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천안 호두과자의 최초 창안자는 일본군 헌병오장 출신 – 알고나 먹자! 천안 호두과자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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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처음 제조한 사람은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라는 일본인이다. 그런데 이 시무라 마츠타로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 : 분대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새로이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3·1운동 관련 사료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19년 5월 26일에 작성된 장문환(張文煥 ;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지사 관련 공주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4월 3일 예산 고덕면 대천시장의 독립만세시위 때 병기(兵器)를 사용하여 조선인 1명[피살자는 인한수(印漢洙,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을 사살하고 이에 항거하는 주민들을 탄압했던 책임자가 바로 당시 대천리헌병주재소장이던 육군 헌병 오장 시무라 마츠타로였다.

이 사료 발굴을 계기로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특임연구원은 호두과자를 창안한 시무라와 헌병 오장 시무라의 동일인 여부와 호두과자의 유래에 대한 정밀 조사에 들어가 그 과정을 상세히 정리했다.

이 연구원이 밝혀낸 시무라의 군 복무 경력은 다음과 같다.

최초의 기록은 『군사경찰잡지(軍事警察雜誌)』 17호(1909년 3월)에 나타난다. “보병상등병 시무라 마츠타로(步兵上等兵 志村松太郞), 공병일등졸 사토 시게조(工兵一等卒 佐藤繁藏), 우(右) 2월 25일 헌병상등병(憲兵上等兵) 명령, 대구분대(大邱分隊) 천안분대(天安分隊) 도쿄제일헌병분대(東京第一憲兵分隊) 편입을 명함”이라는 구절을 볼 때, 1910년 이전의 시점부터 한국주차 헌병대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스기 이치로헤이(杉市郞平)가 펴낸 『병합기념 조선지경무기관』(1911)에는 원주헌병분대 갑내리파견소(甲內里派遣所, 횡성 갑천면) 소속 육군헌병상등병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912년 8월 1일을 기준으로 수여한 한국병합기념장 수령자 명단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주차헌병대 조선총독부경찰관서) 직원록』(1916년 10월 1일 현재)에는 당시 공주헌병대 대전헌병분대에 소속된 그의 출신지역이 ‘카나가와현(神奈川縣)’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1919년 5월 1일 현재 기준으로 작성된 『직원록(職員錄)』(1919년 11월 발행)에는 공주헌병대 천안분대 병천주재소부(幷川駐在所附) 헌병오장으로 나와 있고, 『조선총독부관보』에는 1919년 8월 1일자로 육군헌병오장의 신분이면서 조선총독부 경부(警部)로 임명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이 연구원은 ‘호도소(胡桃燒, 쿠루미야키)’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호두과자’의 유래에 관해서도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해 정리했다.

지금까지는 『부산일보』 1931년 4월 12일자에 실린, 「부산에서 개최된 제1회 전선과자이품평회(全鮮菓子飴品評會)에서 시무라제과포(志村製菓舖)의 ‘쿠루미야키’가 일등상 금패(一等賞 金牌; 전체 64점 중의 하나)를 수령」기사가 호두과자를 언급한 가장 이른 기록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경성일보』 1931년 1월 16일자에 「천안 쿠루미야키의 시무라제과포가 작년말(1930년말) 대매출 추첨을 행하고 당첨자에게 온양온천 신정관에서 오찬향응을 베푼다」”는 단신기사가 실려 있음이 확인된다.

무엇보다도 『실용신안공보(實用新案公報)』 제635호(1930.9.23일 발행)에 게재된 시무라 마츠타로가 출원한 등록의장(登錄意匠; 등록번호 47914)에 ‘호도과자(胡桃菓子)’란 명칭이 명기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출원연월일이 “소화 5년(1930년) 2월 14일”로, 등록연월일이 “소화 5년(1930년) 7월 10일”로 각각 기재되어 있다. 1930년 이전 시기에 나온 여러 간행물 -『조선공론』 1925년 3월호(경남철도 연선소개), 『조선의 물산(朝鮮の物産)』(1927), 『조선철도연선요람』(1927), 『경성일보』 1928년 6월 24일자(각지의 명산 여러 가지) 등- 에는 시무라제과포의 취급상품으로 ‘천안명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호도양갱(胡桃羊羹, 쿠루미요캉), 호도사탕(胡桃飴, 쿠루미아메), 호도만두(胡桃饅頭, 쿠루미만쥬) 정도만 등장한다.

위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호도과자’ 또는 ‘쿠루미야키’라는 명칭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1930년 시점의 것이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소화 8년판) 조선상공록』(조선판, 1932)이라는 자료에 ‘시무라제과포’의 창업연도가 ‘1920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도 이번에 새롭게 밝혀냈다. 시무라 마츠타로가 일본군 헌병의 신분을 벗어난 때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자료가 확인되지 않지만, 이 기록은 그의 퇴직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로 일제의 식민지정책이 전환함에 따라, 1919년 8월 무단통치하 ‘헌병경찰제도’가 종식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기존의 직책이 일괄 폐관(廢官)되면서 민간경찰로 전환하거나 예비역으로 편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를 전후하여 시무라가 제대한 뒤 퇴직 직전의 근무지였던 충청남도 천안에 정착하면서 제과포를 개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헌병오장 출신 시무라 마츠타로의 행적과 호두과자의 출현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한 이순우 특임연구원의 기고문은 민족문제연구소의 회보인 『민족사랑』 2025년 2월호에 게재된다.

