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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냉장고에 새끼 삵 3마리가…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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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냉장고에 새끼 삵 3마리가…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
장항습지 유실 지뢰 폭파 피해자 시민운동가 김철기 편

차상덕 시민기자

그가 잠에서 깬다. 오른쪽 무릎 아래가 허전하다. 3년 전, 지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 홀로 뚝 떨어진 꿈이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답 없는 질문에 좌절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던히 재활의 시간을 버텨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

아침 해가 오른다. 그가 출근 준비를 한다. 두 발에 운동화 끈을 조인다. 오른쪽 무릎을 대신한 의족은 그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차에 오른 그가 시동을 켠다. 왼발로 능숙하게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려 자유로에 진입한다. 차창 너머를 굽어보는 그의 시선이 한강 변을 따라 굽이굽이 뻗은 드넓은 녹색 지대에 가닿는다. 장항습지다. 그의 오른쪽 다리를 앗아간 지뢰가 있던 곳, 동시에 매일 보아도 좋았던 아름다운 장항습지다.

한반도 분단으로 보존된 장항습지 생태계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장항습지는 김포대교부터 일산대교 사이 약 7.6㎞, 여의도와 비등한 면적으로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곳엔 멸종 위기종 33종, 천연기념물 24종을 비롯하여 한반도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 등 해양 보호 생물 5종을 포함 1066종에 달하는 주요 생물종이 서식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버드나무 군락지이자 겨울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매년 3만여 마리의 물새가 찾는 생태계의 보고다.

수도권에 근접했음에도 장항습지의 생태계가 지켜질 수 있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 때문이었다.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DMZ)에 속하게 된 장항습지는 군사 보호구역으로 민간인 통제가 되어 물길을 가로막는 댐이나 하굿둑 등 인공 시설물 설치가 제한됐다. 덕분에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자유롭게 섞이며 형성된 다채로운 생태계가 이제껏 보존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장항습지는 상류로부터 떠밀려오는 온갖 폐기물과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식물들로부터 무방비했다. 습지 내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정화하기 위해 최초로 나선 것은 국가기관이 아닌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하 ‘한강’)이었다.

‘한강’의 조합원들은 2019년부터 습지 정화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부유 쓰레기를 걷어내던 조합원이 상류 DMZ 일대에서 습지로 유입된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를 당한 건 고양시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 시민운동을 펼쳐온 김철기였다. 2021년 6월 4일 그날은, 장항습지가 생태학적 가치를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등재된 지 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뢰 폭파 사고 이후 장항습지는 폐쇄됐다. 환경정화 활동도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장항습지에서 일어난 비극에 관해 묻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쉽게 잊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고 피해 당사자, 김철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만남 요청에 그는 흔쾌히 응했다.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던 지난 8월의 어느 날, 고양시장애인편의증진기술지원센터 사무실에서 장항습지 지뢰 사고 피해 당사자이자 생존자인 시민 활동가 김철기를 만났다. 장항습지로부터 차로 10분 거리 떨어진 곳이었다.

내가 발 딛고 선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환경운동

김철기의 이력은 독특하다. 처음부터 환경운동에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대 초 잠시 미국에 거주했다. 타국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한국사에 잔재한 문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국을 떠나있으니 한국이 더 잘 보였습니다. 친일청산과 같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민족문제를 대중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 일에 몸 바치고 싶었습니다.”

2003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고양시에 정착한 김철기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민족문제연구소 고양 파주지부 4, 5대 지부장까지 연임했다. 활동가 중심의 활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나서 지역문제에 참여하는 시민활동을 지향했던 김철기는 고양시에 뿌리를 둔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하며 지역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고양시는 그에게 거주지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고양시는 남북통일의 벨트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됐을 때 북한 주민에게 가장 먼저 개방될 지역이니까요. 그래서 한 사람의 고양 시민으로서 여기를 아름답게 가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그는 연대한 시민단체 중 하나였던 고양환경운동연합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며 환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고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현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이자 한강하구 장항습지 보전협의회 대표인 박평수다. 그와의 인연으로 김철기는 2018년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 창설됐을 때부터 ‘한강’의 조합원으로서 한강유역의 환경 정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철기가 장항습지 내 생태 정화 활동에 임하게 된 것은 2019년부터다. 2021년 사고 직전까지 약 3년간 꾸준한 정화 활동을 하며 습지 구석구석을 누볐던 그는 어느새 장항습지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어느 날은 삵의 새끼를 발견했어요. 장항습지에 삵이 있다는 건 배설물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본 사람들이 없었어요. 근데 하구에 밀려온 쓰레기 중에 큰 업소 냉장고가 있었어요. 문이 날아간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삵의 새끼 세 마리가 있었어요. 엎어진 냉장고와 땅 사이에 생긴 굴 같은 공간에 새끼를 놔두고 어미가 사냥하러 간 거죠. 이걸 어떻게 할지, 다른 조합원들과 의논했어요. 결국 삵과 삵의 둥지가 된 냉장고는 그대로 남겨두고 우리가 철수하자는 결론이 났죠.”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야생동물에게는 또 다른 집이 된 것이다. 자연은 어떻게든 또 다른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장항습지 안에서 김철기는 생명의 강인함과 유연함을 배웠다.

