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신간 안내]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049

박도 기자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가 마침내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발간되었다.



[군말] 한 모금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다면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다. 흙은 곧 자연이다. 연어가 제 태어난 곳에 돌아와 산란을 하고서 죽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고향인 자연을 더욱 그리워하고 여건만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풍진에 얽매이어 떨치고 못 갈지라도 / 강호일몽을 꿈꾼 지 오래드니…”

한 가객의 시조처럼 나도 언젠가 도시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늘 생각뿐이다가 마침내 2004년 봄, 30여년간 다니던 직장도 내 자의로 그만두고 강원도 안흥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에 내려온 뒤 호미와 괭이로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얼치기 농사꾼으로, 뒷산 다람쥐와 멧새의 노래 소리에 푹 빠진 채 한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틈틈이 도시에 두고 온 자식과 여러 친지들이 그리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나는 안흥 산골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거름장치 없이 편지글 형식으로 써서 내 이웃에게 띄워 보낸다. 그와 아울러 지난날의 추억과 그리운 이에 대한 이런저런 사연과 뒤늦게 깨우친 삶의 고갱이들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듯 들려주고자 한다. 이 편지 글이 삶에 지친 이들에게 한 모금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다면 글쓴이로 더 이상 보람이 없겠다.

안흥에 내려온 뒤로 그때그때 느낀 단상들을 가급적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매일 일기 쓰듯이 자판을 두드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연재 기간 중 네티즌 여러분의 꾸짖음과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우선 60회 연재 분까지 묶어서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펴낸다. 이 책을 깨끔하게 펴내준 지식산업사 가족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며, 이 글 속에 담긴 여러분 모두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오덕 선생님이 생전에 나에게 주신 말씀을 여기에 옮겨 적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옛날부터 동양이고 서양이고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은 없었다.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아름답고 참된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반대로 자연을 배반하고 거역하면 사람은 병들고 스스로 망한다.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고, 자연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2005년 봄 안흥 산골에서 박 도


 
[추천의 말] 안흥에 또 하나의 명품이 되기를
 
‘안흥(安興)’은 산수가 빼어나고, 지명 그대로 편안하고 흥겨운 고장이다. 그래서 안흥은‘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인가 보다. 울창한 삼림 속에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고장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알맞다는 해발 500여 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먹을거리도 매우 풍성하여, 안흥찐빵을 비롯한 더덕, 한우 등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안흥은 평창, 대화와 더불어 이름난 장터로,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중간 기착지였다. 안흥 장터 마을은 서울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수많은 길손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들고 가는 길목이었다.

그 무렵 이곳 안흥 장터 밥집들은 하루에 쌀 한 가마 이상 밥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급격히 쇠락해버린 자그마한 고장이지만, 아직도 인심이 좋고 맛깔스런 음식은 그때의 명맥을 잇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최근에는 ‘안흥찐방’이 국민의 찐방으로 사랑받아서 우리 고장이 다시 지난날의 영화를 되찾고 있는 듯하여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안흥의 자연환경은 백두대간의 줄기인 매화산, 백덕산, 푯대봉 등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였고, 주천강과 상안천이 흐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네 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아직도 깊은 산 계곡에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금강초롱꽃 원추리가 방긋이 미소 짓는 천연 동식물의 보고이다.

1970년 초, 내가 처음 안흥면에서 서기로 공직을 시작할 무렵에는 안흥 인구가 일만 명 안팎이었다가 그 동안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삼천 명도 안 되는 아담한 고장이 되었다.

지난해 봄, 박도 선생이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화사한 모습으로 면사무소를 찾아오셨다. 그분이 온 뒤로 나에게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분이 틈틈이 올린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출력한 뒤 파일에 담아 면장실 응접탁자에 두고서 오는 손님들에게 안흥면 홍보로 보여 드리는 일이었다. 그 글은 나의 열 마디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박도 선생은 40여 년간 서울에서 지낸 분인데도 마치 안흥에 오래 사는 이 같았고, 안흥 태생 못지않은 애정으로 이 고장의 자연과 풍물, 그리고 인정을 아주 재미있게 글에 담아서 온 세상에 알렸다. 연재 처음에는 단순한 고장 소개나 풍물 안내로 여겼는데 읽어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는 저자의 오랜 인생 경륜에서 우러난 인생관과 생활철학, 역사관 등이 잘 드러난 글로, 한 번 손에 잡으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뿐 만 아니라, 오늘날의 농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치 비디오로 찍듯이 그려내고 있다. 농촌의 심각한 이농문제, 교육문제, 농가소득문제, 결혼문제, 혼자 사는 노인문제, 환경오염문제 등등을 샅샅이 파헤쳐 농사꾼들의 어려움 점과 하고 싶은 말들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때로는 촌철살인의 글로서 정상배를 꾸짖을 때는 박수도 보내고, 우매한 농사꾼을 껴안을 때는 함께 울고 웃음 지었다.

나는 박도 선생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통하여 내 고장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고,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는, 가장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마흔여덟 번째 편지 ‘다람쥐와 보낸 가을날’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는데, 글도 좋았지만 다람쥐 사진이 너무 귀여웠다. 나도 사진 동호인인데 박도 선생의 카메라 다루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이 책 거의 매 쪽마다 나오는 사진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줄 것이다.

나는 2003년에 안흥면장으로 부임하여 2년간 임기를 마친 후, 금년 1월 1일부터 횡성군 본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분과 좀더 안흥에서 함께 지내지 못한 게 무척 아쉽다.

비록 안흥면장에서는 물러났지만 안흥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끊임없을 것이다. 안흥의 명물이요, 국민의 찐빵이 된 ‘안흥찐빵’못지않게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도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아서 안흥에 또 하나의 명품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2005년 3월 이창진 (전 안흥면장, 현 횡성군청 종합민원실장)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