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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관련 기자회견 자료집 : 쟁점8 이승만과 김노디의 Mann법 위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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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8 이승만과 김노디의 Mann법 위반 문제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과 김노디는 무고하게 고발당했고, 무혐의 처리된 사건을 ‘뽀샵’과 기소를 통해 불륜으로몰아갔다. 이는 이승만과 김노디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인격살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1. 이승만과 김노디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한 적 없다.

2.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의문 제기

– 이승만과 김노디는 맨액트 위반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 즉 함께 주 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을했다.

–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 추방절차에 돌입하는 허가를 내렸으며, 미국 이민법에 의해 추방절차가 진행되었다.

– 추방을 전제로 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위증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을 하고 진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법적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증을 했다.(만약 위증이 밝혀졌다면 형사처벌까지 받은 후 추방됐을 것이다.)

3. 풍자를 위한 표현기법

– 이승만과 김노디의 이미지는 1920년대 시기 두 사람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패러디물로 단지 풍자를 위한 표현기법일 뿐이다. 일종의 포토 몽타쥬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다.

 

<생명의 길> 등은 <백년전쟁>이 ‘이승만과 김노디의 맨법(Mann Act) 위반’ 문제를 다룬 장면에 대해 비판한다. 이들은 <백년전쟁>이 이승만과 김노디가 무고하게 고발당했고 무혐의 처리된 사건을 ‘뽀샵’과 기소를 통해 불륜관계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노디에 대한 이민국 공문서뿐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 사건을 검토했다.

이민국 공문서에 기록된 내용은 이승만의 Log Book에 근거한 손세일의 글만 보더라도 사실 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누가 과연 맞는 것인가, 이민국 공문서는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 자료인가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사료를 대하는 올바른 해석방법이다.

<백년전쟁>은 두 자료 외에도 이승만과 김노디의 당시 행적을 기록한 자료를 추적하고, 이민국 공문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원과 당시 행적을 확인하였으며, 여기에 이승만의 맨법 위반 사실을 언급한 회고록 등 2차 사료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이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민국 공문서 하나만 가지고 전적으로 진실이라고 한다면 이건 너무 순진한 해석이다. 우리의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1) 과연 이승만과 김노디는 맨법(Mann Act) 위반 혐의에 대해 정말 무고할까

<생명의 길>과 이승만 지지자들은 한결같이 이승만과 김노디가 맨법 위반에 해당하는 ‘주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이들은 엄연히 시카고에서 새크라멘토까지 주경계를 넘는 장거리 기차여행을, 그것도 침대열차를 타고 동행했다. 이들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1920년 6월 12일 이승만 워싱턴 출발(이승만 Log Book)

→ 클리블랜드에서 김노디 등 여학생 3명과 조우(이승만 Log Book)

→ 6월 16일 시카고 한인클럽 앞에서 이승만과 김노디 목격, 이들은 서둘러 시카고역으로 이동(이민국 공문서)

6월 16일 시카고발 ‘유니언 퍼시픽’ 침대열차에 이승만과 노디 탑승(이승만 Log Book, 이민국 공문서) : 이들이 탑승한 열차는 당시 일반열차보다 비쌌고, 기차 한량 내에 여러 개의 독립적인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독립 섹션은 밤이 되면 의자대신 위아래 2층 침대로 바뀌고 각 섹션마다 커튼이 쳐져 독립적인 침실공간으로 변하는 열차였다. 당시 이런 침대열차에서 일어나는 성적 에피소드들을 묘사한 이야기도 많다.

→ 6월 19일 새크라멘토 도착(이승만 Log Book), 김노디와 헤어짐(이민국 공문서-김노디의 진술서)

→ 6월 20일 샌프란시스코 도착(이승만 Log Book, 신한민보)

위의 일정에서 보듯이 이승만과 김노디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까지 3박4일간 주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을 함께 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맨법 위반 용의자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생명의 길> 등에서는 개인적 앙심을 품은 구타펠이란 여자의 근거없는 고발에 의해 무고한 고소를 당했다며 이 장거리 동행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명백히 위의 일정을 보면 이승만과 김노디는 맨법 위반 용의자였고, 특히 이승만은 럭셔리 호텔에 묵고 백인여성들에게 돈을 물 쓰듯 했다. 이에 근거해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는 추방절차(deportation proceeding)에 돌입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내려졌던 것이다.

