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절기로 입춘이다. 하지만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잘못되고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하고, 고백과 반성을 통해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봄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특히 출범 1년을 맞는 이명박정부가 그동안 한일 과거사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 절망은 어느새 체념으로 변하고 만다.
보름 전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삶터를 요구하는 철거민들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다섯 명이나 안타깝고 억울하게 희생당하셨다. 그런데도 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 흔한 ‘유감의 뜻’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잘못된 진압 책임을 물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사퇴시키라는 국민 여론에 대해서는 ‘법치와 조직 기강’ 운운하며 옹고집을 피우고 있다. 오히려 이에 분노하여 거리에 나선 시민들과 성직자들을 또 다시 진압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렇게 제 나라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그리도 높이 치켜세우는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지난 1월 일본 아소 총리 방한 무렵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 “(아리랑 3호 위성 발사 사업자로) 애초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 예정이었지만, 이 대통령이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잘 알다시피 미쓰비시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했던 대표적인 일본의 군수업체가 아닌가. 지금도 미쓰비시에 의해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한국인 생존 피해자들이 이 회사를 상대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법적 투쟁과 원정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재계와 함께 나치에 협력한 기업들이 기금을 모아 나치시절 강제노역자들을 위한 보상기금을 설립한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치부해야 하는가.
지난 주말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의 문화부 청사를 리모델링해 ‘국립 대한민국관’을 현 정부 임기 내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적과 신화의 역사를 과거 한순간으로 기념하기보다 미래로 확장하고 승화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청소년들이 첨단 사이버 공간에서 50~60년 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액을 들여 ‘대한민국관’을 만들려는 정부에게 묻는다. 그들이 말하는 ‘기적과 신화의 역사’ 속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디쯤에 존재하는지. 또한 청소년들과 대화시키고 싶은 ‘50~60년 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말이다.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국립 대한민국관’을 건립하기에 앞서 몇 년째 지지부진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도리이다. 만약 정부가 남은 4년 동안에도 지난 1년과 같은 전철을 반복한다면 이명박대통령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역사도 정신도 헐값아 팔아넘긴 저 1965년의 굴욕적인 협정의 책임자처럼 두고두고 역사의 오명으로 기록될 것임을 명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