 짜깁기한 듯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어 제출하였으며, ➂ 2013년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 때와 같이, 검정 과정에서 노골적인 비호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모로 보아도 이 책은 향후 본격적인 극우 교과서의 출간을 준비하는 디딤돌의 역할에 충실한 여론 떠보기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6. 민족문제연구소는 학력평가원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긴급 검증에 이어, 정밀 검증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분석만으로도 교과서로 사용할 수 없는 근거가 충분하지만, 이 책이 혹시라도 교육현장에서 채택되는 일이 없도록 정밀 분석과 홍보를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참고로 여기 오류의 일부 사례만 예시하는 까닭은 교육부가 최종 인쇄 때까지 수정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 공개가 ‘빨간펜’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Ⅱ. 오류의 사례

1. 사실관계의 오류

1) 교학사 교과서의 치명적인 오류라고 지적했던 내용이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에서도 반복되는 오류 불감증의 사례.[사례1, 상세는 아래 첨부자료]

2) 표기를 통일하지 않고 뒤섞어 쓴 서술이 1권과 2권 모두에서 빈번한데, 심지어 한 문단 안에서도 혼용한 사례.[사례2]

이러한 일관성의 결여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가 교과서의 기본 덕목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문장이 끝나지 않고 쪽이 바뀌는 서툰 편집은 교과서 집필 작업 자체가 날림으로 이루어졌음을 방증한다.

3) 여러 정보를 무분별하게 짜깁기한 흔적이 드러난 대목도 많다. 아무 설명 없이 단체명과 사건명이 불쑥 튀어나온다거나, 같은 단체명을 다르게 표기하거나, 정식 명칭을 쓰지 않고 축약해서 다른 단체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많다.[사례3] 웹사이트 자료 설명을 그대로 베껴 “역사탐구” 등에 사용한 사례도 있다.

분석에 참여한 학자들은 이는 전문 연구자가 부재한 집필진의 구성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 역사인식의 오류

기초적인 사실의 오류도 문제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역사인식의 오류는 더욱 심각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전근대사를 검토한 오수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교학사 교과서나 국정교과서 때와 마찬가지로 낡은 역사인식, 심지어 식민주의 사관을 따른 서술이 도처에서 발견된다고 비판했다.[사례4]

2)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은 개항기 역사서술에서도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경우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만 부각하는 편향적인 태도, 의병운동 보다 애국 계몽 운동을 합리적 대안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질문도 문제라고 분석했다.[사례5]

3) 일제강점기는 더욱 심각하다. 조선총독부와 일제 식민정책을 미화·긍정하는 서술이 여러 군데 나타난다. “한국인의 정치 참여”, “한국인의 정치 참여 기회 확대를 지지”했다는 표현이나 토지조사사업 시행 목적을 총독부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듯한 묘사가 그 일례이다. 일제의 ‘문화정치’는 민족 분열 통치라고 설명하는 것이 상식이다. ‘문화정치’가 일제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목에 쓸 때는 특히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뜻의 따옴표를 붙여 ‘문화정치’라고 쓰는데, 따옴표도 없이 일제의 표현대로 제목에 쓴 사례는 학력평가원 교과서가 유일하다.

독립운동사 서술에서는 의미를 축소하거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의를 알아보자”라는 제목이지만 정작 ‘본문’과 ‘활동’에는 그 의의가 설명되지 않았다. 다양한 독립운동 가운데 유독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과 갈등, 결코 ‘연합할 수 없는’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을 강조한 대목이 여럿 발견된다. 결국,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이 곧 좌우대립으로 연결되며 이후 냉전과 분단의 위기를 극복할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사례6]

4) 집필진의 역사인식이 엿보이는 사례도 많다. 식민지근대화론[사례7], 또는 기독교 성향의 역사 사료 선택[사례8], 인물의 선택적 배치[사례9], 편향적 역사 인식이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관통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명숙 연구실장은 특히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에서 처음 제기된 주장과 논지 전개가 학력평가원 교과서 현대사 부분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8‧15 ‘광복’ 대신 ‘건국’ 의미 강조, 미국이 제안한 38도선의 의미, 단독정부 수립의 책임-스탈린 지령과 이승만의 정읍 발언 등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 의의와 평가가 대안교과서-교학사 교과서-국정교과서를 거쳐 학력평가원 교과서에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사례10] 하지만 뉴라이트로 지목된 집필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이승만의 공적 서술에서도 오류가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5) 이러한 서술 기조에는 노골적인 표현 없이도 식민지근대화론을 우회적으로 주지시키는 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이 교과서가 냉전사관과 반공자유주의로 무장한 채 북한과 대결에서 승리한 대한민국 사관으로 내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주어가 “대한민국 정부”라는 점에서 국가주의로 수렴되는 우경화의 징후도 읽을 수 있다. 9종의 교과서에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강제한 권력의 부당한 개입으로 이념 대결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고 할 수 있다.

