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도쿄통신 1,도쿄지회의 어머니들과 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 수업참관

760

































<도쿄통신 1,도쿄지회의 어머니들과 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 수업참관>


 


‘도쿄통신’을 다시 쓰며


3년 전에 도쿄통신을 통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동안 도쿄지회의 자체 카페가 생기어 나름대로 카페에서 도쿄지회의 발걸음을 기록해 오면서 도쿄통신의 기능을 잊고 있었다. 이곳 일본 도쿄에선 매일 매일의 현실에서 고국의 회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도쿄통신이 고국과 동포사회, 일본사회를 잇는 좋은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도쿄지회의 어머니들




2005년 12월,『친일인명사전』을 후원하고 ‘역사문화운동’을 한다는 큰 뜻을 품고 도쿄지회가 출발했다. 친일청산을 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후원__참여하고, 한일__조일__남북관계가 중첩되는 일본 땅에서 역사문화운동을 하겠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큰 뜻인가? 뜻만을 생각하며 한 1,2년 아니 5년 정도, 무위세월을 보내어도 배부를 지경의 일이다.


이 큰 뜻 아래 민단계 동포, 총련계 동포 그리고 뉴카마(new comer __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조선)인을 지칭하는 말)가 모였다. 이들이 함께 모여 무위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5년의 세월동안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한 도쿄지회.



도쿄지회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건, 지구상에서 유독 우리 민족에게만 혹독하게 몰아치는 이념의 찬바람,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가 갖는 언어의 장벽, 같은 민족이라도 이미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그 사고의 차이 등등이다. 도쿄지회의 그 가녀린 어깨에 어찌 이런 무거운 짐들이 놓여 있는가? 그래서 한발 전진하는가 싶으면 두세 발 후퇴하는 듯한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가슴에 품은 뜻 하나로 이어온 도쿄지회다.


오늘은 조선학교(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회원들이 공개수업참관을 한번 보러 오라고 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조선학교를 찾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꽤 먼 곳이다. 같은 도쿄이지만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이름에도 西라는 방위를 나타내는 한자가 붙어있다. 2번 환승을 하며 전차를 타고 1시간, 또 버스를 타고 30분가량(그러나 버스편은 교통이 불편해 역에서 주로 택시를 이용)가야한다. 2번째 환승을 한 후, 내리는 곳까진 9번째 역까지 가야하므로 잠시 그 시간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사는 지역, 다시 말해 도쿄지회의 모임이 있는 곳까지 이들 회원은 먼 길을 오고 있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어느새 감긴 눈 속을 뜨거운 눈물이 돌고 있다. 일본인구 1억2천만. 그중에서 재일동포인구 60-70만. 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뜻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어 발걸음을 함께 해주는 그 발자국 소리가 뜻만으로 배불러 5년을 견딜 도쿄지회에, 또 다시 5년을 견딜 위로를 준다.


그러나! 도쿄지회는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보내온 것도 결코 아니고 그저 ‘견디는’ 도쿄지회를 운영해 나갈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도쿄지회의 회원들이 역량에 가득 찬 회원들이라서 자신감에 넘쳐 이런 선언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도쿄지회 회원의 대다수는 부족함으로 충만하다. 지식도 체력도 재력도 운동능력도…. 평범한 아줌마들의 지식이 얼마나 되겠는가? 냉장고 앞에서 ‘뭘 하려고 했었지?’하며 문을 잡고 생각에 잠기는 그런 현실. 살아온 세월에 못이기는 체력들. 생활을 압박하는 지갑 사정들. 변변치 못한 운동능력… 이런 각종부족은 우리들에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더욱 충만케 하는 오묘한 현실이다. 그러나 도쿄지회의 엄마들은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민족과 역사의 제단에 ‘어머니의 사랑’을 정성껏 바칠 열정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보통은 내 자식에게 가는 것인데, 어떻게 민족과 역사의 제단으로 갔는지? 도쿄지회의 엄마들이 그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먼 발걸음을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음을 다졌다.


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 수업참관


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는 이번으로 4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는 이 학교가 주최가 되어 ‘박치기’의 감독 이츠츠감독을 모시고 좌담회를 했을 때이다. 두 번째는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의 도서를 전하러 왔을 때이고, 세 번째는 이 학교의 바자회에 한국에서 물건을 보내고 도쿄지회가 참가 했을 때,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이다. 뒤돌아보면 도쿄지회 5년간을 이 멀고 먼 학교와 이렇게 인연을 이어올 줄이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예견’을 하게끔 하는 일들이 있다. 어느 사람이 진정으로 뜨겁게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그 뜻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나갈 것이라는 ‘믿음’같은 ‘예견’을 하게 된다.



