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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제 강점으로 일본인 된 적 없다는 게 헌법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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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라이트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물론 뉴라이트 논쟁은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 김형석 독립기념관 임명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면서 커졌다. 이후 역사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었고 심지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망언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문제와 뉴라이트에 대한 논쟁을 전문가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12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남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 기본 원칙에서 후퇴”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 남기정 제공

– 지난 8월 한 강연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문제가 많고 엉망이라고 진단하셨던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진단하신 건가요?
“우선 한일 간에 가장 오래된 숙제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 왔던 중요한 원칙들에서 명백하게 후퇴하는 모습들을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이 돼요. 그건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관련한 부분인데요. 저희는 그동안에 보수, 진보 관계없이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대일 외교에서 한국 정부 최소한의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특히 작년 3월 6일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으로 ‘제3자 대위 변제’라는 방식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아가 3월 15일의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윤 대통령 스스로 일본 국민 앞에서 확인해 줌으로써, 우리가 대일 외교에서 기본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 왜 이렇게 됐을까요?
“문재인 정부 시기 한일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부당하고 일방적인 평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일본 정부와의 사이에서 한일 관계가 매우 안 좋아졌던 건 사실인데 그 책임을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에게 있다며 일방적으로 비난한 데서 나온 문제죠.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은 아베 정부에게도 있습니다.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우경화하는 아베 정부가 과거사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를 국제법 위반이라며 비난했던 사실,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겨누며 수출규제에 나섰던 아베 정부의 무법 불법적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한일 관계 악화에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비난하고, 일본 정부의 입장을 거의 고스란히 수용하는 방향에서 이 어려운 한일 관계를 풀려고 했다는 데에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8월 논란이 뜨거웠던 것 중 하나는 뉴라이트와 건국절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이건 작년 3월 대위변제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그 연장선에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문제에서도 식민 지배의 불법성이라는 대원칙을 관철하지 못하게 된 데 따른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대위변제 방식이나 사도광산에서의 우리의 양보를 합리화하다 보니 일제의 강제 점령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 뉴라이트적인 설명에 기대게 된 것입니다. 1948년 건국 주장이 나오는 것이 이를 직접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1904년부터 1910년까지 한일 사이에 체결된 모든 협약과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우리 정부 입장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를 합법이라 주장하는 일본은 협약과 조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이르러 무효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도 당시의 법률에서 합법적으로 동원된 것이니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대법원 판결이 이상한 것이고, 사도광산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한 거죠. 이게 일본의 입장인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일본의 입장을 수용했던 것입니다.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가 필요한 데, 이를 뉴라이트 사관이 제공해 주고 있는 거죠”

–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세요?
“일단 윤석열 정부가 어떠한 국가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는지, 어떠한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근본에서 확인할 필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체결된 모든 한일 간의 협약과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따라서 일제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확인해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 정부의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지거나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이를 부정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은 공적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컨대 독립기념관에는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일선전성명서가 전시돼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죠. 거기에는 분명히 ‘1910년 합병조약 및 일체 불평등조약이 무효임을 확인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에서는 성명서 발표에 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무력을 갖춘 정부로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우뚝 섰음을 보여주는 쾌거였다고 설명하고 있다’란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식 입장과 반대되는 또는 그렇게 의심하게 하는 행동과 발언을 하는 분을, 다른 곳도 아닌 국립기념관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건 심각한 문제죠.

또 한 가지 더 예를 들겠습니다. 독립기념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급한 여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여권을 발급하는 주체였던 것이에요. 이를 발급받은 국민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것도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자료가 말해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독립기념관장이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러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부정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 그럼 일제 시대 때 주권이 있었단 건가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자료들이 있고, 이를 우리 정부의 공적 기관이 국내외에서 전시하여 공적 입장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도 그런 게시물들이 있는 거죠.”

– 그런데 왜 갑자기 이게 나왔을까요?
“윤석열 정부가 작년 3월 이래 대일 외교에서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공격한 일본 입장을 수용하면서 모든 게 꼬였습니다. 일본이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는 것의 기원에는 식민 지배 합법론이 있습니다.”

“일제의 한국 강점으로 한인이 일인이 된 적은 없어”

–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 국적도 대한민국인 거죠?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은 그렇습니다. 당시 국제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 망명정부 또는 임시정부의 국제법적 지위가 어땠는지, 제국 내의 국적 개념이 어떠한지 등 학술적으로는 다양한 입장에서 논쟁할 수 있습니다. 흑이냐 백이냐 사이에 꽤 넓은 회색 시대가 있습니다. 법적으론 그렇지만 사실로는 그렇지 않다거나 또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제 시기 일본의 강제 점령하에 있던 한반도 주민들은, 본인이 원하고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적을 보유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강점 당한 한반도 주민을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러한 권한을 행사했으니까요.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은 일제의 한국 강점으로 한인이 일인이 된 적은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입장은 양유찬 주미대사가 우리 협상 대표로 일본을 상대로 제1차 한일 수교 협상에 임했을 때 천명되었고, 이후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기도 해요.”

