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열전>, 박시백, 비아북, 2021
지난 2024년 연말에 급작스럽게 내려진 비롯된 ‘불법 계엄’으로부터 국회의 계엄 해제와 탄핵 그리고 헌번재판소의 탄핵 심사가 종료된 지금까지 계엄과 계엄을 주도한 이들의 처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상식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너무도 명백하게 불법임을 알 수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이들의 ‘빈약한’ 논리가 누군가의 SNS와 집회 현장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면서 정책이나 사회의 제반 상황에서 많은 변화가 진행되었지만, 무엇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막연한 ‘친일’이나 ‘반일’이라는 표현을 넘어, 과거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그저 ‘불행했던 과거를 그냥 덮자’라거나, 혹은 ‘일제 덕분에 우리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라는 일제 강점을 옹호하는 논리로 비약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과거의 행위를 정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함으로써 미래의 발전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는 여전히 건재하다!”
‘본격 친일 청산 역사만화’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의 띠지에서 발견한 글귀이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 경제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신친일파’들이 여전히 발호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구절의 의미는 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고 하겠다.
몇년 전 친일파 후손의 번듯한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남루한 집의 사진을 나란히 SNS에 내걸고, 친일의 대가로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주장했던 어느 만화가 역시 그러한 ‘신친일파’의 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1운동을 지도했던 인사들조차 나중에는 줄줄이 친일의 길로 접어들었고, 해방이 된 후에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구구절절 변명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했던 이들의 구체적인 행적을 만화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미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35년>이라는 제목으로 7권에 걸쳐 그려냈던 저자가 그 가운데 친일파들의 행적만을 따로 간추려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친일 청산은 여전히 시대적 과제’라는 인식으로, ‘각 분야의 친일파들을 널리 알려 그들이 우리 현대사에 자리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위상을 바로잡는 것이 친일 청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친일의 역사’라는 제1장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일제 강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친일파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해방 후 친일 청산의 기치로 탄생했던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덧붙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유로 인해서 부정선거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이 친일파들과 그들의 후손에 의해 절대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이유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이승만을 ‘존경하는 인물’로 받들면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친일파들의 행위를 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는 황국신민이다’라는 제목의 제2장에서는 ‘정미칠적’과 ‘을사오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 당시 친일에 앞장섰던 ‘귀족들’과 ‘3.1혁명을 방해한 친일파들’, 그리고 ‘경찰과 밀정들’과 함께 망명지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인 ‘만주의 친일파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 이러한 행적을 보였던 친일파들은 일제가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자신들은 결국 ‘일본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주구(走狗)가 되어 친일에 앞장서고, 때로는 동포를 착취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밀고하면서 그들이 던져주는 금전이나 알량한 칭찬에 민족하며 살았던 것이리라.
마지막 3장은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라는 제목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이들의 행적을 고발하고 있다. 이광수와 윤치호를 비롯한 이른바 ‘명망가들’의 행적은 물론, 일제 강점기의 ‘관리들’과 ‘군인들’, 당시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던 ‘문인들’과 함께 ‘연극계, 영화계, 무용계’와 ‘음악계, 미술계’ 그리고 ‘언론계, 교육계, 여성계’를 비롯한 ‘종교와 종교인들’과 ‘재계 등’의 인물들의 행적을 그려내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특별부록’으로 ‘친일인물약력’이 제시되면서, 각각의 인물들의 친일 행적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출범하면서 친일청산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미군정과 이승만의 적극적인 방해로 인해서 끝내 그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친일의 대가로 호의호식했던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반성 없이 다시 우리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여전히 ‘친일청산’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적극적인 친일의 길로 뛰어들었던 이들의 행적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친일파 군상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다룬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불법 계엄을 엄벌해야 한다는 탄핵에 대한 ‘상식’마저도 부정하는 집회가 개최되었던 2025년의 ‘3.1절’에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었던 이유라고 하겠다.
김용찬 기자
<2025-03-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만화로 확인하는 친일파의 진면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