2) 이승만은 맨법(Mann Act) 위반 혐의로 강제추방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이민국이 위의 사실을 모두 정확하게 확인했다면 이승만과 김노디는 형사처벌을 받고 추방당했을 것이다. <생명의 길> 등은 이 사건이 얼마나 엄중한 사건이었는지 모르고 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이민법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미국 이민법에 의하면 범죄자추방은 보통 유죄판결 이후에 이루어지지만, 1910~30년대 당시 이민자에 대한 통제분위기 때문에 이민국 자유재량으로 추방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맨법 위반의 경우 검찰에 의한 기소가 아니라 이민국 내에서 추방청문회를 통해서도 법적 절차가 진행되었다. <백년전쟁>은 샌프란시스코 감독관이 이승만의 위반사실에 대한 조사와 함께 추방절차에 돌입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린 점에서 법적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후 과정은 법적 판단의 재량권을 행사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렇듯 반이승만 세력이 이승만을 무고하게 ‘치사한’ 맨법 위반으로 몰아 추방시키려고 했다면 이는 정말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자, 실제 추방되어 일제에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면 사법살인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이승만 스스로 숨기고 싶었던 사건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승만 개인의 저술을 포함해 어디에도 <생명의 길> 등 이 주장하는 대로 사건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승만과 김노디는 어떻게 처벌과 추방위기를 벗어났을까.

3) 이승만과 김노디는 미국정부를 속이는 ‘위증’과 하와이 백인 유력자들의 영향력으로 맨법 위반 처벌 위기를 벗어났다

① 이승만의 위증사실

이승만은 ‘합방 이전에 이미 이혼했다’고 위증했다. 맨법은 건전한 부부관계를 중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 속에서 제정된 법이다. 맨법은 기혼자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동행해 주경계를 넘는 것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하와이 이민국 조사관 Richard L. Halsey는 이승만이 ‘병합 이전 이혼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으로 ‘이혼불능상태’가 아니라, 이승만이 직접 병합 이전에 이혼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승만은 명백하게 병합 이전에 이혼한 적이 없으며, 이러한 사실은 이승만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백한 위증을 한 것이다.

② 김노디의 위증사실

선서를 하고 진술한 진술서에서 김노디는 시카고에서 우연히 이승만을 만났고, 우연히 같은 열차 다른 섹션에 탑승했으며, 새크라멘토에서 헤어진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앞의 이승만 Log Book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김노디는 이승만을 먼저 클리블랜드에서 만났고, 시카고 한인클럽 앞에서도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같이 시카고 역으로 이동, 함께 기차에 동승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시카고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 우연히 같은 기차를 탔다는 사실도 명백한 위증이다. 또한 새크라멘토에서 헤어진 후 만나지 못했다던 이승만과 6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같은 항구에서 하와이행 배를 탔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김노디의 승선자명부를 추적해 확인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과 김노디는 동일하게 서약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이민국 공문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두 사람 모두 명백히 위증을 했다.

③ 두 사람이 기차여행의 실상을 고의로 왜곡한 위증

김노디와 이승만은 진술서에서 시카고발 열차 탑승 당시 이승만과 같은 섹션 침대칸에 동승한 인물이 ‘고데트’라고 증언했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하와이 이민국은 침대열차에서 이승만과 김노디가 한 섹션에 동승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진술은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증언이었다. 그러나 ‘H.M.고데트’라는 인물에 대해 정밀조사한 결과, 이 여인의 신원과 당시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H.M. 고데트, 여권신청서, 미국 국가기록청 소장자료) 이 부분에 대해서 이승만과 김노디는 명백히 위증을 했다. 여기에 대한 상세한 자료 추적과정과 증거자료는 곧 영상을 통해 공개할 것이다.

