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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정작 필요한 공공도서관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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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인터뷰] 창립 20주년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3월 1일 (화) 오후 7시 30분■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오늘 3부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로 꾸미겠습니다. 오늘 3.1절이에요. 이런 날이 되면 역사인식,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다룬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띄지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이런 특별한 날에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새기고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지난 20년 간 꾸준히 활동해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오늘 하실 말씀이 참 많을 것 같은데요, 친일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준 것, 이것이 민족문제연구소 지난 20년의 성과라고 말씀하시는 임헌영 소장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임헌영>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벌서 20년이 되었네요?

▷임헌영> 예, 세월이 참 빠릅니다. 우리가 늙는 것은 생각 안하고 20주년 되는 것만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 축하드립니다.

▷임헌영> 고맙습니다.

▶정관용> 초등학생들한테 3.1절이 어떤 날이냐고 물어봤더니요, 3.1절을 광복절로 알고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그러고요, 어떤 친구는 안중근 의사가 누군가를 치료해준 날이다.

▷임헌영> 상당히 기발한 상상력이, 만화적입니다. 참 역사의식이라는 게 그렇지요, 미국에서 보면 독립선언서를 읽어주고 이게 무슨 문구냐고 물었더니 공산당 선언이라고 나왔다는 그런 여론조사도 나왔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역사를 얼마나 안 가르치면 이렇게 되는 거지요?

▶정관용> 글쎄 말입니다. 제가 오늘 프로그램 시작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문자로 이런 우리나라 국경일 같은 것을 말이지요, 교육을 시켜가지고 시험 봐서 패스 못하면 졸업시키지 말자는 아이디어도 내고 막 그러셨는데, 어떤 인터뷰에 제가 아까 소개했습니다만, 친일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 이게 민족문제연구소 20년의 성과다, 라고 평가를 하셨던데.

▷임헌영> 자평을 하자면 성과인데, 사실은 우리나라, 제가 이 연구소 관련 하면서 여론조사를 계속 여러 기관에서 해보면, 친일파 청산은 국민들의 70% 이하를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해도. 많이 올라갈 때는 80 몇 퍼센트까지 친일파 청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문제는 숫자에 있지 않고, 국민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다 친일파 청산해야 한다고 하는데, 청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너무나 커요. 언론기관만 해도, 주요 3대 신문사를 비롯해서, 이 막강한 언론사들을 비롯해서 각계 각 분야에서 목소리 큰 분들, 이런 분들이 자꾸 제동을 걸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해야 합니다. 목소리가 클수록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정관용> 예, 말씀하신 것처럼 친일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국민적 인식은 확고히 정착되었다고 보시지요?

▷임헌영> 국민적 인식은 정착되었는데, 다만 일부 상류층에 있는 분들이 자꾸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자꾸 어떤 명분을 줄려고 하는 거지요.

▶정관용>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죠. 이 연구소 왜 만들었지요?

▷임헌영> 그 당시, 그러니까 1991년입니다. 저희가 이 연구소를 만든 것이. 91년이면 벌써 8.15를 맞은 지가 몇 년이 흘렀는데, 그때까지도 우리나라가 마치 독립군들을 마치 빨갱이처럼 여기고. 독립군을 때려잡던 경력이 경력으로 붙어서 자랑하는. 심지어는 우리나라 민주인사들이 수사기관에 가면 내가 독립군 때려잡은 사람이다, 라고 경력을 자랑하면서 고문을 했던, 그런 흔적이 있었던 시대, 그 잔재. 이거 결국은 친일파 청산 안 하면 안 된다, 라는 이런 민주화 운동권 내의 전체의 어떤 공통분모라고 할까요, 그런 소망이 합쳐진 것 같습니다.

▶정관용>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사실 친일파, 친일 잔재가 또 해방 이후에 정부의 주요 세력을 구성하게 되고, 여야 정당의 중요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임헌영>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뭐 정치, 종교,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정관용> 예, 그러게요. 그래서 기존 기득권의 뿌리, 뿌리로 가다보면 또 친일이 나오고. 어떤 그런 역사 아니었겠어요?