3. 검증 참여자들의 총평

1)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했던 조왕호 전 교사2022년 급작스러운 교과과정 개편도 교과서 부실화를 촉발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2022년 교육부의 개입으로 전근대사 비중이 갑자기 2단원으로 늘어난 점을 우선 꼽는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제 삽입은 학력평가원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교과서들에서도 상충되는 서술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이런 불편한 서술을 피하기 위해서 맥락적 이해를 도모해야 할 역사 교과서가 사실 나열로 채워지는 총체적 부실화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 일제강점기를 분석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검정 과정에도 의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런 수준의 교과서가 통과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검정 과정이 과연 공정했는지 의심을 제기했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겪고도 그에 못지않은 엉터리 수준의 교과서가 또다시 검정을 통과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은 개별적으로 비판할 문제들이야 많지만 사실 오류를 들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가 심도 깊게 교과서 집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지난 십여 년간 교과서 논쟁을 거칠수록 논의가 풍부해지고, 역사해석이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해석이 줄어들고, 맥락적 이해를 탈각시킨 채 건조한 사실 나열에 그치는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4)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학력평가원 교과서가 전반적으로 형식적 요건만 갖춘 ‘맹탕’ 뉴라이트 교과서 같지만, 이들의 목표는 전 사회적 불채택 운동을 상쇄시키면서 학교 현장에서 채택률을 높이려는 목표를 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가 일부 학교에서 채택되기만 하면, 출판사가 절차적 하자가 많고 영세하더라도 뉴라이트 교과서를 띄우고 멀리 보고 진지전 양상으로 가져갈 것으로 예측했다.

5) 민족문제연구소 이명숙 연구실장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교과서들이 보인 행보와 현재 일본 역사교과서의 실태를 돌아보자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역사수정주의 교과서들이 이미 검정 시도와 도전 속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집필기준 자체가 우경화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제어할 사회적 저항력마저 약화되었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인식에 대한 학계, 시민사회의 지속적이고 폭넓은 대응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분석이다.

Ⅲ. 교육부 검정기준의 문제점

1.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의 날림·불량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교육부 검정기준의 ‘뉴라이트화’와 사실관계 오류이다. 이를 일제강점기와 현대사를 사례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교육부가 제시한 일제강점기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다.(3쪽)

2) 이를 2009 개정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2011.12.30. 확정 발표)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드러난다.
※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이명박 정부가 만들고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검정하였다.

(1) 경제구조의 변화와 경제생활

(가) 2009 개정 이전의 집필 기준은 ②“일제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제상의 지표에 변화가 보였으나, 이는 식민지 수탈정책의 일환이었음에 유의한다.”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적 변화를 식민지수탈론의 입장에서 설명하라는 지침이었다. 그런데 2009 개정에서 추가로 마련한 ⑥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사회경제적 변동 및 교통·통신의 발달과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의식주 생활에 변화가 나타났음을 서술한다.”라고 하여, 근대적 변화에 기술내용의 초점을 맞추도록 하였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는 집필 기준 ⑥을 활용하여 식민지근대화의 문제를 마음껏 기술하였다.

(나) 2022 개정에서는 ‘수탈’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가치중립적인 ‘변화’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2022 개정은 2009 개정에서 ➁는 삭제하고 ➅만 남긴 것이다.

(다)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통시대적이며 비역사적인 용어이다. 일제강점기를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는 변화가 아니라 ‘수탈’이다. 징병·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이라는 ‘인적 수탈’과 각종 물자의 공납 공출이라는 ‘물적 수탈’이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를 파악하는 핵심인 것이다.

(라) 2022 개정은 2009 개정에 있는 식민지수탈론의 흔적마저 삭제함으로써 일제강점기를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서술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가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을 자제한 까닭은 ‘친일 미화 교과서’라는 사회적 비난을 모면함으로써 일단 검정을 통과하고 보자는 속셈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된다.