西東京朝鮮第2初給學敎를 처음 이어준 회원은 정병무회원이다.(현재 병으로 휴양 중) 이회원의 통일에 대한 뜻이 매우 깊었다. 정병무회원은 지금 쉬고 있지만, 이 회원의 뜻이 이 학교 또는 뒤를 이은 회원을 통하여 이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네 번째 방문이라 오래된 교사가 마치 정병무 회원을 만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뛰쳐나오며, ‘조 선생 반갑소. 어서 오시오’하고 나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일으켰다. 60년이 된 교사는 매우 낡았다. 재정적인 문제로 학교의 운동장 일부를 매각하고 새로이 교사를 신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학생은 유치부 15명, 초급부 38명으로 전체 53명이다. 학교의 선생님은 총 15명이라고 한다. (담임6명, 유치원 선생님 3명, 교장, 교무주임, 도공(미술),



음악+영어, 우리말 선생님) 이날 학부모가 약 40여명 참관하러 왔다. 나도 조선학교의 수업참관은 처음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우리말로 하는 수업을 어린이들이 다 알아들을까? 걱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재일동포어투에 북한말투가 섞인 게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소리를 내여 보자요’ ‘실전화를 만들어 말을 주고 받자요’ 등이다. 유치부에서 초급부까지 내 딴엔 관심을 기울여 내용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허름한 학교환경과 적은 학생수가 수업내용 보다 먼저, 그리고 내내 내 가슴을 파고들면서 조선학교에 자신의 아이를 보낸 엄마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했다. 1교시가 끝나고 도쿄지회 회원인 어머니들이 나에게 수업을 참관한 감상을 물어왔다. ‘난 이 학교에 자신의 아이들을 보낸 엄마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어. 보통 엄마들은 자기자식들을 시설 좋고 이름난 명문 유치원, 학교에 보내려고 얼마나 기를 쓰고 사는데. 이 일본 땅에서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지키겠다고 이렇게 차별받고 허름한 학교에 자식을 보내니…’ 특히나 도쿄지회 어머니들의 개인얘기는 내가 알고 있는 터라 눈물로 메인 목을 비집고 더듬더듬 말이 나왔다. ‘언니가 먼저 울면 어째. 내가 꾹 참고 있는데…’ ‘그래. 그래…’


도쿄지회는 지난 6월 23일 ‘재일조선__한국인 그 과거와 미래’라는 행사를 가졌다. 한국의 KBS 스페셜『인물현대사, 박경식편』을 일본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일본어 자막을 붙여 상영하고 고려박물관 관장님인 히구치 유이치 선생님의 ‘재일조선인의 도항과 생활’이라는 강연을 듣고 재일3세들의 발언을 듣는 풍성한 행사를 가졌다. 약 80여명의 일본인, 재일동포들이 참가하였는데 그때 히구치 선생님의 강연에서 인상에 남은 말씀이 있다.



이런 역사로 조선인들이 일본 사회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는 조선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해준 거라곤 억압하고 차별한 결과 올해 에다가와구 조선학교 초급부에 입학생이 4명이 된 거. 그런 것입니다.


1,2교시 수업참관이 끝난 후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일본인 모임 ‘치마__저고리 친구모임’의 마츠노 씨의 특별강연을 듣고 유치부, 저학년생들의 춤 솜씨를 구경한 후 이 날 수업참관은 끝났다. 마츠노 씨랑은 점심을 함께 하면서 도쿄지회 엄마들과 3시간동안 여러 가지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 얘긴 언젠가 별도로 전하고 싶다. 노숙자, 실업자 문제, 조선학교 문제에 사회주의 정신을 실천하며 산다는 사람이기에. 실은 마츠노 씨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츠노 씨는 재일조선인들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 도쿄지회의 회원도 그 사진전에 자기 가족의 사진을 낸 적이 있고 그 역사를 얘기한 적이 있다. 매년 사진전을 개최하는 마츠노 씨의 사진전에 나도 언젠가는 시댁 식구 분들의 사진을 내어놓고 싶다. 그건 일본인들에게 재일동포의 역사를 알리기 이전에, 내 딸에게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왜 일본 땅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를 맨송맨송한 말로 하는 것 보다는 빛바랜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에 대한 역사는 그 일에 직접 몸담아온 회원들이 언젠가 ‘도쿄통신’을 통해 전해드리고자 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