▷임헌영> 너무 뻔뻔스럽다 그럴까, 역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차라리 사과하고 그때 잘못했다, 지금부터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러면 되는데, 오히려 그걸 하나의 경력으로 내세우는. 독일 같은 데에서 보면 지금도 나치 관련 경력 있으면 공직에서 해직되고 지금도 재판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 시대 때의 경력이 승진의 조건이 되거든요. 참 대조적이지요.

▶정관용> 그래서 20년의 활동 가운데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습니다만, 제일 큰 사업이라면 역시 친일인명사전.




▷임헌영> 그렇지요. 만 18년 걸렸습니다. 사실 연구소 처음 김봉우 소장이 이걸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첫 일성이 제일 먼저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가까운 1차 목표였지요. 2차 목표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만. 그래서 18년 동안을 그것만을 위해서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정관용> 2009년 11월에 완성이 됐어요?

▷임헌영> 예, 11월에 완성됐습니다.

▶정관용> 18년이나 걸렸다고요? 왜 그렇게 오래 걸렸지요? 자료 자체가 우선?

▷임헌영> 여러 가지 자료 자체가 없었고. 또 여러 가지 재원 문제도 있었고. 연구진 자체의 뭐라고 할까요, 인적 자원. 연구원들 확보도 문제가 있고. 그리고 연구원 확보해놓고도 집필에도 문제가 있고. 그러면서도 지금 나와 있는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일부, 거기에 있는 자료는 최대한으로 활용하자. 사전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논문과는 달리 하나 때문에 못 나올 수도 있거든요. 사람 하나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늦어졌습니다.

▶정관용> 편찬 과정에서 정말 또 말도 많았어요.

▷임헌영> 예, 소송도 많이 걸렸고. 우리 연구소 앞에서 시위 하는 것은 예사이고. 기껏해야 20명 정도 와서 그야말로 이완용이 애국자다, 박정희가 애국자다, 이런 식의 구호를 들고 나와서 애국자를 왜 친일파로 모느냐, 이런 식의 황당한 구호를 가지고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구경할 정도의 그런 사건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너무나 떳떳하게 이 독립된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를 청산하겠다는 연구소 앞에 와서 시위를 하는 그 분위기, 그 사회적인 분위기. 이것이 참 개탄스럽지만 그런 속에서 연구는 연구대로 진행을 하다보니까 이제 여러 가지 예산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쳤지요.

친일인명사전은 객관적인 학술사전

▶정관용> 비판적으로 보는 분들이 주로 논거로 삼는 게 친일 행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그 당시 36년의 일제 지배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그 이후에, 해방 이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분도 그렇고, 문화계, 학계, 언론계 등등에서 혁혁한 공을 분명히 세우신 분들까지도 꼭 여기 넣어야 되겠느냐, 이런 이야기였거든요.

▷임헌영> 저희들도 그 혁혁한 공을 다 넣어놓았습니다. 그 사전을, 저희들은 학술적인 성과라고 저는 항상 이야기하는데, 학술적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건데요. 사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한편으로 참 면구스럽습니다만, 8.15 이후 모든 우리나라의 관계, 관련 학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종교, 여성까지도 어느 분야 사람이든지 우리 사전을 보지 않고 인물 연구는 불가능할 정도로, 그 성장과정, 학교, 학력부터 경력을 연대별로 자세히 넣어놓고, 개인 하나하나마다 참고자료를 다 넣어놓았습니다. 보시면 그야말로 학술사전이에요.

▶정관용> 친일 행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임헌영> 그렇지요. 태어나서부터 학, 경력부터 작고할 때까지 전부 다 넣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그렇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사전 나온 다음에는 아무 말씀이 없어요.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요.

▶정관용>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지요?

▷임헌영> 예, 그래서 이것은 어떻게 보면 과거사청산의 작업이자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연구에서 하나의 기초자료를 제공한 것입니다.

▶정관용> 이게 지금 판매되고 있지요?

