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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윤석열 ‘굴욕외교’ 회복 쉽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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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한겨레 박종식 기자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일본 전문가다. 대학원생 시절이던 1997년 일본 홋카이도 슈마리나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발굴 작업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지금껏 한-일 관계와 과거사 문제에 몰두해왔다. 그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시민사회의 연대를 위한 가교 구실도 도맡고 있다. 2025년 2월26일 오후 일본 출장 중인 김 실장과 전화로 만났다.

―일본엔 무슨 일로 갔나.

“일본 혼슈 도야마란 곳이다. 전범 기업 가운데 여성 근로정신대를 가장 많이 동원한 기계·부품회사 후지코시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한국 대법원이 2024년 1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했지만 후지코시 쪽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 원고 중 김명배 할아버지가 주총에 참석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내일(2월27일)은 윤봉길 의사가 매장됐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로 간다. 현지 재일동포 단체가 윤 의사가 매장됐던 땅에 비석을 세웠는데, 일본 우익단체가 자꾸 치우라고 요구한단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으로 잘 알려졌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활동에도 열심인 것으로 안다.

“두 가지 축이 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독립운동가 연구, 친일 잔재 청산 등이 한 축이다. 역사 수정주의 반대와 식민주의 청산, 역사교과서 문제와 뉴라이트 반대 운동 등도 여기에 속한다. 또 다른 한 축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진상 규명과 피해자 인권 회복 지원이다.”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신 길원옥(향년 97)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1월엔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향년 101)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셨고.

“길원옥 선생은 온화하시면서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운동가로서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분이다. 이춘식 선생은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이며, 강제동원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이므로, 가해 전범 기업은 배상 책임이 있다’고 확정판결한 소송의 원고 4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당시 판결 직후 ‘혼자 남아서 슬프다’고 말씀하셨다. 이 선생은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내놓은, 가해 전범 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에 강하게 반대하셨다. ‘먼저 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바란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제3자 변제안은 어떻게 돼가나.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위해선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였다. 국가 이익을 내세워 인권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 협정(기본조약) 체결 때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폭거다. 지원재단의 자금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2023년 12월과 2024년 1월에 걸쳐 약 50명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이 무더기로 나왔다. 한국 정부가 배상한다는데, 전범 기업 입장에선 피해자를 상대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쓸데없이 나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윤석열의 탄핵 재판이 마무리돼 헌법재판소가 평의를 진행 중이다.

“역사 문제를 봉인하고, 안보를 핑계로 한·미·일 군사협력을 추진했던 박근혜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권 때도 ‘위안부’ 합의를 무리하게 추진했다. 그때도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제3자 변제’안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 회복이라는 당연한 시민적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짓밟았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 일본 쪽은 ‘물컵의 반’을 채우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굴욕외교다. 이걸 다시 회복하고 되돌리는 데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대일외교와 관련해 차기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윤석열 정권이 망쳐놔서 어려운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도 ‘위안부’ 합의 때문에 대일외교가 쉽지 않았다. 올해는 한일 협정 60주년, 광복 80주년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식민주의 청산이다. 이는 인권의 문제다. 두 나라 간 정치협상으로 여기지 말고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보고, 피해자가 싸워온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2006년 한국 사회에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게 한겨레21이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인 2만1천여 명의 합사 철폐를 위한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역사정의 실현과 동아시아 평화 문제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025-03-01> 한겨레21

☞기사원문: “윤석열 ‘굴욕외교’ 회복 쉽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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