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MC노(노기환)
출연: 이준희, 신현준
PD: 김세호
- 그대 그립다(복혜숙. 1930년 음반): 원곡은 1929년 일본에서 발표된 후타무라 테이이치 노래 ‘君恋し'(삿사 코카(佐々紅華) 작곡). 이후 유행가 혹은 가요곡으로 불리며 여러 차례 다시 녹음되기도 한 일본 유행가의 고전이지만, 당시에는 재즈송으로 불림. ‘2부 구성’이라는 점이 당시 통상적인 유행가와 다른데, 말하자면 코러스(후렴/싸비)가 명확하다는 것. 가수라기보다는 배우였던 복혜숙에게는 이런 곡이 낯설었는지, 음정·박자를 자주 놓침. 조선 최초로 레코드에 ‘재즈송’이 표기되었다는 기록의 가치가 있음. 일본 초판에는 곡종 자리에 ‘폭스트로트’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1920년대 일본 재즈를 2박자 폭스트로트 리듬, 즉 사교댄스 리듬이 지배했다는 것을 보여줌
- 跳舞時代(춘춘, 1933년 음반): 곡종은 ‘유행가’로 표기되어 있지만, ‘문명화된 여자’인 화자가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면서 “남녀 쌍쌍이 추는 트로트(道樂道)”에 빠져 있다는 가사가 나옴. 작사자 천진위(陳君玉)는 중국 대륙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뒤 대만에서 신문학운동에 참여. 작곡자는 대만 유행가 고전을 많이 작곡한 덩위셴(鄧雨賢). 앞서 들었던 ‘望春風’도 그의 작품. 하지만 도쿄에서 녹음이 진행될 때 편곡을 담당한 이는 니키 타키오(仁木他喜雄). 2003년에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는데, 춘춘의 후배인 가수 아이아이(愛愛)의 구술과 대만 가수들이 배를 타고 일본에 취입 여행을 가는 재연 장면이 나옴
- ダイナ(디크 미네(ディック・ミネ). 1934년 음반): 1925년 미국에서 발표된 Dinah(해리 아크스트(Harry Akst) 작곡)의 번안곡. 1934년 나카노 타다하루(中野忠晴)의 음반이 처음 나왔고, 이어 같은 해 연말에 디크 미네의 ‘재즈송’ 음반이 발표되어 크게 히트. 디크 미네는 노래는 물론 작사·편곡·연주(하와이안기타)까지 담당. 인상적인 트럼펫은 ‘Japanese Satchmo’ 난리 후미오(南里文雄)의 연주. 1935년에는 ‘댄스 뮤직’ ‘다이나’ 조선반이 삼우열 노래로 발매되어 역시 히트. 삼우열은 디크 미네의 조선 예명
- ‘항구의 블루스'(박향림, 1938년 음반): 1937년에 핫토리 료이치 작곡, 아와야 노리코 노래로 대히트를 기록한 ‘別れのブル-ス’의 조선어 번안작. 핫토리 료이치의 ‘와세이(和製) 블루스’에 대해 미국 블루스의 변질 논란이 있지만, ‘블루스’가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장르로 이어져 온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음. 암울한 분위기는 전시체제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 ‘ラッパと娘'(가사기 시즈코(笠置シヅ子). 1939년 음반): 쇼치쿠(松竹)소녀가극단에서 활동하던 가사기 시즈코의 첫 음반(다른 이름으로 발표한 데뷔곡은 1934년). 운명의 콤비 핫토리 료이치 작곡. 가사기 시즈코는 전후 ‘부기의 여왕’으로 유명해졌지만, 전전에도 요란한 무대 매너로 오사카에서(도쿄가 아닌 것이 중요) 이미 유명. 무대에서 너무 요란하다는 이유로 검열 대상이 되기도. ‘기원 2600년’인 1940년 이후 한동안 잠수를 타게 되는 일본 재즈의 파격
- ‘경쾌한 방아타령'(오케재즈밴드, 1940년 음반): 노래가 아닌 연주곡으로, 김해송의 작품. 1940년은 조선 재즈가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던 시기. 김해송은 직접 부르기도 한 ‘청춘 계급'(1938년)이나 부인 이난영이 노래한 ‘다방의 푸른 꿈'(1939년) 등으로 조선 재즈의 대표자임을 충분히 입증했지만, 재즈 악단의 밴드마스터로서 그의 진면목은 오히려 이런 곡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남. 민요 ‘방아타령’이 중간에 재즈로 변주되는 편곡은 말 그대로 ‘압권’
- I Will be Waiting(빅 맥스웰(Vic Maxwell). 1941년 음반): 원래 1939년 10월 개봉 영화 東京の女性 삽입가로 만들어졌던 탱고 곡 夜のプラットホ-ム. 영화 개봉과 함께 아와야 노리코의 음반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검열 문제로 발매가 금지되고 영화에서도 삭제. 작곡자 핫토리 료이치(혹은 콜럼비아레코드)는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제목과 가사를 영어로 바꾸고, 작곡자 이름도 R. Hatter로 표기해 양악반으로 위장한 뒤 1941년에 발표. 빅 맥스웰은 당시 콜럼비아레코드 사장 비서였다고. ‘米國’의 음악으로 완전히 찍힌 재즈는 1940년 이후 터부시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교적 중립 입장을 취했던 아르헨티나의 음악으로 간주된 탱고였기에 이런 우회도 가능했을 듯. 탱고를 위시한 라틴 대중음악, 샹송 등은 당시 넓은 의미의 재즈에 포함. 夜のプラットホ-ム는 종전 이후에 후타바 아키코의 노래로 정식 발매되어 크게 히트했고, 1950년대 한국에서 번안곡으로 유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