▷임헌영> 예, 서점에 판매되고 있는데, 지금 한 4천 부 정도 나갔는데, 사실은 이런 사전류가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정설이 있습니다. 500부 정도 나갈 거라고. 그런 것을 제가 주장해서 2천 부 초판 찍었는데, 금방 한 두 달 만에 다 나가고 지금 3판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희귀한 현상은 정작 갖춰야 할 공립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같은 데에서는 대단히 인색하게. 뭐 그런 얘기들, 여러 신고를 저희가 듣고 있어요.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보고 싶은데 아무리 얘기해도 안 산다, 좀 문제 삼아 달라, 그러시는데, 우리가 문제 삼는다고 교육계에 있는 분들이 우리 연구소의 말을 들을 리도 만무하고. 우리 연구소보다도 힘센 쪽의 말을 듣겠지요?

▶정관용> 사전 같은 거야말로 개인이 집에 소장한다기보다는 도서관에 꼭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임헌영> 예, 그런데 의외로 공공기관보다는 개인용 수요가 많고. 특히 일본 쪽에서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미국 쪽에도 그렇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참 연구하는 자세라든가, 도서관 같은 데에서 자료를 갖추는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관용> 이 사전 공급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면서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임헌영> 노골적으로 서울시 전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감이었을 때, 노골적으로 그런, 각 학교마다.

▶정관용> 이걸 사지 말아라?

▷임헌영> 예. 그런 일이 있어서 우리가 한번 문제를 삼았지요.

▶정관용> 공정택 전 교육감?

▷임헌영> 삼았지만 뭐 전혀 반응이라든가 개선될 기미는 없습니다.

▶정관용> 앞으로도 더 많이 좀 판매가 되고 많은 분들에게 연구자료로, 여러 가지 자료로 계속 활용이 되어야 할 것 같고요. 그 다음 지금까지 18년 동안 거의 여기에 매달려서 2009년 11월에 이걸 끝내셨는데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제 어떤 일에 역점을 두고 계신가요?

일제 강점기의 민중생활사박물관 세울 것

▷임헌영> 지금은 사전 보완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 그 다음에 20주년을 맞아서 우리가 주력을 하는 문제는, 이제는 사전을 냈으니까 이 사전이 국민들에게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 그리고 보급하는 문제, 그리고 이 사전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무슨 단죄를 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그야말로 학술적인 연구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이게 왜 필요했는가를 국민들에게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는 역사관 건립이 필요하다.

▶정관용> 역사관?

▷임헌영> 예, 일제 강점하의 민중생활사박물관입니다. 쉽게 말하면 독립기념관이라든가 서대문에 있는 역사박물관과는 달리, 그것이 이제 하나의 정치적인 박물관이라면, 우리는 민중생활사 쪽에. 실제로 그 당시 사람들이 군에 갈 때, 천 가지 바늘로 천 뜸을 떠서 이 가슴둘레로 이걸 매고 가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이런 것들. 우리는 말로 들었지만 어떻게 생겼나 본적이 없거든요. 그런 것부터 군국주의가 낳았던 온갖 것, 그리고 그 당시 우리 민중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어떻게 수난을 당했는가, 그런 생활을 볼 수 있는 자료를 그동안에 꾸준히 모아왔어요. 우리나라에 굉장히 희귀한 자료, 유일한 자료도 있고요.

▶정관용> 지금 몇 점 정도 모으셨어요?

▷임헌영> 3만 점 정도 모았습니다. 우리나라, 일본 합쳐도 우리가 제일 많을 거예요. 그런 자료는.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고, 전부 다 기증을 받고 있습니다. 연구소 취지를 보고는 집에 가지고 있던 자료를 다 내줘서 많이 모으고 있는 것이지요.

▶정관용> 그런데 역사관 건립은 돈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부지도 필요하고, 건물도 필요하고.

▷임헌영> 우리 목표는, 아마 정부에서 하는 건 몇 백억 정도로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 하니까 최소한 50억 정도를 목표로 해서 금년 상반기 중에 추진위원회를 정식으로 출범시켜서 모금 캠페인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정관용> 국민 모금으로 50억 정도를 모아서 역사관을 짓겠다?

▷임헌영> 예.

▶정관용> 장소 같은 건 정해져 있나요?

▷임헌영> 아직 그것도 안 정해져 있습니다.

▶정관용> 일단 모금이 시작되어야 정할 수 있겠군요. 그 3만 점에 이르는 여러 가지 자료들은 현재 어디에 보관하고 있나요?