(2) 독립국가 건설 노력(7쪽)

(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2015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2015 성취기준에는 ‘신국가 건설 구상을 살펴봄으로써 민족운동과 광복을 연속적인 관점에서 제시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민족운동과 광복,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2022 성취기준에는 이러한 연속성의 강조는 없고 ‘독립 국가 건설 운동의 양상 분석’이라고만 표현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모든 항일 운동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고, 그 형태가 어떻든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독립운동, 항일운동과 ‘독립국가건설 운동’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딱 집어서 일제의 침략 전쟁 시기 전개된 운동을 ‘독립국가건설 운동’이라고 표현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 간다. 이 논리대로라면 3·1운동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은 ‘독립국가 건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학력평가원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라는 표현이 없고, ‘공화제를 지향한’이라는 수식어만 사용하였다.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라는 표현은 이 교과서 외 1종을 제외하고 모든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현행 헌법 정신에 근거하여 명시한 것이다. 교과서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 전환되는 출발점이라고 명백히 밝힌 사례도 있다. 물론 학력평가원 교과서에는 그런 서술이 없다.

(나) 그럼에도 ‘독립국가 건설 노력’ 항목 신설의 중요성의 다음과 같다.

“해방 직전의 독립운동사 서술은 일제강점기 주권을 되찾기 위한 한국인의 주체적인 노력을 설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1945년 해방을 조선인은 어떻게 맞이했는가에 대한 역사 인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인 나름대로의 건국 준비에 대한 사실을 무시하거나, 한국인의 저항이 해방 직전인 1940년대에도 꾸준히 지속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일제강점기에 주권을 되찾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 내지는 전시동원체제에 저항한 한국인의 주체적인 움직임을 간과하게 된다. 즉 해방이 한국인 스스로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획득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역사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부정하고 종속성과 타율성을 강조하려는 일본 보수우파의 역사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 인식으로 이어질 염려가 있다.”(신주백, 2005,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2005년도 검정본 분석-일제 강점기 및 현대 한일관계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 연구』33, 206쪽)

(다) 2022 성취기준은 「대한민국의 발전」에서 “8·15 광복은 우리 민족의 꾸준한 독립을 위한 노력과 준비의 과정에서 실현된 것임을 이해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다양한 양상을 탐구한다.” “제헌헌법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의미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과 연관지어 이해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성취기준도 일제강점기 ‘독립국가 건설 노력’과 연관지어 파악할 때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라) 2022 성취기준처럼 일제강점기 ‘독립국가 건설 노력’을 이해하면 건국 준비 운동이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임시헌장(1919) → 건국강령(1941) →제헌헌법(1948)에 흐르는 핵심 가치는 ‘평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 제헌헌법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제헌헌법이 표방한 민주주의가 단순히 외국에서 직수입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전통을 반영한 역사성이 있는 민주주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이다.

(바) 아울러 대한민국이 표방한 시장경제는 약육강식을 정당화하는 자유 시장경제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의 경제 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라고 판단하였다.

(사) 2022 성취기준은 「대한민국의 발전」에서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라는 성취기준을 제시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로 출범하였다는 전제는 뉴라이트 논리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아) 2022 성취기준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출범하였다고 제시함으로써 ‘독립국가 건설 노력’의 신설에 담긴 최소한의 긍정적 의미마저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었다.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짓밟는 국가권력의 폭거이자 만행이다.


※첨부자료
[사례1]
무더기 사실 오류의 사례-조선교육령 (2권 12쪽, 17쪽)

조선교육령을 표로 간략히 요약하였으나, 조선교육령에 아예 없거나 잘못된 내용 투성이다. 표 안의 설명 중에 올바로 쓴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1차 교육령 체제에서 조선 역사·조선어·조선 지리의 교육이 축소된 것은 맞지만, 조선교육령 자체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 조선교육령의 하위 규칙인 ‘각종 학교 규칙’의 교수 시수 배정을 통해 이들 과목의 축소를 추진하였다. 이는 이후 개정된 조선교육령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차 교육령 설명에 ‘조선어 필수’라고 쓰고 있지만 2차 교육령에 와서 비로소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필수화한 것이 아니다. 제1차 교육령 때 각종 학교 규칙에서 이미 일본어와 한국어는 필수였다. 제1차 조선교육령 시기 보통학교에서 한국어는 한문과 통합되어 ‘조선어급한문(朝鮮語及漢文)’이라는 명칭으로 필수과목이었으나, 제2차 조선교육령 시기에는 조선어와 한문으로 과목이 나뉘고 전자는 필수, 후자는 수의과목 또는 선택과목이 되었다. 따라서 실제 조선어가 필수화되었다고 해서 조선어 교육이 강화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제2차 조선교육령이 아니라 그에 부속하는 ‘보통학교규정’에 담긴 내용이다.

