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글방 17]
일본의 일상 속 우경화와 역사수정주의(2)
–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
김덕영 책임연구원
3. 일본 애니메이션이 과거를 말할 때
(1) 곤조(根性)의 문제
일본 애니메이션이 과거를 말하는 방식은 반드시 지난 역사를 주제로 했을 경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작품에서 말하는 주된 메시지가 낡은 사고방식일 경우도 또한 과거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본다.
배구만화 <Attack NO.1> 야구만화 <거인의 별> 등 스포츠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곤조는 지금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된 정신적 기둥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TV시리즈물로 방영된 코시타 테츠히로의 <불꽃의 투구아 돗지 탄페이(炎の鬪球兒ドッジ彈平)>(국내명 <피구왕 통키>)다.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에는 주인공이 이른바 ‘지옥훈련’이라 불리는 온갖 특훈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하여 패자를 자기 앞에 무릎 꿇게 만든다. 패자는 용서를 빌거나 패배를 자인하며 승자는 넓은 아량으로 이를 받아주는 일관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지옥훈련의 과정은 가혹하다. 집체 만한 바위를 굴러 떨어뜨리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맨손으로 땅을 파며 때론 훈련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훈련에 게으른 자에게 혹독한 체벌이 가해진다. 그런 훈련을 받는 선수들은 초등학생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스포츠는 체력단련이나 유희의 의미가 없다. 반드시 승리만이 의미가 있다.
스포츠가 체력단련과 유희의 의미를 잃기 시작한 것은 일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총독에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1938년 ‘국체명징(國體明徵)’, ‘내선일체(內鮮一體)’, ‘인고단련(忍苦鍛鍊)’의 3대 교육방침으로 조선 학생의 황국신민화를 꾀하고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학교의 명칭, 교육내용 등을 일본학교와 동일하게 하였다.
세 가지 교육방침 중 ‘인고단련’은 체육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인고지구(忍苦持久)의 체력을 양성한다”라고 규정되고 있었다. 강건정신(剛健精神)의 단련을 위해 황국신민체조(皇國臣民體操), 건국체조(建國體操), 검도특설(劍道特設), 교련실시(敎鍊實施), 나체체조(裸體體操), 단련(鍛鍊)소풍, 한중단련(寒中鍛鍊), 한서중훈련(寒暑中訓練), 체육회(體育會), 건강아(健康兒) 표창, 운동의 장려, 수영빙골(水泳氷滑)을 들고 있다. 인고지구의 훈련을 위한 실천지침으로서 장거리소풍, 장거리경주, 도보통학, 엷은 옷 입기 장려, 좌행(坐行)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제는 서구와의 ‘투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한다는 신념을 심어줘야만 했다. 전쟁에서 이기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일제의 교육방침에도 그대로 녹아있었다.
패전 후에도 일본은 이런 곤조가 필요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Attack NO.1>과 <거인의 별>은 이런 절박함의 반영이기도 했다.
일본에 있어서 이런 곤조는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 곤조가 아직까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매호 600여 만 부를 찍어내는 일본 만화잡지 『소년점프』의 3대 캐치프레이즈는 우정, 노력, 승리이다. 이정신에 따라『소년점프』에 실리는 만화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투쟁과 승리를 핵심 테마로 하고있으며, 이러한 작품 중 성공작은 이후 그대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이런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정의롭다. 그 정의는 곤조를 갖고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승리했을 때 비로소 입증된다. 승리하지 못하면 주인공의 정의는 입증되지 않는다. 아무리 불합리해도 승리하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 또한 패자는 자신이 졌기 때문에 그 정의를 받아들인다. 승패에 의해 정의가 결정되는 논리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논리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우정과 노력이라는 탈을 쓰고 주입되고 있다.
(2) 노골적이거나 혹은 숨어있거나 – 군국주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는 군국주의적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또는 비난받는 작품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가노 마모루(永野護)의 <Five Star Stories>와 카와구치 카이지(川口開治)의 <침묵의 함대>이다.
먼저 <Five Star Stories>의 경우 대단히 화려하고 정교한 그래픽, 사전이 따로 나올 정도로 내용이 복잡다난하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갖고있는 작품이다. 신성한 우주의 지배자로 아마테라스란 주인공을 설정하여 만화 전편이 끝없는 전란 속에 있는 성단사(星團史)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테라스는 이 작품에서 빛의 신이다. 불로불사이며 무수한 국가가 난립하는 조커 태양성단을 통일할뿐더러 조커 성단이 수명을 다해갈 때 한 무리를 이끌고 다른 성단으로 옮겨가는 지도자의 역할까지 맡는다.