▷임헌영> 현재는 저희들 연구소 5층에. 박물관이 요구하는 요건이 있습니다. 50평 이상인가 되는, 최소한도의 요건을 갖춘 면적에서 일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다는 못하고.

▶정관용> 예, 다는 못하지요. 50평에 어떻게 3만 점을 전시를 합니까?

▷임헌영> 일부 전시를 해놓았는데, 그게 평이 좋아요, 와보신 분들이. 예를 들면, 오늘 3.1절입니다만, 3.1절에 직접 뿌렸던 삐라를 경찰이 주워서 압수해서 가지고 있던 그 삐라, 뒤에 경찰이 압수했던 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기미독립선언문도. 우리나라에 그거 몇 개 없습니다. 그런 것도 우리가 다 구입했습니다.

▶정관용> 일본 교토의 리쯔메이칸 대학에서 오늘부터 무슨 전시회가 열린다는데, 이것도?

▷임헌영> 바로 이 자료입니다.

▶정관용> 민족문제연구소가 빌려준 겁니까?

▷임헌영> 우리 연구소가 사실은 작년이 강제병합 100년에 해당되는 해여서 한일시민들이 함께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서대문 독립기념관에서 전시회를 했어요. 그런데 그 전시회가 너무나 평이 좋았어요. 몇 십만 명이, 초등학생부터 성인들, 노인들까지 다 와서 보고 놀라는 겁니다. 일제 때 우리 생활 전시해놓은 것을 보고. 우리가 80점을 전시했는데. 그 반응이 좋으니까 리쯔메이칸 대학 코리아센터와 평화박물관에서 아, 그럼 일본에서도 한번 하자, 이래서 오늘 10시에 개막을 했고.

▶정관용> 초청 전시회로군요?

▷임헌영> 예, 그래서 20일까지 하고. 그게 반응이 좋아서 동경, 히로시마, 일본 몇 군데에서 한 몇 달 동안에 걸쳐서 계속 일본 순회 전시회를 할 생각입니다.

▶정관용> 그런 전시회들이 아무래도 일본 내 인식 변화, 일본 국민의 생각 변화에도 기여를 하겠군요?

▷임헌영> 그렇지요. 일본도 우리처럼 아시아를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 참 좋아해요.

▶정관용> 예, 그런 세력들하고는 연대도 계속 해야 하는 거고요?

▷임헌영>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가장 큰 사업이었던 친일인명사전 마무리 짓고, 당면 과제로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임헌영> 예.

▶정관용>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 처음 시작하면서 한 초등학생의 기발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학교 역사교육, 요즘 돌아가는 거 보면 어떠세요? 없앤다고 했다가 넣었다가 막 왔다 갔다 하는데요.

▷임헌영> 역사를 홀대하는, 세계 역사에서 자기 나라의, 자기 민족의 역사를 홀대하는 나라가 세계 일류 국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세계 일류 국가는 다 자기 민족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만이 세계 일류 국가가 되거든요. 그래서 경제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우리 개인으로 보더라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 가족사나 자기 성씨, 양반 이런 것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유래는 다 있단 말이에요. 그런 뜻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그 동안에 그 역사를 너무 홀대했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정치인들의 편의주의. 여기에 너무 빠져있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생기고, 앞으로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서건, 어떤 정권에 의해서건 역사를 찾는 시기가 오리라고 봅니다.

▶정관용> 지금 현재보다는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시지요, 역사 교육에서?

▷임헌영> 훨씬 강화되어야지요. 전에는 각 공무원 시험이나 심지어 고등고시에까지도.

▶정관용> 필수과목이었지요?

▷임헌영> 예, 당연하지 않습니까? 설사 외교관일지라도, 외국에 가면은 결국은 자기나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없이 무슨 외교가 가능하겠으며, 공무원들이 자기 역사를 모르고 어떻게 공직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도로 반문하고 싶은 거지요.

▶정관용> 역사 교육 강화. 그리고 또 하나는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잔재 청산도. 지금 친일재산위원회 이런 것도 작년 7월 이미 해체가 되었어요. 게다가 친일재산으로 된 후손들이 자꾸 돌려달라고 소송도 제기하고 있고. 땅 찾기도 막 벌어지고 있고. 이것은 어떻게 보세요?

