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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친일파 무덤으로 바뀐 사천 단종태실지 환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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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소재 경상남도기념물
충북지역 단체들, 친일재산 국가귀속 신청 추진
경남지역도 환수 참여 논의 진행 예정

친일파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사천 단종 태실지(경상남도기념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충북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재산 환수운동을 본격화했는데, 그중에 사천 단종 태실지가 있다. 단종 태실지는 훼손된 채 방치돼 있고, 친일파 무덤이 들어서 있다.

최연국(1885∼1951)은 정부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파로 규정한 인물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그는 사천 출신 ‘땅 부자’ 유지였다. 일제강점기 경남평의원과 조선전람회 평의원, 11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으며,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세종대왕태실지와 단종태실지가 있음을 알리는 도로 안내판 /이영호 기자
단종태실지로 올라가는 작은 동산 /이영호 기자

◇단종 태실지에 친일파 무덤이 = 지리산 줄기가 뻗은 사천과 하동의 경계, 사천시 곤명면 서북쪽에 있는 은사리는 예부터 ‘천하명당’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왕실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胎·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싼 조직)도 신체와 동등하게 여겨 전국 최고 길지를 찾아 묻는 태실을 조성했다. 사천시 은사리 작은 동산에는 조선 4대 왕 세종과 6대 왕 단종의 태실이 있다. 두 태실은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이 두 곳을 태봉(胎峯)산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1929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조 정기를 끊으려고 모든 왕의 태실을 부수고, 태실에 봉안된 태 항아리를 경기도 양주로 옮겼다. 또한, 태실이 있던 땅을 개인에게 팔았는데 사천 단종 태실지는 최연국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최연국 후손들은 단종 태실지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다. 태실을 알렸던 비석과 석조물은 깨지고, 훼손돼 방치된지 오래다. 무덤 옆에는 최연국과 자손들 공적을 기리는 2m 높이 비석이 세워졌다. 비문에는 최연국이 민족 교육에 앞장서는 등 지역과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 적혀 있다.

주민 ㄱ 씨는 “예전에는 단종 태실지 동산을 작은 태봉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마을 사람 중에서 친일파 무덤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친일파 최연국 무덤 아래 좌우에 태실을 알리는 유적이 위치해 있다. /이영호 기자
친일파 최연국 무덤 오른쪽에 2m 높이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이영호 기자
친일파 최연국 묘비에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영호 기자

◇환수 시도 있었으나 실패 = 친일파 재산 환수 근거는 2005년에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이다. 이 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1904년 러일 전쟁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후손에게 상속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환수하도록 했다.

이듬해 출범한 친일재산환수조사위원회는 단종 태실지 환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조사위는 ‘최연국이 참의 관직을 태실지 소유 4년 뒤에야 받았기 때문에 이 땅과 관련해선 친일재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태실지가 최연국에게 팔린 건 1929년인데, 최연국이 ‘중추원 참의’ 관직을 받은 건 1933년이다.

2009년 결정 당시 조사위 내부에서 환수 대상 재산을 작위나 관직을 받은 이후로 한정하는 것은 역사 정의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었다. 친일행위를 해야 그 공로를 인정받아 관직을 받는 것이 상식이라는 논리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사천시는 경남도문화유산위원회와 단종 태실지를 복원해 역사교육 장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고, 토지 수용에 협조해 달라고 최연국 후손에게 묘지 이장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또한, 최연국의 친일행위 안내판을 설치하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이뤄지지 못했다. 안내판에는 ‘지금은 이곳에 개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라고만 적혀 있어 친일파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친일파 최연국 묘비 아래에 있는 단종태실지 귀부 /이영호 기자
최연국 무덤 아래에 조각나 방치된 단종 태실 태비석 /이영호 기자
경남도와 사천시가 설치한 단종태실지 안내판 /이영호 기자

◇충북 단체들, 국가 귀속 신청 = 충북지역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친일재산 환수운동에 나섰다. 1차 환수 대상으로 명성황후의 외척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민영휘(1852∼1935)와 최연국 후손이 소유한 토지를 선정했다. 토지는 20여만㎡, 공시지가만 40억 원에 이른다. 민영휘 일가 소유는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 내 9필지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민영휘 무덤도 대상이다. 최연국 후손 소유는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에 있는 3954㎡ 규모다.

충북 단체들은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에 국가귀속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자치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국가귀속신청서를 내면 친일파 후손들을 상대로 환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박종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친일재산환수조사위 활동을 종료하고 이후 법무부가 친일재산 환수 업무를 맡았는데 신규로 찾아 환수한 실적은 없다.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조사위를 다시 구성할 필요가 있고, 법도 개정돼야 한다. 이를 촉구하고자 먼저 친일파 민영휘와 최연국 일가 재산의 국가 귀속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연국 무덤이 단종 태실지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차장까지 조성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 땅이 국가에 귀속되면 합법적인 파묘가 가능하다. 행정재산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남에서도 단종 태실지 환수 관련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심인경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단종 태실지 문제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충북 단체들이 국가 귀속 신청에 나선 것에 감사하고, 관심을 두겠다”며 “사천지역 단체들과 논의해 역사 바로 세우기에 함께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연(더불어민주당·비례) 사천시의원은 올해 초 시의회에서 사천사랑시티투어 운행 코스에 포함된 단종 태실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태실지 묘지와 관련된 많은 민원이 제기돼 왔지만, 사천시가 뚜렷한 해결책 없이 2015년부터 시티투어 운행 코스에 포함하고 홍보해 온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정 시의원은 “우선 친일파에 의해 태실지가 훼손된 역사적인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해 단종 태실지를 역사교육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며 “시와 지역단체들이 환수운동에 나서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호 기자

<2024-11-18>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친일파 무덤으로 바뀐 사천 단종태실지 환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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