여기서 아마테라스는 일본 건국신화의 최고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름뿐만 아니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태양을 신격화한 것이고, <Five Star Stories>의 아마테라스는 빛의 신임을 비교해 볼 때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임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아마테라스는 조커성단 내 그리이스국의 국왕이며 주변 동방 10국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조커성단을 통일한다는 스토리 전개는 이 작품의 이면에 어떤 사상이 들어있는지 능히 짐작하게 만든다.
군국주의 시기 일본에서 창조신 아마테라스는 일왕의 직계 조상신으로 여기면서 일왕은 단순한 국가의 수장이 아닌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는 이데올로기의 배경이 된다. 즉 일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고, 군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일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아마테라스 신화는 일본 역사를 신화적으로 미화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일왕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한국에서 단군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작품을 만든 경우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흔히 드러나는 기본적인 쇼비니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국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주변국을 침략한 전력이 있는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의 신화 속 창조신이 동방 10국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통일한다는 스토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음으로 만화원작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2023년 실사 영화로도 개봉되었으며 2024년 2월 OTT인 아마존닷컴에서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된 <침묵의 함대>의 경우는 더욱 노골적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일본이 미국과 합작으로 비밀리에 핵잠수함을 건조한다. 그러나 일본은 핵무장이 금지되어 있어서 해상자위대 소속 잠수함 ‘야마나미’가 침몰되어 승조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 후 해당 잠수함의 승무원으로 발탁하여 이를 미국 제7함대에 소속시킨다. 그러나 일본인으로 구성된 함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이 핵잠수함과 함께 제7함대에서 이탈하여 원래 ‘Sea Bat(바다의 박쥐)’이라는 다소 굴욕적인 이름이 붙여진 이 핵잠수함의 이름을 야마토(やまと : 大和)라 지칭하며 자신들은 독립된 전투국가임을 선언한다. 여기서 전투국가는 핵무기를 갖고 있지 못한 국가와의 우호조약을 통해 그 나라에 핵공격력을 대신 제공해 주는 전투국가를 말한다.
일본은 발 빠르게 야마토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들과 우호조약을 맺으며, 미국은 당연히 야마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야마토는 미해군을 연전연파하며 뉴욕까지 이르는 긴 항로에 접어든다. 마침내 뉴욕에 도착한 야마토는 그 어떤 나라로부터도 독립된 ‘초국가적 핵잠함대’에 의한 ‘바다로부터의 침묵의 안전보장’을 주창한다. 어떤 나라든 핵무기를 사용하면 초국가적 핵잠함대에서 즉각 핵무기로 보복공격을 가하는 침묵의 안전보장에 의해, 핵무기를 갖지 않은 나라를 포함해 모든 나라가 핵억제력을 손에 쥐게 되는 새로운 ‘보안관’ 제도를 만들 것을 주장한다.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60억 세계인에 의해서 선출된 ‘세계정부’이다. 즉 세계의 신질서를 수립할 것을 야마토는 외친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이 작품을 ‘신군국주의’ 부활의 작품이라고 세간에서 비판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단 야마토(大和)는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을 의미한다. 이 또한 일제 군국주의에서 일본의 국가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태평양전쟁 당시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던 일본군함에 그 명칭이 붙여진다. 전함 야마토는 결국 오키나와 해전에서 침몰했지만 1970년대에 다시 <우주전함 야마토>(마쓰모토 레이지, 1974)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침몰된 전함 야마토를 개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전함으로 부활한다. 그리고 1990년대에 <침묵의 함대>에서 잠수함이자, 이 작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잠수함의 검은 선체에 빗대 흑선(구로후네 黑船)으로서 요란한 침묵의 항해를 한다.
여기서 흑선은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도쿄만 입구에 출몰하여 무력시위를 벌이자 이에 겁먹은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1854년 미일화친조약,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사건에 유래하는 것으로 당시 서구의 대양 항해용 함선은 타르로 선체를 검게 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상징적인 표현이다. 즉 공포의 대상이자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는 존재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야마토가 흑선으로서 미국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 지구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 생각이야.”라는 야마토의 함장 가이에다의 대사에서 보이듯이 가이에다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구를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신질서’의 수립이다. 언뜻 보면 각종 소설과 영화 등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라고 취급할 수도 있지만 위의 서술과 결합해서 생각하면 단순하지 않다.