▷임헌영> 재산문제가 대단히 민감한 것 같아요. 역시 돈이 제일이니까. 그렇긴 한데 그동안에 많은 분들이 소송을 했지만 친일파 재산환수는 법원에서도 승소를 했습니다. 다 환수를 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는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 대법에서 판결이 나서 지금 이제 여러 가지 이유를 대서, 친일 한 것은 사실인데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는데, 사실 이것은 다들 그래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사유재산이 얼마나 신성하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사실 자본주의 법 체제 하에서 신성한 사유재산이라는 것은 정당한 노동으로,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축적한 재산은 대단히 신성한 것이고 이것은 손댈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보면 도둑질 한 것이라든가 부정부패한 것은 전부 다 환수하지 않습니까?

▶정관용> 예, 다 뺏지요.

▷임헌영> 예, 그런 범죄로 치면 자기 민족을, 혹은 국가를, 자기 민족의 한 일원을 이렇게 해를 끼치고 얻은, 취득한 재산은 다른 어떤 부정보다도 더 부정한 재산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시효가 있어서도 안 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그건.

▶정관용> 끝까지 해야 한다?

▷임헌영> 예, 그래서 친일파 재산 환수는 대단히 정당하다고 보는데, 그게 왜 그러냐 하면, 국민적인 여론이 더 강하게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관용> 아까 말씀하신 최근의 대법원 그 판결은 친일 행위를 한 것은 맞는데, 그 재산이 그것의 대가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식의 판단을 했던데요.

▷임헌영> 그 이미 작위를 받은 후에 형성한 재산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대가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정관용> 그게 계속 논란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 부분은.

▷임헌영> 사실 판결문 자체가 좀 애매해요.

▶정관용> 예. 지금 20년인데, 앞으로 한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가 친일잔재 청산에 있어서도, 역사교육에 있어서도 좀더 나아진 나라가 되어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후퇴할 거라고 보십니까?

▷임헌영> 저는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꾸 이걸 과거로 보는데, 저는 독도의 예를 잘 들어요. 독도 문제를 일본에서 거론하면은, 얼마나 우리 국민들이.

▶정관용> 똘똘 뭉쳐요.

▷임헌영> 예, 뭉쳐서 흥분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때 그렇게 말해요. 어떻게 그 조그마한 섬 하나, 그 바위섬 하나를 가지고는 그렇게 똘똘 뭉쳐주는데, 왜 나라 전체를 빼앗겼을 때, 국가 권위를 다 빼앗겼을 때, 우리 성과 이름이 다 빼앗겼을 때, 그때 그 나라를 팔아먹겠다고 한 분들에게는 왜 그렇게 관대하냐, 이렇게 물으면 아무도 말을 안 해요. 심지어는 일본과 스포츠 경기만 해도 밤을 새워서 흥분하는데, 어떻게 우리 국권 전체를, 나라 전체를, 이 옥토를, 삼천리 강산, 남북한 합친 이것을 다 빼앗긴 것 아닙니까? 그걸 생각하면, 국민들이 사실 잘 구별을 못 해요. 아, 그때 우리가 그것을 빼앗겼던 거구나, 이것을 알면, 절대 국민들이 이런 친일 잔재를 용서하지 않을 거고, 그것으로 인한 그 부작용으로 생기는 어떤 과거회귀나 남의 나라 침략하는 전쟁이 얼마나 나쁘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지겠지요.

▶정관용> 좋아져야지요. 친일인명사전에 하셨듯이, 우리가 사실 해방 직후에 제대로 친일 청산을 했더라면, 정말 순탄하게 우리 현대사가 왔을 텐데, 그걸 못해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들의 공과를 한꺼번에 적어 넣는 그런 어떤 작업으로 가고 계신 거 아니겠습니까?

▷임헌영> 예.

▶정관용> 친일은 친일, 그것은 분명히 인식을 하고. 또 현대사는 현대사대로 따로 인식을 하는 그런 성숙된 자세,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앞장서서 개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임헌영>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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