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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빈모금] 삼청동 안가를 독립운동가 김규식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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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빈 모금 참여

불법 계엄과 내란 모의 아지트로 전락한 삼청동 안가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3월 “과거 권위주의 시대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안가를 철거하고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라고 발표하면서 궁정동, 청운동, 삼청동 등에 있는 안가 12채 모두 철거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 결과 궁정동, 청운동 안가는 사라졌고 삼청동 안가는 서울시와 협의해 처리하되 기념품 가게까지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혔습니다.

역대 대통령과 삼청동 안가

하지만 삼청동 안가는 헌법재판소장 공관,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과 내란 모의 아지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전두환은 퇴임 직전 삼청동 안가에서 재벌들에게 598억 5천만 원을, 박근혜는 대통령 재임 중 역시 재벌 총수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 뒤 774억 원을 강제로 받아냈습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 관저-집무실 용산 이전과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이곳 삼청동 안가 영역에 존재했던 옛 삼청장을 복원하여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장소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규식의 삼청장

김규식은 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으로,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144명의 각국 대표가 자리했는데, 한국은 가장 많은 수인 56명이 참가했습니다. 김규식은 홍범도, 여운형 등이 참여한 이 대회의 한국 대표단장이었습니다. 해방 정국에서는 김구, 이승만과 더불어 ‘우익 3영수’로 꼽히면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을 지내며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분단을 막기 위해 1948년 4월 김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김두봉이 참석한 남북요인회담을 가졌습니다. 6.25전쟁이 나자 피난가지 못하고 9월 서울에서 납북되어 그해 12월 10일 서거했습니다. 후손들은 납북자 가족이라는 고통을 받았으며 김규식은 납북을 빌미로 서훈조차 받지 못하다가 1989년이 되어서야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때문에 김구 선생의 경교장, 이승만의 이화장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김규식의 삼청장과 그 터는 시민의 접근조차 막힌 채 안가로 쓰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삼청장 복원을 위한 노력

김규식 선생의 손녀인 김수옥 여사(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가 대표로 있는 우사김규식선생연구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차례 ‘삼청장을 복원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복원은커녕 경호상의 이유로 관람조차 할 수 없었고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사김규식선생연구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022년부터 삼청장 복원을 위해 현장 답사, 문헌 연구, 증언 채록, 학술회의 등의 선행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옥과 양관으로 구성된 삼청장 터는 현재 삼청동 145-6번지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청장 복원하여 역사교육공간으로

삼청장 위치 비정 작업을 전담한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특임연구원은 “삼청동 안가 일대는 원래 고종 시대에 태화궁이 자리하였다가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이윤용과 민규식 등 대표적인 친일 인사들의 거처로 사용되는 등 역사의 굴곡이 가득 배어있는 공간이었다”면서 “이러한 흔적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김규식 선생의 활동 근거지였던 삼청장을 복원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고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과 독재의 잔재로 얼룩진 삼청동 안가를 평생을 민족의 독립과 통합에 삶을 바친 독립운동가 김규식을 기억할 수 있는 삼청장으로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활짝 열린 역사교육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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