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성명]법과 상식을 무시한 한국근현대사 수정강요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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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상식을 무시한 한국근현대사 수정강요를 중단하라


권력의 힘으로 역사를 농단하려는 시도를 전개해 온 이명박 정부는 최근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집필자들만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이하 교과서)의 내용수정을 할 수 있다고 했으면서도, 수정권고안 발표와 수정지시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출판사가 집필자의 동의 없는 내용수정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조치에 따른 집필자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출판사에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지만 이 일은 명백히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교과서 문제를 출판사와 집필자 간의 문제로 떠넘기고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압력을 입안하고 주도했던 주체가 청와대라는 점이다. 정치적 중립과 합법적 행정을 책임져야 할 청와대가 앞장서 출판사에 압력을 가하여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그동안 집필자들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수정권고안에 대해서 원칙적인 거부의 입장을 밝혔으나 꾸준히 대화를 추진해 왔고 내용 상 크게 문제가 없거나 수정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수정을 하겠다고 하였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하였다. 그러나 교과부는 집필자들이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고 집필자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자율적 수정을 제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정권고안을 밀어 붙였고 이에 응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수정지시’를 내리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이들은 50개의 항목이 마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는 것으로 규정하여 목표치 달성에만 급급하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이다. ‘수정지시’라는 조항의 입법취지는 검인정 통과후 임의로 내용을 수정하려는 집필자와 발행자를 막으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지 멀쩡하게 검인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라고 강요하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교과서 수정과정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시 교육청을 중심으로 특정 교과서의 채택을 변경하라는 압력을 가했으며 이들은 교과서 채택이 6개월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도 무시하고 교장과 학운위 및 교사의 의견이 다를 경우 교장의 임의로 변경할 수 있다는 지시까지 하였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우편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강사진을 구성하여 그동안 배워온 교과서와 교사들을 불신하라고 부추기는 반교육적 ‘현대사 특강’마저 강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쌓아온 학원의 민주화와 교육의 자율화 흐름을 역행하는 일로서 그동안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해 온 민주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대통령에서부터 교과부, 교육감, 교장에 이르는, 한국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 주체들이 이와 같이 규정을 위반하고 불법을 조장하면서까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강압적으로 수정하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또한 경제가 이토록 어렵고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변국과의 역사전쟁 및 영토분쟁 또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소모적인 역사내전에만 골몰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땅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은 물론 해외의 한국학자들까지 한결같은 목소리로 정부의 무리한 수정요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평생을 역사교육을 위해 헌신해 온 교사들을 모욕하는 이 현실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권력이 일시적으로 학자들과 교사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비틀어도 역사의 정의는 항상 살아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권력이 역사를 농단했던 과거의 사례들이 하나같이 실패했음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이러한 망동은 분명히 역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며 언젠가 준엄한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정치권력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 지를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의 역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검인정제도의 정신을 훼손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자신들이 검인정한 교과서를 편향된 교과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교과서로 규정했던 교과부에 법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집필자의 동의 없이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보고한 출판사를 상대로 해당 집필자들이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며 나머지 집필자들은 끝까지 지원할 것이다.


우리들은 교과부와 출판사가 하루 빨리 우리 사회의 법과 상식을 무시한 수정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바라며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Ⅰ. 청와대와 교과부는 집필자와 출판사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즉각 중단하라.

Ⅰ. 출판사는 정부로 받은 압력의 내용을 공개하고 집필자의 동의 없는 수정의견을 즉각철회하라.

Ⅰ. 교과부는 스스로 검인정한 교과서를 퇴출시키려고 하는 교육청에게 즉각 중지를 명하
라.

Ⅰ. 교과부는 무자격, 우편향 강사들에게 현대사 특강을 진행시키는 서울시 교육청을 문
책하라.

Ⅰ. 교육청은 불법적 교과서 채택변경을 중단하고 학교와 교사의 자율에 맡기라.

Ⅰ. 교과부와 교육청은 교육의 중립성과 역사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라.


2008. 12. 4.

한국근현대사 집필자협의회 참가 교수 일동


금성출판사 : 김한종(한국교원대), 홍순권(동아대), 김태웅(서울대)
대한교과서 : 한철호(동국대), 김기승(순천향대)  
법문사 : 김종수(군산대)  
중앙교육진흥연구소 : 주진오(상명대)  
천재교육 : 한시준(단국대), 박태균(서울대)   (이상. 출판사명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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