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장관 ‘김구 중국 국적 발언’ 파장
김구 중국 귀화설, 2009년 처음 언급돼
2016년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주장
김구 귀화 입증 사료 없어… “금시초문”
“뉴라이트, 이승만 띄우려 김구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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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14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구 선생의 국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발언은 지난해 8월 김 장관의 “일제시대 선조들은 일본 국적이었다” 발언과 더불어 최근 ‘일제강점기 국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보수 진영의 홍준표 대구시장도 김 장관의 발언에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일부 강경 보수 지지자들은 김 장관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김구는 중국 국적을 가졌을까? “국사학자들이 다 연구해놓은 게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김 장관의 이야기가 맞는지 한국일보가 역사학계를 통해 검증해 봤다.
김구 중국 국적설, 2009년 이승만 일대기 보도서 처음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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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중국 국적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세력으로부터 처음 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내용은 2009년 국내 한 보수 언론사의 이승만 일대기 기사에서 최초로 언급됐다. 기사는 “이승만은 당시 독립운동으로 40년간 무국적을 유지한 반면, 김구, 서재필, 안창호 등은 대부분 편의상 중국이나 미국 국적을 얻었다”고 했다.
김구 중국 국적설은 이후 일부 언론사의 칼럼에서 조금씩 인용되는 수준에 머물다가, 2016년 건국절 논란이 일면서 점화됐다.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시기로 볼 것인지, 1948년 정식 정부 수립 시기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2016년 8월 전희경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개최한 건국절 토론회에서 뉴라이트 인사로 알려진 류석춘 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은 “1919년 건국은 당시 외국 국적자들(이승만은 무국적자인 반면, 김구는 중국, 안창호는 미국,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국적자였다고 주장)이 주도한 것”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남북이 정통성을 나눠 갖게 하는 것이고 김일성 정권에 절반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며 김구를 비판했다. 그러나 실제로 김구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지만 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도 반대했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본보는 류 전 교수에게 김구가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료, 논문 등 실증적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류 전 교수는 “증거야 많다. 기록이 있다”면서 같은 뉴라이트 인사로 평가받는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저서 ‘테러리스트 김구’에 근거가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책은 김구가 주로 일본인을 살해한 ‘치하포 사건’에 관한 내용을 비판할 뿐, ‘중국 귀화’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류 전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 일본 국적의 조선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활동하는 데 어려우니 중국 국적으로 갈아타는 일이 많았다”며 “김구도 그중 한 명이다. 뻔한 거다”라고 말했다.
김구 귀화했다는 사료 없어… 역사학계도 “금시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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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전 교수의 주장대로 당시 중국으로 건너간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가 활동 편의를 위해 중국으로 귀화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신변 보호나 일제의 간섭을 막기 위해 편의상 현지에 있는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구의 경우엔 현재까지 중국에서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공식 기록이 없다. 오히려 공식 문건상 그는 1934년 무렵까지 중국 귀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34년 6월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이 작성한 ‘중국에 망명한 한인들의 명단’ 문서에 따르면, 중국으로 귀화해 귀화증서를 보유하고 있는 한인의 경우 일련번호로 체크되어 있으나, 김구의 경우 ‘무(無·없음)’로 표기됐다.
김구 스스로 자신의 국적을 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정황을 보여주는 사료도 있다. 1945년 4월 김구는 오철성 중국 국민당 비서장에게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파견할 임정 대표 5인의 여비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대표 5인 중 조소앙, 김규식 등은 독립운동을 위해 실제로 중국으로 귀화한 인물이지만, 김구는 서한에서 이들의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했다. 임정의 주석이었던 김구 역시 당연히 본인을 한국 국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계에서도 ‘김구 중국 국적설’은 금시초문이며, 활동 편의상 중국에 귀화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실제 있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왜곡한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그 당시는 중국도 국공 내전 때문에 명확히 중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상태가 아니었다”며 “이번 논란은 쉽게 말해 과거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인디언에게 국적을 물어보는 것과 동일하다. 국가라는 개념과 그 경계가 애매한 상태에서 ‘중국 국적 논란’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중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운동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이유로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 교수는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이라는 큰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 서류상 국적을 타 국가로 표기했는데, 이를 가지고 ‘중국인이다’ ‘미국인이다’ 논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며 “주관적인 국적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승만 역시 1918년 미국 체류 시절 징집서류에 자신의 국적을 일본으로 직접 표기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2025-02-23>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