이와 관련해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미 국민 간식으로 정착한 호두과자를, 창안자가 일본군 헌병이라 해서 일제잔재로 여길 편협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 유래를 제대로 알고 호두과자를 먹을 때마다 선열들의 항일투쟁을 떠올려 보는 것도 과거사를 대하는 슬기로운 태도가 아닐까 한다”고 이번 사료 발굴의 의미를 짚었다.

[참고자료]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의 헌병 관련 근무연혁
– 1909년 2월 25일, 보병상등병(步兵上等兵)에서 헌병상등병(憲兵上等兵)으로 전환, 대구분대(大邱分隊)로 배치, 『군사경찰잡지』 17호(1909년 3월)
– 원주헌병분대 갑내리파견소[횡성 갑천면] 육군헌병상등병, 『병합기념 조선지경무기관』(1911), 16쪽
– 1912년 8월 1일, 한국병합기념장 수여, 육군헌병상등병, 『(일본제국)관보』 1913년 5월 14일자(부록)
– 1916년 10월 1일 현재, 공주헌병대 대전헌병분대 소속 육군헌병상등병, 『(조선주차헌병대 조선총독부경찰관서) 직원록[職員錄, 1916년 10월 1일 현재]』(1916년 11월 15일 발행), 14쪽 (『경무휘보』 제132호, 1916년 11월분)
– 1919년 4월 3일 현재, 공주헌병대 예산분대 대천리헌병주재소장(大川里憲兵駐在所長) 육군헌병오장, 『장문환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5.26)』
– 1919년 5월 1일 현재, 공주헌병대 천안분대 병천주재소부(幷川駐在所附) 헌병오장, 『직원록(職員錄)[1919년 5월 1일 현재]』(1919년 11월 22일 발행), 183쪽
– 1919년 8월 1일, 육군헌병오장(조선총독부 경부 임명), 『조선총독부관보』 1919년 8월 5일자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의 주요 활동사항
– 1920년, 시무라제과포(志村製菓舖; 충남 천안 본정 1) 창업, 『(소화 8년판) 제국상공록』(조선판, 1932)
– 1924년 11월 23일, 천안실업동지회 임시총회(역원 선임), 『경성일보』 1924년 11월 27일자
– 1930년 5월 10일, 호도과자(胡桃菓子) 의장등록(意匠登錄, 등록번호 47914; 충남 천안군 천안면 읍내리 1번지), 『실용신안공보(實用新案公報)』 제635호(1930년 9월 23일 발행)
– 1930년 5월 27일, 천안재향군인분회 해군기념일 실탄사격대회 5등상, 『경성일보』 1930년 5월 29일자
– 1931년 4월 28일, 전선과자이품평회(全鮮菓子飴品評會, 부산)에서 일등상 금패(쿠루미야키)와 이등상 은패(쿠루미요캉 및 신쿠루미) 입상, 『부산일보』 1931년 4월 12일자
– 1938년 4월 10일, 천안읍도시계획에 따른 정명(町名)개선 구획개정의 결과로 신설된 본정 1정목의 총대(總代; 1940년 3월 31일에 임기만료)로 선출, 『조선신문』 1938년 4월 13일자
– 1938년 8월, 본정 1정목 정총대(町總代) 시무라 마츠타로의 발안(發案)으로 정기(町旗)를 제작하여 천안신사에서 입혼식(入魂式) 거행, 『조선신문』 1938년 8월 20일자
– 1940년 6월 24일, 천안군사탕배급조합 창립총회(부조합장 선임), 『조선신문』 1940년 6월 27일자
– 1941년 2월 8일, 조선수출공예품협회 주최 제1회 신충남토산품심사회에서 특선(쿠루미야키) 및 가량(쿠루미요캉) 수상, 『경성일보』 1941년 2월 12일자
– 1941년 2월 14일, 국민연맹 천안군 및 천안읍 경제통제협력회 결성(이사 선임), 『조선신문』 1941년 2월 17일자
– 1942년 2월 3일, 충청남도과자공업조합 설립(감사 선임; 천안읍 본정 83번지), 『조선총독부관보』 1942년 8월 5일자
– 1944년 12월, 일본적십자사 유공장(有功章) 수여[사자방조(社資幇助)의 독지(篤志) 또는 사업상의 공로 사유], 『조선총독부관보』 1944년 12월 27일자


『(소화 8년판) 제국상공록(帝國商工錄)』[조선판(朝鮮版)] (제국상공회, 1932), 88쪽
시무라제과포(志村製菓舖),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
충남 천안 본정1(忠南 天安 本町一), 각종과자제조판매(各種菓子製造販賣)
[창(創; 창업)] 대정 9년(1920년)
[전(電; 전화)] 112
[〒(진체저금 구좌번호)] 경성 6997(京城六九九七)
[은(銀; 취인은행)] 동일지점(東一支店, 동일은행 천안지점)


『실용신안공보(實用新案公報)』 제635호(1930년 9월 23일 발행)
[등록의장(登錄意匠)]
– 등록번호 : 47914
– 의장의 명칭 : 호도과자(胡桃菓子)
– 종류 : 18
– 지정물품 : 과자
– 등록연월일 : 소화 5년(1930년) 7월 10일
– 출원연월일 : 소화 5년(1930년) 2월 14일
– 의장권자 주소 : 조선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 읍내리 1
– 의장권자 씨명 :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


『장문환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5.26)』(국가기록원)
『장문환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5.26)』(국가기록원)
『(1919년 5월 1일 현재 기준) 직원록』(1919년 11월 발행)
『실용신안공보』 제635호(1930년 9월 23일자)
『(소화 8년판) 제국상공록』(조선판, 1932)
천안명물 쿠루미과자포 전경, 『조선신문』 1931년 9월 27일자
시무라제과포 호도과자 광고, 『관광조선』 193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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