일제의 조국정신(肇國精神, 건국정신)은 ‘팔굉일우(八紘一宇)’이다. 팔굉위우(八紘爲宇)라고도 하는데 일본 초대 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의 조칙 중 하나였던 것이 일제의 국시로 격상되었다. 팔굉(八紘)은 팔방의 멀고 너른 범위, 즉 온 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온세상을 하나의 지붕 아래 둔다’는 이 말과 그 뜻이 정확히 일치한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기본사상도 ‘팔굉일우’ 정신의 구현에 있었던 것이다. 하는데 일본 초대 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의 조칙 중 하나였던 것이 일제의 국시로 격상되었다. 팔굉(八紘)은 팔방의 멀고 너른 범위, 즉 온 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온 세상을 하나의 지붕 아래 둔다’는 이 말과 그 뜻이 정확히 일치한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기본사상도 ‘팔굉일우’ 정신의 구현에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1940년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한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외상의 주장이다.
‘흥아(興亞)의 대업(大業)’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팔굉일우 정신의 실현’에 있다. 신무천황의 조국(肇國)의 정신을 ‘대규모의 대륙경영’의 위에 실현하여, 그 위에 아시아로부터 전세계로 ‘황도인애(皇道仁愛)의 도(道)를 선포’하여 ‘세계인류 구제’하는 것에 ‘대화민족(大和民族)의 사명’이 있다. 이 ‘인류구제의 실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당장 극동에서부터 전아시아로, 그리고 전세계로 점차 이 ‘구제의 손길’을 뻗쳐가지 않을 수 없다.
가이에다의 사상을 잘 표현한 대사를 몇 가지 더 뽑아 비교해보자.
가이에다: “우리가 싸우고자 하는 상대는, 인간과 국가의 존엄성을 짓밟으려 하는 모든 적들이다.” “본 함대의 이상은 모든 인간과 민족의 완전한 자립 그리고 당당하게 존엄을 획득하는 것이다.”
마쓰오카 요스케 : “구미의 부당한 압박과 침해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중략) 구미의 물질본위의 과학문명과 이기주의 물욕주의 자아중심주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세계공전에 행해지는 결과 인류사상 미증유의 위기를 유발한다”
가이에다 : “우리는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좌우되는 UN과 달리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할 것이다”
일본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태평양전쟁 개전 직후 개최된 제79회 제국회의에서 연설한 내용: “대동아전쟁의 목표는 미국·영국의 질서원리와는 본질을 달리한다. ‘조국(肇國)’의 대사상에서 그 근원이 나온다. ‘도의(道義)’에 기초한 ‘공존공영’의 신질서로서의 대동아공영권의 확립, 더 나아가 ‘세계신질서’의 건설에 있어서 초석이다.”
이러한 비교 속에서 구체적인 표현은 다르고 화려한 언변으로 수사되어 있지만 어렵지 않게 군국주의 시절의 사상과 근간이 같음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침묵의 함대>에서 ‘핵무기’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대두되는 것은, 아마 일본이 전세계 유일한 피폭국으로 핵무장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핵무장에 대한 욕망이 숨어있음을 말한다. 동시에 미해군을 연전연파하는 함장 가이에다의 신출귀몰한 잠수함 전투는 2차세계대전에 대한 설욕이자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와 군사국가화에 대한 욕망의 분출로 봐도 무방하다. <침묵의 함대>에서는 일본이 핵무기를 직접 보유하기보다 ‘침묵의 함대’에 의해 핵 억지력을 갖는 것으로 포장하지만 이 작품에서 외무부차관으로 나오는 야마쓰 고이치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바다의 박쥐 사태는 일본의 군사적 독립을 명백히 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야마토의 함장 가이에다는 60억 전세계 인류의 의지를 믿으며, 그들에게 세계를 하나로 만들 공동의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메시아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그래서 미군의 공격을 뚫고 참석한 UN총회에서 가이에다는 이렇게 외친다. “인도에 사는 인류” “일본에 사는 인류” “미주대륙에 사는 인류”… 그리고 결국 저격당해 식물인간의 상태에 빠지는 가이에다.
야마토(大和, 黑船)를 몰고 청교도 국가 미국의 뉴욕에서 일본인 메시아가 된다. 즉, 60억 세계인류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야마토(大和)로 가이에다는 대화혼(大和魂) 그 자체가 된다.
4. 우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말할 때 – 결론에 대신하여
앞서 소개한 와 <침묵의 함대>뿐만 아니라 지면상 소개하지 못했지만 비교적 최신작인 <진격의 거인> 그 외 일본 국뽕에 가득찬 작품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 혹은 그 사상이 의도된 선전선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상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고 설득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도 그들의 평상시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있는 가치관으로 느껴졌다. 이는 1부에서 말했던 일본 국민의 의식에서 역사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을 ‘수정’하고자 했던 일본 우익의 역사수정주의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판단된다.
물론 모든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이런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국주의적 사상이 작품 전체에 관통하는 작품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그중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작품도 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던가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봐달라’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무척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보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반복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보고 싶으면 보면 된다. 다만 우리의 관점으로 지적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된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은 저들의 이데올로기에 무장해제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