– 뉴라이트 주장은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인데 주권이 없으니, 나라가 아니었다는 말이 안 맞는 거네요?
“그렇죠. 그런 주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반헌법적 주장이고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은 근대국가의 3요소를 의식한 구조로 되어 있고,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도 헌정 체제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하면서…’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주도한 게 이승만이었습니다. 임정이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였고, 여권 발급 등을 통해 국민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죠.

또 1923년의 간토대지진의 한인 학살 때는 이에 대한 조사단을 파견해서 실상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임정 외무대신이던 조소앙은 일본 총리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 兵衛) 앞으로 항의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고요.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에 대한 보호의 의무를 다하려고 했던 겁니다. 다만 영토를 일제에 강점 당한 상태에서 그 복구, 즉 복국을 목표로 했던 정부였습니다.

그리고 현행 헌법 전문에서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어는 대한’국민’입니다. 따라서 헌법 정신에 따르면 일제에 의해 영토를 강점 당한 상태에서도 한반도 주민의 국적은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일본과의 수교 교섭에서 이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1904년부터 1910년까지의 모든 협약과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유진오 등 당시 대일 협상에 임했던 인사들은 이 조항이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5년 박정희 정부에서 한일기본조약에 체결되고 거기에 제2항으로 이 내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무효의 시점과 관련해서 ‘이미’라는, 시제를 애매하게 하는 부사구가 들어감으로써,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해석차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이들 협약과 조약이 무효라는 입장을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1910년 병합 조약이 무효라면 이 시기 한반도에서 법적으로 유효한 정부는 대한제국 정부이며, 1919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공직자라면 이와 같은 공식 입장을 옹호해야 하는 것이죠.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반헌법적인 행위입니다.”

– 또 말하는 게 당시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인정 못 받았다는 것 같거든요.
“이른바 국제적 승인의 문제인데요. 주권국가 체제에서 국가들 사이의 조약을 통한 방법과 국제기구 가맹을 통한 방법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실체가 없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하나의 근대국가가 탄생해서 국제적으로 승인받는 경로는 매우 다양해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관할지역에서 주권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중국 정부로부터 이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실질적이고 내용적으로 승인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1920년부터 1922년까지 임시정부는 러시아의 소비에트 정부를 상대로 활발한 외교 활동을 전개했으며, 소비에트 러시아 측도 임시정부를 실체로 간주하여 공식적인 교섭 상대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인 원조를 약정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사실상의 승인이라고 할 수 있죠. 이는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이 1783년 파리협정으로 국제적 승인을 받기 전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해서 존속했던 시기 국제사회는 단 한 번도 단일한 국제사회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임시정부가 탄생한 상황에서 이미 국제사회는 식민지 제국들의 국제 협조 체제가 한편에 있고 광범위한 식민지 민족해방 세력이 이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혁명 직후 국제사회는 국제연맹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진영과 소비에트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분열되었고, 1930년대에 점차 블록화의 경향을 보이다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국제사회는 다시 연합국 진영과 추축국 진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여기에 물론 다양한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참전해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승인이라는 게 국가로 존재하는 데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던 시기, 국제사회는 단일한 국제법 체제 안에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주권을 선포하고 주권 행사하는 나라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그러한 주권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정부 가운데 하나였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 일본은 식민지 불법성을 인정 안 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왜 인정 안 하는 건가요?
“법적 배상의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인정하는 순간, 재산상의 민사적인 문제를 경제협력이라는 형태로 해결했던 청구권 협정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고, 새로 배상의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직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한 북한과의 수교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일본의 전후처리 원칙이 무너지게 되어 그 여파가 중국이나 동남아와의 관계에도 미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앞으로 한일 관계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정부에서는 계속 이러한 기조로 가겠죠. 그런데 정부 사이, 정상들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 나아가 상호 방문객이 늘어나고 상대방 문화를 편안하게 즐기는 사이가 되는 것은 국민들 사이의 상호 신뢰가 쌓이는 것과는 전혀 별도의 과정이어서, 그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는 게 걱정입니다.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국민의 의구심은 더 커진 상황이라, 이러한 의구심을 제대로 해소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정부 간의 관계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큰 장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상호 불신이 큰 상황에서 역진 불가능한 군사 안보협력이 혼자 앞서 갈 때, 그 간극은 한일 관계를 일순간에 파탄시킬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2024-09-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일제 강점으로 일본인 된 적 없다는 게 헌법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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