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63]
시정기념일과 시정기념엽서
조선총독부 시정기념엽서 시리즈(1)
1910년 8월 22일 일제에 의해 ‘한국병합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8월 29일 공포, 발효되면서 대한제국은 식민지 조선이 되었다. 그해 9월 30일 공포된 「조선총독부관제」에 의해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가 실질적으로 기능했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10월 1일을 시정기념일(始政紀念日)이라 명명하고 국가기념일의 하나로 삼았다. 하지만 일제가 실제로 기념축하행사를 벌인 것은 병합기념일인 8월 29일이었다. 이날 경성신사 등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과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고 은행 등은 임시휴업일로 지정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15년에 이르러서 시정기념일이 공식화되고, 이날을 총독부와 소속관서의 휴무일로 지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취지는 조선총독부 고시(告示) 제151호(1915.6.26) 「시정기념일의 건」에서 잘 드러난다.
명치 43년(1910년) 10월 1일은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신정(新政)을 개시했던 날이다. 병합조약의 체결 및 그 실시에 있어서 추호(秋毫)의 분요(紛擾)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정의 방침 및 계획에 따라 전부 원활히 제반의 정무(政務)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성명(聖名)의 위덕(威德)과 시운(時運)의 추세에서 기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총독부 개시 이래 자(玆)에 5주년 질서의 회복, 제도의 정리는 물론 식산흥업(殖産興業)에 관한 백반(百般)의 시설 경영도 또한 점차 그 서(緖)에 들었으며, 홍택(洪澤)의 점윤(漸潤)하는 바 상하만상 각기 안도하고 치평(治平)의 경(慶)에 욕(浴)하여 조선통치의 기초는 이미 확립되어 시정의 방침은 오래도록 넘쳐나는 것이 될 것인즉, 이제 자금(自今) 매년 10월 1일로써 ‘시정기념일’로 정하여 영구히 이러한 성사(盛事)를 명심하고 일층 여정노력(勵精努力)하여 제국의 강운(降運)에 공헌토록 하려는 소이이다.
이 고시에 따라 191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경성신사에서 시정기념일제(始政紀念日祭)를 거행하기 시작하여 이후 1944년 일제 패망 직전까지 해마다 이 행사를 되풀이하였다. 이날에는 조선총독의 담화가 있었고, 장기 근속한 총독부 관리들에 대한 표창을 실시했으며(1935년) 축하 비행 등의 이벤트 행사도 진행되었다. 한편 조선총독부는 1941년 4월 1일 30여 년 조선통치의 기록을 기념하고 그 역사를 일반에게 선전하기 위해 왜성대에 있는 전 총독관저에 시정기념관(始政紀念館)을 개관하기도 했다.(『매일신보』1941.3.30)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해마다 10월 1일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紀念葉書)를 발행했다. 체신국의 주관하에 2~3종을 1세트로 하는 엽서를 제작했는데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함을 내외에 선전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시정기념엽서는 1910년부터 1920년까지는 매년 발매되었다가 그후 시정15주년(1925), 시정25주년(1935), 시정30주년(1940)에 발행되어 14회에 걸쳐 총 38종이 제작되었다. 시정기념엽서 발행은 신문기사를 통해서 비교적 상세히 홍보되었는데 시정8주년기념엽서의 발행 소식은 아래와 같다.
시정8주년기념 회엽서(繪葉書), 10월 1일부터 발매
조선총독부에서는 시정8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림엽서를 발행하고 석장에 한 벌로 만들어 10전씩에 10월 1일부터 각 우편국과 우편소에서 발매를 개시하며 동시에 기념일 당일과 그 뒤 3일 동안을 위주하여 제2종우편에 특수통신 일부인(日附印)을 찍을 터인데 우기 우편물 이외의 물건이라도 1전 5리 이상의 우표를 부친 곳에는 희망에 의하여 특종통신 일부인을 찍는다 하더라. 그리고 이번에 발행된 그림엽서의 종류는 1. 황해도 겸이포 삼릉제철소 2. 평안북도 용천군의 대정수리사업 3. 경상북도 안동군의 누에고치 공동판매와 강원도 세포(洗浦)의 관설면양목장의 3종이라더라.(『매일신보』 1918.9.14)
시정기념엽서의 도안에는 사진과 그림, 조선과 일본을 상징하는 다양한 문양 등이 사용되었다. 도안 소재와 근대화 관련 특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시정기념엽서의 유형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A형: 일본의 역사적 인물과 조선총독부 고위관료의 초상을 이용하거나 가공의 이야기 또는 신도 관련을 통해 식민지배의 성과를 선전한 것. 예) 신공황후의 초상, 조선과 일본 아이들의 유희, 사이토 마코토 총독
B형: 조선의 문화유산 및 관광지를 표상한 것. 예) 금강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석왕사
C형: 조선의 전통적 생활 모습과 특산품 생산을 소재로 표상화한 것. 예) 인삼, 누에고치와 면양 등
D형: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모습을 표상화시킨 것으로 전근대와 근대적인 모습의 비교, 근대적 대규모 공장·산업시설과 도시·건축물의 선전, 농수산 생산물의 증산 현황과 통계 비교를 통한 근대화 선전 엽서
(출처: 『일제 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와 식민지 표상』, 50쪽)
시정기념엽서는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 되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하였다. 대중적인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 곧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식민지근대화론에 세뇌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는 총 38종의 시정기념엽서 중에 34종을 소장하고 있다. 앞으로 시정기념엽서에서 나타난 근대화 표상과 왜곡된 조선 실상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 박광종 특임연구원
[참고문헌]
박한용,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민족사랑』 2018년 7월호
강동민, 「식민지 지배의 선전물, 관제엽서」, 『민족사랑』 2020년 9월호
이순우, 「병합기념일을 제치고 시정기념일이 그 자리를 차지한 까닭」, 『식민지비망록 1』(민족문제연구소, 2024)
신동규, 「조선총독부의 ‘시정기념 사진그림엽서’로 본 식민지 지배의 선전과 왜곡」, 『일제 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와 식민지 표상』(민속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