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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와 신흥무관학교 교가가 울려 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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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와
신흥무관학교 교가가 울려 퍼진 이유

이정윤 독립운동가 후손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윤석열은 국회의 입법독재에 대해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한 계엄을 선포했다고 하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사건으로, 군이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질서를 훼손하고 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국가 주요 기관들이 혼란에 빠졌고, 국내외적으로도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치적 압박이 거세졌다. 그러던 중, 법원은 절차적 문제와 구속 필요성에 대한 재검토 끝에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했고, 검찰 또한 즉시 항고를 포기하면서 그는 52일 만인 3월 8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석방되었다고 해서 그가 무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질서를 위반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혐의로 여전히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그의 직권남용, 군을 동원한 불법적 조치, 계엄령 선포 과정에서의 법적 정당성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을 심판하는 것은 헌재만이 아니다. 매주 토요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하는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14차에 걸쳐 열린 집회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군 동원을 ‘헌정 질서 파괴’로 규정하며, 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지킨 가치, 그러나 윤석열은 이를 외면했다

특히, 지난 1일 삼일절을 맞아 열린 제13차 집회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독립합창단’이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불렀다. 이 노래들은 기념곡 그 이상의 의미로, 시대를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상징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의 선율은 졸업식에서 부르는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한국인이 있는 곳 어디서든 불렸던 노래였다. 남녀노소, 계층과 이념을 초월해 독립을 꿈꾼 이들이 함께 부르며 조국 독립을 다짐했던 곡이었다. 또한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독립군가’ 선율로 알려져 있는 곡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은 의병,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전통을 가진 ‘민족의 군대’, ‘국민의 군대’, ‘민주 군대’라는 의미를 되새겨 주는 노래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군대를 국민 앞에 세우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독립운동의 정신을 배반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공권력 행사의 범위를 넘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행태였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른 이유

1911년 중국 삼원보(三源堡)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울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인의 군사 교육기관이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자,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본격적인 무장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그들은 평범한 군인이 아니라, 독립을 위해 싸운 전사들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대한독립군, 북로군정서군, 서로군정서군의 핵심 인력으로 활약하며 독립전쟁을 이끌었다. 일부는 1920년대 독립군 부대에 체계적인 전술을 도입하여 전투력을 강화했고, 한·중 연합 항일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 다른 이들은 조선의용대와 광복군 창설에 기여하며 독립운동의 조직적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미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전신)와 협력해 광복군 특수훈련을 진행하는 등 전략적 차원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신흥무관학교에서 쌓은 역량과 정신은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투쟁과 희생은 청산리·봉오동 전투의 역사적 승리로,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로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독립합창단이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른 것은 그저 지나간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군대가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여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기 위한 행동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군대로 하여금 국민을 향해 무기를 들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원칙이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자 시대적 책무다.

광장에서 퍼진 ‘대한독립만세’, 그 외침은 계속된다

이번 독립합창단의 광화문 무대를 기획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랫동안 친일 청산, 역사 정의 실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해 온 대표적인 단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합창단 기획 역시 그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온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과거를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도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려는 실천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광화문 집회에서도 방학진 기획실장의 주도로 ‘친일파 청산’, ‘윤석열 파면’, ‘대한독립만세’라는 구호가 외쳐진 것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또한, 독립합창단은 제주 4·3 서울 추념식(4월 3일, 청계광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 음악회(4월 11일, 심산기념관) 무대에도 초청받았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이며,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전하는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부르는 노래는 기념곡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선언이며, 정의를 향한 행동이다.

아래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모인 독립합창단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명단이다.

독립운동가 권기옥 (후손 권현), 독립운동가 김창숙 (후손 김태욱), 독립운동가 백기환 (후손 이정윤), 독립운동가 송창석 (후손 송진원), 독립운동가 이강년 (후손 김갑년), 독립운동가 이관술 (후손 손옥희), 독립운동가 이재만 (후손 이해석), 독립운동가 지청천 (후손 이준식), 독립운동가 차기숙 (후손 차은미), 독립운동가 차리석 (후손 차수진), 독립운동가 최구현 (후손 최미경), 독립운동가 최구현 (후손 최윤경), 독립운동가 최병현 (후손 최충식), 독립운동가 유지호 (후손 유희왕), 독립운동가 장이호 (후손 장병화), 독립운동가 황정환 (후손 황선건)

이들은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과거의 유산을 기리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무엇이 옳은 길인지 판단하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나침반이다. 독립운동가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며 시대적 책임을 다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과연 윤석열은 그들의 희생과 정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지도자가 되었을까? 역사를 잊은 지도자는 제대로 나라를 이끌 수 없다. 다음 지도자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출처 : 슈퍼유니쌤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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