“장항습지 안에 나무판자로 길을 만든 생태탐방로가 있어요. 우리는 탐방로 너머 안쪽,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서 정화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엔 내가 평생 못 봤던 그런 아름다움이 있어요. 한강의 진짜 모습이죠. 강변엔 여전히 백사장이 있는 데도 있거든요. 환경정화 활동을 마치고 갈대가 뒤덮인 그 풍경을 보면 감탄이 나오죠. 정말 아름다운 자연이 그 안에 있어요.”

그러나 지뢰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장항습지 내부엔 지뢰 폭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후 3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구급대가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또 다른 유실 지뢰에 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구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습지에 지뢰가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장항습지는 저와 같은 환경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허가 하에 농어업에 종사하는 분들,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이었거든요. 게다가 사고가 일어나기 8개월 전인 2020년 10월, 군에서 1달간 지뢰 제거 작업을 실시했으나 사고 당시 그 지역엔 안전시설이나 (지뢰) 경고판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장항습지 환경정화 활동에 임하지 않았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항습지에서 환경 정화 활동을 한 일이 후회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에게 물었다. 단번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고가 어린 학생들이 아닌 저에게 일어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죠. (…) 저의 일로 다른 시민들이 장항습지 내부로 들어가 안전하게 생태 학습과 습지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철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어딘가 먼 미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나를 마주 봤다.

“후회하지 않아요.” 덧붙인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단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고 이후 그는 지뢰 사고 피해 실상과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 장항습지 ‘지뢰 폭발 사고 책임규명을 촉구하는 100만 고양 시민 서명운동’, 람사르 고양 장항습지 생태계 보전과 관리를 위한 간담회 등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등장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과 같은 민족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5년 동안 주말마다 친일파를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펼쳤던 그다웠다. 고양시가 자신의 고향이었기에 장항습지의 생태를 보호하는 일에 기꺼이 뛰어든 그다웠다. 김철기의 시민운동은 자신이 속한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를 사고의 충격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사고 이후에 참석한 토론과 세미나에서 다른 지뢰 피해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다 목소리를 못 내고 계시더라고요. 장애로 인해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 버린 터라 그런 것 같았어요. 그들을 대신해 제가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우리의 장애는 분단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말이죠.”

그는 변모된 자신의 삶 속에서 세상과 연결된 또 다른 화두를 찾았다.

“3년 전 그 사건은, 저에게 잊지 못할 일이에요. 다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남북분단이라는 환경을 다시 실감한 계기가 됐거든요. 그 일은 비단 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닙니다. 한반도 분단은 모든 국민의 상황이에요. 모든 문제해결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차근차근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서 터진 것은 지뢰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비극적 환경이 만들어낸 문제라는 걸 다시금 힘주어 강조했다. 애초에 전쟁이 없었다면 그가 지뢰를 밟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속한 환경은 우리의 역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회복의 마음으로, 재생의 힘으로

사고 이후 그는 매일 8km씩 4시간을 걷는다. 처음엔 의족에 익숙해지기 위한 재활 차원의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찾은 생의 의지를 북돋는 귀한 시간이 됐다. 김철기는 말한다. 사고가 자신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스스로 단단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책 중에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했듯 우리라는 존재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강철처럼 단련되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동안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그렇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나아갈 겁니다.”

김철기는 장항습지 환경 정화 활동 중에 일어난 지뢰 사고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 채 3년째 소송 중이다. 고양시와 한강유역청, 국방부가 지뢰 사고 책임을 서로 미루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장항습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는 꾸준히 장항습지 순찰로 정화 활동을 이어 나가며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 장항습지 인식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지뢰 폭파 사고 이후 장항습지 내부 정화 활동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유실 지뢰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 공방이 지지부진한 사이 장항습지는 폐쇄된 채 방치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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