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역사의 증인’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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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역사의 증인’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님께서 2025년 1월 27일(월) 오전 8시 57분 향년 10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습니다. 이춘식 할아버님은 1924년 전라남도 나주군 평동면 용동리에서 태어나 17세에 일본 이와테현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 끌려가 강제노동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현지에서 다시 일본군에 징집되어 고베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었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공습의 위험을 이겨내고 고베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을 맞아 끌려간 모든 조선의 청년들이 서둘러 고향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청년 이춘식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쇳물을 다루는 위험한 제철소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배고픔, 다반사로 일어나던 사고, 전쟁 말기 미군의 극심한 공습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자신이 강제로 노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효고(兵庫)현 고베에서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까지 1,000㎞가 넘는 머나먼 길, 전쟁의 폐허로 교통수단도 제대로 없었을 당시에 청년 이춘식은 자신의 인권과 존엄을 다시 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이춘식 할아버님은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소한 손해배상소송에 원고로 참여하여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해방 뒤 73년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법정에서 판결을 직접 들은 이춘식 할아버님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쁨이 아니라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라며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춘식 할아버님은 1997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한 여운택 씨, 신천수 씨, 그리고 2005년 한국에서 자신과 함께 소송에 합류한 김규수 씨를 떠올렸습니다.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으면 엄청 기쁠 텐데 나 혼자 나와서 눈물이 나오네.” 할아버님은 함께 소송투쟁을 시작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승소의 기쁨보다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바란다.”

이춘식 할아버님은 백 세가 넘는 고령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향해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버팀목이자 역사의 증인으로 피해자의 존엄을 직접 보여주신 이춘식 할아버님은 많은 이들에게 큰 힘과 희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으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이춘식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뜻을 이어받아 역사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이춘식 할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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