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후 지금까지 필화 가장 많은 시대는 윤석열 정권”…“백범 김구 선생 국적이 중국? 설명할 가치도 없어”
[일요신문] 필화(筆禍). 붓에서 일어난 재앙을 말한다. 당시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글이나 창작물에 대한 권력의 탄압을 당했을 때 필화를 입었다고 한다. 필화가 빈번하다는 건 그만큼 질곡과 비극의 시대라는 뜻이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분단 후 첫 금지곡으로 낙인찍힌 가수 남인수의 ‘여수야화’가 그랬고 1970년 정경유착을 질타한 ‘오적’을 발표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그랬다.
일요신문은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문학평론가이자 시민운동계 원로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만났다. 올해로 84세가 된 그의 책상엔 최근 출간한 ‘한국현대필화사’가 놓여있었다. 임 소장은 필화가 독재 정권에서만 일어나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평가의 역사적 예지력이었을까. 2024년 12월 2일 출간 간담회를 연 다음 날인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임 소장은 “8·15 이후 지금까지 필화가 가장 많은 시대가 지금의 윤석열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의 중국 국적설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에 대해선 “사기꾼 목사에게 속는 안쓰러운 사람들”이라면서도 “역대 독재 정권에서 해오던 분열 획책과 상대 진영 악마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임 소장과의 일문일답.

―출간과 간담회 시기가 공교로웠다.
“12월 2일이 아니었으면 간담회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엄 포고령 제1호 중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항목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 국민들이 막아내서 계엄이 해제 됐지만, 그렇지 못 했다면 필화사를 다룬 책이 어떻게 계속 팔릴 수 있었을까 싶다.”
―황석영 소설가 등과 함께 꾸준히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을 해왔다.
“그렇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발표를 했을 때부터 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윤 정권에 대해 평가해달라.
“청와대를 개방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부터 ‘윤 대통령은 정치력과 예지력,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청와대는 1948년부터 70년 이상 대한민국 사령탑이었다. 우리 군의 대표적인 지휘 시설이자 가장 안전한 지하벙커(위기관리센터)도 그곳에 있는데 그걸 버리나. 국가 환난이 닥치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를 하루아침에 결정해버리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 과정도 너무나 단순했다.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서 이전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예산 확보부터 보안시설 준비까지 최소 2~3년은 걸리는 일이다. 본인 임기 동안엔 대통령실 이전에만 전력을 다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법적 권한이 없던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국방부를 밀어내고 불과 두 달 만에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청와대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 역사 문제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보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역사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민족사를 모르고 정치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을 평가한다면.
“윤 정권 하에서 육군사관학교에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이 치워졌고, 뉴라이트 인사가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역사 관련 기관의 요직을 차지했다.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 이승만은 독선과 아집으로 독립운동 진영을 분열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탄핵을 당한 인물이다. 친일파를 등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해 민족 정통성을 훼손한 인물을 순국선열이 잠든 곳에 세우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돌이켜보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야당 지도자들은 소위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단 한 사람도 악마화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뿔난 악마 취급하면서 종북좌파로 매도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들이 진짜 악마였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들 탄압을 받은 사람들이 결국엔 대통령이 됐다. 이간질과 분열 획책에 넘어가지 않은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도 비슷한 프레임이 적용되고 있다고 보나.
“이재명 대표가 종북좌파라는 말이 제일 황당하다.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노동 운동하던 학생들이 위장 취업하러 공장 갈 때 이재명은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을 다녔다. 소년공 시절 프레스 기계에 팔을 다친 건 유명한 얘기 아닌가. 오히려 지금 극우 세력이 된 사람들 중에 과거에 진짜 좌파였던 사람들이 더 많다”
―일각에선 백범 김구 선생 국적을 중국이라고 주장하는데.
“말할 가치도, 해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걸 믿고 떠드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서 그렇지 실제론 전 국민의 몇 % 되지 않는 극소수다. 최근 극우 세력들이 윤 정권 내란을 비호하기 위해 혐중정서를 부추기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건 우리 국민들이 일궈낸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들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공직체계가 전부 중국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말인가.”
앞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2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김구 선생 국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중국에서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답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에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 국적은 한국이며, 김구 선생 국적 역시 명백한 한국”이라며 “독립의 중요한 가치가 폄훼될 수 있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2023년 3월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재원 마련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자금을 받은 국내외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제시한 배상 방법에 비판을 제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에게 노동 착취를 당했다. 일종의 채무관계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배상은 해당 기업이 하는 게 당연한 국제질서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 대신 그 돈을 갚도록 하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강도 편을 들어준 거고 피해금을 돈 뺏긴 사람 집안에서 찾는 꼴이다. 채권자인 우리 국민을 왜 채무자로 만드나. 기본적인 상거래 윤리의식을 파괴한 반자본주의적 해법이다.”
―해방 이후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여전히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이후 남한은 미 점령군에 의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형성됐다.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됐고 이 집단무의식적인 사회심리학이 냉전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됐다. 그 결과 ‘민족’이나 ‘국민주권’ 같은 단어는 불온시 되는 이 체제가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떠받친 주요 세력은 친일파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자이며 그들을 유사기독교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이 현재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나.
“사기꾼 목사들 주도로 국민 분열과 이간질에 종교가 동원되고 있다고 본다. 거짓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것도 만들어 조작한다. 그런데 일부 국민들이 여기에 속아 탄핵 반대 집회를 나가고 극우 세력을 신봉한다. 만약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면 그런 목사들이 있는 교회를 갈까. 진실을 알면 그러지 못 한다. 사기꾼을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앞으로 연구소가 할 일이 있다면.
“‘친일인명사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민족문제연구소 설립 목적을 친일파 청산으로만 알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연구소의 궁극적 설립 목적은 동아시아 평화 정착이다. 첫 번째는 남북 평화고, 두 번째는 동아시아 세 나라의 평화 도모다. 이 과정의 첫 단계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선은 이 정권이 망쳐버린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세우려 한다.”
임 소장은 윤석열 정부 시기의 필화를 다룬 책도 마저 출간할 계획이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동상 이전 논란과 ‘바이든 날리면’을 보도한 문화방송(MBC)에 대한 탄압 등 최근의 필화 사례가 포함될 예정이다. 임 소장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필화가 가장 많았던 시대는 윤석열 정권”이라며 “집권 기간은 짧지만 가장 길고 내용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2025-03-07> 일요신문
☞기사원문: [원로에게 길을 묻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사기꾼 목사들 주도로 국민 분열과 이간질에 종교가 동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