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인정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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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10월 30일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 대부분의 염원을 무시하고 수정권고안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현 정권의 성향에 맞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이하 교과서)를 수정하겠다는 것은 교과서 검인정제를 도입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6종의 교과서들은 모두 1997년 김영삼 정권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에 입각해 집필되었고 합법적으로 교육부의 검인정 과정을 통과하였으나, 사용 전부터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이념세력에 의해 ‘김대중 정권에 아부하는 교과서’ 또는 ‘좌편향친북반미’ 라는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 때마다 필자들은 이들의 주장이 학문적 논쟁이 아닌 색깔논쟁에 불과하므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특정 보수 언론과 단체들과 결탁하여 교과서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를 가했고 이에 호응한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이 그동안 교과서에 문제가 없다던 교과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 교과서에 대한 편향 시비가 정부 차원에서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재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교과부는 특정 이념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일부 ‘보수’적 정부기관의 요구를 제출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대한상공회의소라는 특정 한 사회세력을 대변하는 경제단체가 작성한 내용까지 집필자들에게 전달하면서 통상적인 전례와 달리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압력을 가하였다. 우리는 지난 정권 시절에 교과서에 대한 특정 이념세력이 시비를 할 때마다 교과서의 내용과 검정과정에 문제가 없다던 교과부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좌편향’ 논란에 가세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의 자율성을 지키는 기관으로서, 교육과정의 작성자이며 검인정의 주체인 교과부가 검인정제도의 기본 취지까지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교과부는 심지어 한 교과서를 ‘반국가적 통일운동 교재’라고 규정하는 ‘교과서포럼’의 수정요구안까지 포함시켜 국사편찬위원회에 253개나 되는 수정요구를 전달하여 좌편향 여부를 가려 달라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편이 구성한 ‘한국사교과서심의협의회’가 이에 응하지 않자 일부 연구사들을 통해 소위 ‘가이드 라인’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의견일 뿐 학계의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어서 교과부는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고 권한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다시 구성하여 열흘 남짓 만에 수정권고안을 마련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이며 그동안 교과부 관계자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교과서 편수인력을 가지고 너무나 많은 일을 담당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수정권고는 앞으로도 정권이 바뀌면 제도를 무시하고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정제로의 회귀에 다름없는 역사교과서 정책의 후퇴이며 또다시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시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번 발표에서 나온 교과서에 대한 50개에 불과한 수정권고를 보면 그동안 ‘좌편향’이라는 공세가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나마 50개 가운데 반 이상은 그야말로 숫자를 늘리기 위해 들어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첨삭지도’의 수준이다. 또한 북한과 관련된 서술의 지적에서 교과서가 발행된 시점 이후에 발생한 상황을 서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어떻게 ‘북한정권의 실상과 판이하게 달리 서술된 부분’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더욱이 일부 항목은 어떤 기준에 적용되는지 조차 모호하며 단순한 교과서 기술 상의 문제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나머지 15개 정도가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좌편향’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검인정제도 하에서 다양성의 측면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그 점이 바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교과부의 [보도 자료]는 교과부가 지적한 수정권고와는 매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집필진들이 올해 자율적으로 수정한 부분이 마치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했고 남북관계를 평화통일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서술한 부분이라서 수정한 것으로 강변하였다. 집필자들은 그동안 자체적으로 또는 교과부를 통해 전달된 수정요구가 있으면 그 내용이 타당한 경우 계속해서 자율수정을 했으며 이것은 교과부의 주장처럼 집필진들이 이승만 정부와 남북관계 서술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한국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교과서 검인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과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 특히 교과부의 수정권고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훼손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더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스스로 그 점을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교과부가 수정권고안과 출판사 별 수정사항 가운데 사실관계의 오류나, 보다 나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문제제기는 검토결과 타당성이 인정된다면 마땅히 수정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좌편향’이라는 개념과는 관계없이 집필자로서의 의무에 따른 것이므로 수정권고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수정권고의 취지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때, 왜 이 시점에 그런 내용이 제시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교과부는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집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역사학계의 대표들과 논의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수정권고안을 만들어 수정을 강요하면서 집필자를 ‘설득’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국 집필자와 출판사에 대해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교과부와 대화 및 공개토론을 할 의사가 있다. 사실 교과부는 이번에 여러모로 문제점이 있는지 조사해 보았으나 ‘좌편향’이라고 규정할 내용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밝혔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 현행 검인정제의 제도적 미비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극복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규정해 버린 대통령과 장관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별의미도 없는 내용까지 포함시킨 수정권고 50건을 만들어 무리한 보도자료를 배부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집필자들은 한국의 역사학계를 대표하지도, 어떤 특정한 이념을 추종하는 조직적 세력도 아니다. ‘좌편향’ 교과서를 의도적으로 집필한 ‘좌파 역사가’들은 더욱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거 국정 교과서보다 나은 교과서를 만드는데 참여한다는 보람을 찾기 위해 작업에 참여했다. 합법적인 검인정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세부적 서술까지 규정한 교육과정을 따라 집필해야 했던 것이 이들 교과서이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집필자 간의 어떠한 연락이나 상호 조정이 없었으며 그저 각 출판사에서 위촉한 집필자로서만 참여했을 뿐이다. 다행히 집필한 교과서가 검인정을 통과하여 교육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위안삼아 온 집필진들은, 일부 세력들에 의한 ‘좌편향 친북반미’라는 공격으로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동안 아예 검인정에서 탈락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거나, 교과서 작업에 참여한 것을 후회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누가 참여해도 당해야 했을 무의미한 시비이기에, 사회와 역사학계가 보다 교과서와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기에 우리가 희생양이 되어 교과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 땅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든든하게 후원해 주고 있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평소 순수한 학술단체로 활동해 오던 21개의 역사관련 학회가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이미 300명이 넘는 역사학자들이 서명을 마쳤다. 1,300 명이 넘는 역사교사들도 교과부의 수정권고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정부는 그 누구의 목소리보다도 먼저 역사교육의 주체인 이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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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 |
한국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일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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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출판사 : 김한종(한국교원대), 홍순권(동아대), 김태웅(서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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