추방을 전제로 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위증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을 하고 진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위에 보는 바와 같이 법적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증을 했다. 미국에서 위증죄는 중범죄다. 만약 이게 밝혀졌다면 이승만과 김노디는 위증에 따른 형사처벌까지 받은 후 추방될 사안이었다. 왜 그들은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위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건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민국 조사관 Richard L. Halsey는 현지 하와이 미국인들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예외없이 평가하고 있고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며 그를 추방할 경우 오히려 일본에 의해 체포될 것이라며 적극 변호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이승만은 현지 국민회 사람들과 각종 소송과 분규에 휘말려 있었고,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승만을 추종하는 지지세력과 하와이 현지 미국인 유력자들을 포괄하는 네트워크와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백년전쟁>은 이러한 정황에 대한 이해와 엄밀한 사료비판을 거친 객관적 사실을 종합해 맨법 위반사건의 진실을 밝힌 것이다.

4) 영상패러디에 대해

① 용의자 이미지 패러디에 대해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이승만과 김노디는 Mann Act 위반 혐의를 받은 용의자였다는 것이다. 백년전쟁은 두 사람이 주 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으로 맨액트 위반의 용의자가 됐다는 사실을 풍자하기 위해 영화의 패러디 기법을 사용했다. <생명의 길>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 용의자 사진을 찍은 것처럼 조작해서 관객을 속이려고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첫째, 관객을 속이려면 1920년대 실제 용의자 사진을 가지고 합성해야 한다.

영화가 특정 장면에서 리얼리티를 확보하려면,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1920년대 용의자 사진은 의자를 사용해 키를 짐작할 수 있게 하거나, 눈금막대 옆에 용의자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백년전쟁은 사건이 일어난 1920년대 용의자 사진을 사용하는 대신,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포스터 이미지를 패러디했다.

패러디 이미지를 사실로 믿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1920년대 실제 용의자 사진과 다른 이미지를, 그것도 유명 영화의 포스터를 패러디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둘째, 관객을 속이려면 패러디에 사용할 사진을 미리 보여주지 않는다.

백년전쟁은 패러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김노디 사진을 사전에 노출했다. 그것도 패러디 이미지를 보여주기 직전(27초 전)에 노출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찍은 사진에서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이 똑같기는 불가능하다. 배경이 달라졌을 뿐 인물의 옷과 표정이 동일하다면, 관객은 해당 이미지가 합성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백년전쟁은 실제 사진을 보여주고, 27초 후에 그 사진을 사용해 만든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패러디 이미지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실제 사진은 연사(연속촬영)를 하더라도 촬영에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표정이나 포즈가 약간이라도 다르다. 그러므로 시간차가 있는 이미지를 만들 땐 표정과 포즈가 달라야만 리얼리티가 확보된다.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노디 단독 이미지와 합동 이미지를 만들면서 동일한 사진을 사용했다. 즉, 실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② 패러디의 법적 허용한계에 대해

오늘날 패러디는 모든 창작과 표현의 영역에서 널리 애용된다. 비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고 활용하는 기법이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은 패러디를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패러디를 구사한다. 백년전쟁처럼 이미지를 합성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특정 영화 장면을 차용하면서 내레이션을 통해 패러디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에게 패러디의 대상은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 정치인은 물론이며, 예수마저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마이클 무어는 통치의 편의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공포를 조장하는 현직 대통령을 조롱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이윤추구를 비판하기 위해 예수가 ‘이윤의 극대화’ ‘은행업 규제 철폐’를 권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이미지를 뉴욕 증권거래소에 합성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무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는 뉴스는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패러디를 보호받아야 하는 표현의 영역으로 인정한다. 그 대상이 “공인이라면 맹렬하고 신랄하고 때로는 불쾌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을 수용하여야만 한다”며 패러디를 통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노디가 Mann Act 위반 혐의를 받는 용의자였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유주얼 서스펙트>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조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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