누가 보더라도 ‘조선어 필수’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교육 강화를 암시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의 모국어 교육을 강화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는 본문의 “한국인의 교육은 일본어 보급과 실업교육에 중점을 두었다.”(12쪽)라는 서술과도 배치된다.

사실을 설명하자면 제1차 교육령 시기 보통학교에서 한국어는 1~2학년 매주 6시간, 3~4학년 매주 5시간 총 22시간을 가르쳤다. 제2차 교육령 시기 한국어는 1~2학년 매주 4시간, 3~4학년 3시간, 5~6학년 매주 3시간 총 20시간을 가르쳤다. 제1차 교육령 시기와 비교하기 위해 1~4학년까지만 합산하면 제2차 교육령 시기 매주 14시간을 가르친 셈으로 오히려 6시간 줄었다. 반면 제2차 교육령 시기 국어(=일본어)는 총 64시간으로 한국어의 3배 이상을 가르쳤다.

역사학계는 조선교육령과 관련해 위키백과를 잘못 베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웃지 못 할 오류를 2013년에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조선교육령에 ‘국어’라고 표기한 것을 ‘한국어’로 착각해 소개한 것을 교학사 교과서가 그대로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라고 서술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가 다시 “조선어 필수”라고 또 오류를 범했다. 게다가 “일본 역사 주입 강요”, “조선 민족 사상 말살” 등도 엉뚱한 설명 요약이다.

3차 교육령에도 역시 “황국신민서사 암송”이나 “궁성요배” 등의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황국신민화 정책의 시행으로 학교에서 실행된 정책을 조선교육령에 무단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더 엉뚱한 것은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하였다는 설명이다. 일제 강점 초기부터 일본어가 국어가 되었고, 일본어 교과서는 국어교과서로 바뀌었다.

4차 교육령에서 “조선어‣조선 역사 폐지”라는 설명도 틀렸다. 조선 역사는 보통 교육이나 중등 교육에서 별도의 교과목으로 편성된 적이 없었다. 조선어는 보통학교에서는 1941년 보통학교규정을 통해 수의(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지만 사실상 폐기의 수순을 밟은 데 비해 중등학교에서는 1943년에 개정된 조선교육령의 하위 규정인 중학교규정을 통해 법외 과목이 되었다.

이 표의 오류들은 17쪽 민족 말살 통치(1930~1940년대) 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와 같은 단순 오류의 반복과 상식 이하의 서술은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가 역사 전문가가 집필하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라 하겠다.

[사례 2] 용어 혼용의 사례 – 조선(인), 조선 정부, 조선사, 조선어 vs. 한국(인), 대한제국 정부, 한국사, 한국어(1권 142쪽)

[사례3] 용어 혼재와 서술 오류 –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과정(2권 68쪽)

[사례4] 식민주의 사관의 반복 – 03 조선사회의 성립과 발전(1권 33쪽)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중화사상이 국가 정체성이 되었고, 소중화 의식이 조선인의 신념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 결과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 깊숙이 유교 문화가 들어와 지금까지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 총평: 학계의 연구성과나 학술적 근거 없이 중국에 대한 의존성과 타율성을 조선시대 역사의 본질로 강조한다. 식민주의 사관의 반복에 해당한다. 또 ‘소중화 의식으로 인해 유교 문화가 들어왔다.’라는 서술은 논리적 오류이다.

– 검토: ① ‘소중화’란 ‘중국 문명의 수용과 계승’을 강조한다. ‘소중화’를 국가 정체성으로 규정하면 우리 역사의 타율성이 두드러진다. ② 소중화를 국가 정체성으로 강조할 근거, 특히 건국 시점부터 그것을 강조할 근거는 없다. 조선 국가에는 왕실의 권위를 비롯하여 유교적 통치이념, 교화・민본주의 등 ‘소중화’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항이 많다. ③ ‘소중화’가 조선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규정은 역사적 실체의 왜곡이다. 중국 주변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소멸하였으나, 조선은 대제국 중국과 가장 가깝게 접해 있었으면서도 국가를 지켜냈음은 물론 내정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소중화’보다 그러한 면모가 더욱 본질적이다. ④ 조선 후기 병자호란 이후 ‘소중화’가 특히 강조되었으나, 그것은 청에 패전한 이후 조선 사회와 문화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⑤ 위 서술은 문장 또한 논리적이지 않다. ‘소중화 의식이 뿌리를 내린 결과 유교 문화가 들어왔다.’라고 서술하였으나, 중화-소중화는 유교 문화의 한 부분이므로 그 서술은 선후 관계가 바뀐 오류이다.

