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 최고 재판관 소수의견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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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조선인 군인·군속의 이름을 빼달라고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가 다시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관 한명은 “피해자에게 현저하게 가혹하고 불합리하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7일 야스쿠니 무단 합사 조선인 피해자들의 유족 일부가 제기한 ‘2차 대전 전몰자의 합사 폐지’ 등에 관한 소송에 대해 “사건 발생 이후 20년으로 정해진 제척기간이 경과한 것이 명백하다”며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1∼2심은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 합사 결정이 유족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날 최고재판소는 법률이 정한 소송 유효 기간이 이미 지나 판결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애초 이번 소송은 지난 2013년 10월22일 유족인 박남순씨 등 27명이 무단 합사 취소를 포함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시작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소송에 포함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의 야스쿠니 합사가 1959년 이뤄졌는데, 민법에 제척기간으로 정해진 20년을 훌쩍 넘어 소송이 제기돼 재판부의 판단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앞선 1∼2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과 원고들의 주장을 살펴봐도, 제척 기간을 주장하는게 신의칙에 어긋나거나 권리남용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제척 기간을 이유로 아예 야스쿠니 무단 합사와 그로 인한 유족들의 손해 배상 등을 판단을 피한 것이다.
최고재판소 판결 뒤 원고 가운데 한 명인 박남순씨는 기자들과 만나 “너무 허망하고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는 판결”이라며 “일본 정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지도 않았고, (야스쿠니에) 합사된 것은 더 알 수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씨는 “아직 힘이 있고 싸울 의지가 있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도 “유족들이 선조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를 일본 정부에 동의해 준 적이 없다”며 “또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야스쿠니신사 조선인 합사 명부를 넘긴 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여서 유족들은 그 이전에 합사 사실 자체를 알 수가 없었는데 1959년을 기준으로 제척기간 20년을 적용하는 것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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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 이전에도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와 관련 다섯 차례 소송이 있었다. 한국인 유족 416명 등이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게 2001년 일이다. 첫 소송은 10년에 걸쳐 3심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현재까지 한국인 유족 등이 세차례, 일본인 유족들이 두차례 등 모두 다섯차례 소송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단 한 번도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이날 판결문에는 유족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반대 의견이 포함됐다. 미우라 마모루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개인이 가까운 친족의 사망 때, 그를 추모하는 것은 종교·관습상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정신적 행위이며 (…) 정당한 이유 없이 공권력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 인격적 이익”이라며 “또 국가가 헌법상 정교분리를 위반해 개인의 인격적 이익을 해롭게 했을 경우, 국가와의 관계에서 법률상 이익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또 야스쿠니신사의 특성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무단으로 합사된 특수성에 비춰도 ‘합사 취소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원고 쪽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봤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일본의) 국사로 숨진 이들을 제신으로 모시는 종교적 행위로 합사를 원하지 않는 유족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며 “원고인 유족들이 합사를 동의하지 않은 점,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 합사된 이들이 전쟁에서 숨지게 된 경우, 야스쿠니신사의 역할 등을 비춰보면 (야스쿠니 합사로 인해 원고들이) 평온한 정신생활을 유지하는 데 방해를 받았다는 주장에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우라 재판관은 이날 최고재판소가 소송 기각 근거로 든 ‘제척기간 경과’와 관련해 “원고들의 피해는 (일본 정부의) 합사 행위 등을 인지한 뒤에야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이익 침해와 손해 발생(이 시작되는) 시점을 고려하지 않고, 제척 기간을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현저하게 가혹하고 불합리하다”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뒤에 피해자가 나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예견됐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최고재판소의 판단에 대해 “제척 기관이 경과했다고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원고 쪽 아사노 후미오 변호사는 “재판관 다수 의견은 민법상 제척기간을 적용해 상고를 기각했다”면서 “피해자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게 한 매우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이후에도 또다른 소송을 통해 야스쿠니 합사 취소 결정을 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유족은 “저희 할아버지는 원치않는 전쟁에 나가 중국 땅에서 의미없는 죽음을 당한 뒤,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깃든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다”며 “다음 세대들이 계속 법정 싸움을 진행할 것인 만큼 더 강한 지지와 연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2025-01-17> 한겨레
☞기사원문: ‘야스쿠니 조선인 합사 취소’ 또 패소…“피해자에 가혹” 소수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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