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평등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함께 나아갑시다
함세웅 이사장
연구소 회원과 가족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며 영육간 건강을 기원합니다.
저는 새해 첫날의 강론을 회원들과 함께 나누며 다시 묵상합니다.
올해는 을사년 뱀의 해입니다.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라”는 성경 말씀을 체화하며 온 겨레 만민을 위한 <역사기도>를 올립니다. 이이화 선생님은 우리 겨레의 현실을 <역사전쟁>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전쟁 중에는 누구나 다 정성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립니다. 올해가 바로 기도와 기억의 해입니다.
- 1905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을사늑약의 120주년
- 1945년, 일본 침략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지만 사실 미국과 소련의 점령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아픔 80주년
- 1965년, 비굴한 독재자 박정희의 한일굴욕외교 6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 세 주제와 사건을 마음에 깊이 되새기며 올해를 우리 연구소 회원들은 온 겨레와 함께 참으로 환골탈태, 재생의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곧 민족사의 괴물이며 암 덩이인 윤석열을 파면합니다. 3년 남짓한 윤석열의 기간은 우리 민족사의 오욕을 압축한 고난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아니,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 회의와 함께, “있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잖아!”하며 기막혀했습니다. 이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과거 파렴치한 모든 인물과 사건을 압축한 우리 시대의 흉물입니다. 이 괴물들을 우리는 차례차례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괴물과 함께 친일, 친미, 반민족 매국노들, 곧 국민의 힘, 부패 정치인들, 거짓 목사, 거짓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더구나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또 쓰게 한 사이비 종교 무당과 무속인들이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들도 모두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족들이니 말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큰 희망이 있습니다. 응원봉의 청년 학생 시민들입니다. 탄핵과정에서 여의도에 모인 수십만 수백만의 청년 학생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항의 집회를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웃을 위한 사전 결제, 행사 뒤에 쓰레기 등을 모두 수거하고 광장을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했습니다. 온 세계가 감동했습니다. 이 응원봉의 주역들이 참으로 우리 시대의 길잡이이며, 희망입니다.
동학농민전쟁에서 우리 선조들은 죽창과 횃불을 들고 저항했습니다. 이승만을 축출한 4·19혁명 당시에는 청년 학생들이 돌멩이를 들고 항거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대에는 화염병으로 항거했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는 촛불을 들고 항거했습니다. 2024년 지난해 여의도 광장에서 2000년대 청년세대는 이 모든 역사적 항거를 응원봉으로 압축해 승화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진전과 진화입니다.
응원한다는 것은 동참과 격려, 기도와 합심입니다.
저는 여기서 ‘평등’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확인합니다.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세례 원리도 바로 이 평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갈라티아 3:28-30)
1970-80년대 청년 학생들이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싸울 때 청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 배지의 문화를 넘어섰습니다. 특별한 표시랄까, 우월감과 차별을 암시한 흔적을 지우고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을 탄핵한 여의도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은 그 응원봉을 평등과 인권, 정의와 평화, 연대의 상징으로 승화했습니다. 응원봉에는 크기와 함께 구별과 나름대로의 차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타파를 외치는 광장에서 청년들은 이 차등과 차별을 넘어서서 만민 평등을 외치고 선언하고 확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평등을 향한 여정이며 순례입니다.
올해 우리는 모두 평등과 평화, 인권의 응원봉을 들고 민족의 일치와 화해, 친일, 반민족 척결을 위해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친일 청산!”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함께 기도하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