[사례5] 개항기: 일본 긍정 편향 서술(1권 112~113쪽)

112~113쪽
1) ‘중국의 근대화 운동’ ‘일본의 근대화 운동’ → “근본적 제도의 변화 없이 서양 과학기술의 모방에만 그쳐…”라 하여 중국 양무운동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 반면 일본은 긍정적 측면만 기술.
2) 사진 그림도 중국은 흑백 1컷. 일본은 컬러 2컷, 흑백 1컷으로 차이가 있음

개항기: 1권 165쪽, 167쪽

165쪽
3단계 논술하기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총칼을 들고 일어난 의병의 애국 정신은 존경하지만, 열악한 조건으로 일본군과 싸워 이기는 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라는 예시 하나만 제시하고 ‘내가 선택한 국권 수호 운동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생각해보자’라며 그것만이 합리적인 대안처럼 오해할 소지가 많은 내용.

‘대단원 마무리’는 ‘한국사 속 오늘’을 주제로 한 홍보 포스터 제작 난에 갑신정변을 주제로 한 홍보 포스터 제작을 예시하면서 ‘급진개화파의 주요 인물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함. 여러 가지 예시가 있을 수 있는데 친일개화파 주도의 갑신정변 관련 내용으로 최종 정리하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음.

[사례 6]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 강조- 역사특집 김구와 김원봉(2권 71쪽)

김원봉을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한 것도 오류지만, 결국 김구와 김원봉이라는 두 인물을 앞세워 독립운동 진영의 갈등, 특히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분열을 드러내려는 노골적인 시도로 읽힘.

[사례 7] 식민지근대화론(2권 25쪽)

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른 한반도 공업화가 광복 이후 한국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뉴라이트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사례8] 기독교 성향의 역사 사료 선택 (2권 34쪽, 88쪽, 112쪽)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이승훈과 한용운 등 민족 대표···
: 일반적으로 33인의 대표 이름 첫 번째로 손병희를 서술. 3‧1운동의 종교계 대표로서 손병희를 빼고 이승훈과 한용운을 쓴 것은 처음 보는 서술

88쪽 [자기주도 역사 탐구]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제주 4·3 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을 진압하며 반란군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나 도주한 반란군의 일부는 지리산 등에 숨어 게릴라전을 하며 저항하였다.”라는 본문 서술에 비추어 여수·순천 10·19 사건 역시 반란 사건이라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 사례를 들고 있는 점, 특히 그 유족이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상규명특별법에 반대하고 있어 논란 중인 사건을 교과서에서 싣고 있다.
손양원 목사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여순사건 희생자로 처음 등장한 사례였다.

112쪽 [자기주도 역사 탐구]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주화 정신
이 사건은 학력평가원 교과서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례이다. 남산 부활절 예배사건은 한국 기독교계의 반독재 투쟁을 촉발시켰다. 기독교 계통의 운동사를 특별히 강조하는 경향은 일제시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설명에 나온 “무죄판결”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이루어졌다.

[사례9] [역사특집]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 (2권 74쪽)

이승만, 김구, 여운형, 장제스, 스탈린, 트루먼, 하지를 소개.
해방 이후 역사에서 김일성이 빠졌다. 북한 역사는 한국사에서 완전히 배제?

[사례10]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립 의의 강조

  • [역사탐구] “38도선이 생긴 배경과 미국의 의도”(2권 83쪽)

“미국이 38도선을 제안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활동을 제안했는데, 이는 교과서포럼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37쪽에 “미국은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에 점령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38도선을 황급하게 제안했다.… 38도선은 단순히 한반도의 분단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자유, 인권, 시장 등 인류 보편의 가치가 미국군을 따라 한반도에 상륙한 북방한계를 나타내는 선이었던 것이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37쪽
  • [주제탐구] “이승만의 정읍 발언, 그 역사적 배경은?” (2권 94쪽)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140쪽)를 직접 인용하였다. 즉 스탈린의 지시로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운 점을 강조하며,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이미 공산화된 북한에 대한 대응을 위한 용단이었다는 평가를 유도하고 있다. 교과서포럼-교학사-국정화를 거쳐 이승만에 대한 단독정부 수립 책임론을 벗기기 위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이 관철되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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