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후지코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김명배 할아버지와 한일시민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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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후지코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김명배 할아버지와 한일시민들의 연대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윤석열 내란 세력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선언한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무시하고 반헌법적이며 반역사적인 ‘제3자 변제’를 밀어붙였다.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부당한 선택’을 강요한 윤석열 정부의 폭거에 맞서 일본 전범 기업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지코시(不二越)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해 온 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과 김세호 전략홍보팀장은 지난 3월 26일 일본 도야마(富山)에서 열린 후지코시 주주총회에 원고 김명배 할아버지를 모시고 참가하여 일본 시민, 재일동포들과 함께 후지코시가 대법원판결에 따라 하루빨리 사죄,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방일 항의 행동을 벌였다.

지난 3월 26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서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기계·부품회사 후지코시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임영숙 씨의 남편 김명배 할아버지는 아내의 존엄과 인권의 회복을 위해 94세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후지코시 주주총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김명배 할아버지는 회사 측에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지만, 강제노동을 시키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은 채 ‘다 끝났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후지코시는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이행해야 한다”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후지코시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김명배 할아버지의 아내 고 임영숙 할머니는 충청북도 충주에서 12살의 어린 나이에 근로정신대로 도야마로 끌려와 무기 부품을 만드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일본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라는 일본인 담임교사의 꾀임에 속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도야마의 후지코시 공장까지 끌려왔다.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14시간의 중노동과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린 식민지 소녀 임영숙은 1945년 10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영숙 할머니는 자신의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안타깝게도 2004년 세상을 떠났다. 김명배 할아버지는 아내의 뜻을 이어 소송 원고가 되어 투쟁을 이어왔다. 피해자들은 일본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마침내 2024년 1월 25일 한국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3년 일본 소송으로부터 21년이 지난 기나긴 투쟁 끝에 쟁취한 소중한 승소 판결이었다.

해방되고 80년 시간이 지나는 동안 10대 소녀들은 90대의 할머니가 되었고, 박근혜-양승태의 사법 농단으로 지연된 2018년 대법원판결이 확정되고도 5년이 지나도록 판결이 미루어지는 동안 소송 원고 23명 가운데 15명의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사법 주권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의 비호 뒤에서 전범 기업 후지코시는 대법원판결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김명배 할아버지의 요구에 대해 후지코시 측은 “강제연행, 강제노동, 임금 미지급 사실이 없다.”라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라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30여 년 동안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지원해 온 일본 시민과 재일동포들로 구성된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北陸)연락회’ 회원들도 잇달아 손을 들고 후지코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지만, 회사 측은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하여 비난을 받았고, 소송 지원자들과 회사 측에서 동원한 주주들과의 신경전 속에 여러 차례 고성이 오간 끝에 주주총회는 졸속으로 끝났다.

김명배 할아버지의 방일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 도쿄, 나고야, 오사카, 규슈 등 일본 전국 각지에서 20여 명의 일본 시민, 재일동포들이 주주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달려왔다. 지원자들은 2박 3일 동안 숙식을 함께 하며 주주총회 당일 혐오 발언으로 피해자를 모욕하는 우익들에 함께 맞섰으며, 후지코시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낼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가자는 결의를 굳게 다졌다. ‘호쿠리쿠 연락회’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주택은 30여 년 전부터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도야마에 올 때마다 숙식하며 투쟁한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거실 벽에 일렬로 걸려있는 사진 속의 할머니들 가운데 많은 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그곳에 함께한 사람들은 할머니들의 기운을 받아 다시금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굳건한 연대의 힘을 다시금 확인했다.

도야마시와 가나자와(金沢)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지금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한국 시민들의 투쟁에 대해 일본 시민과 재일동포들이 높은 관심과 함께 연대와 응원의 마음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역사 정의와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고 피해자들이 평생을 바쳐 투쟁 끝에 쟁취한 2018년 대법원판결을 내팽개쳤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제해 주는 제3자 변제를 추진하자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물컵 반 잔’을 채우기는커녕 한국의 사법 주권을 무시하고 피해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해 왔다. 1965년 이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고자 시도한 윤석열은 곧 역사의 법정에서 준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회복하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한일 시민들의 연대투쟁은 다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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