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2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문제 |
▲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은 미국 명문대학 박사학위 취득자이자 젊은 혁명가로서 이미 존경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런 적도 없다. ▲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이승만이 불굴의 독립운동가로서 미주 한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가 당시 한인사회에 떠돌았던 ‘일제에 의한 감옥 후유증’이었으며, 이승만 또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당시 이승만을 만났던 다수 미주 한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확인된다. |
이승만 측은 이승만이 대한제국 시기 감옥에 갇혀 손가락 살점이 뜯기고 뼈가 드러나는 고문을 당하고 7개월 동안 목에 칼을 쓴 채 지내기도 했기 때문에, 손을 불거나 안면 근육을 떠는 후유증을 앓았다고 한다. 또 이승만은 미국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의 개혁을 위해 투쟁한 젊은 혁명가로서 하와이 한인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구태여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본감옥에 있었다고 거짓말로 포장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백년전쟁>은 ‘미국박사’와 함께 이승만 신화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근거가 그가 일제에 의해 고문 투옥 당한 불굴의 독립투사라는 이미지에 있다고 보았다. 지금도 1) 이승만의 감옥 생활을 일제에 의한 투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며, 2) 실제 이승만 스스로 ‘일본 감옥에서 고문을 받아 손이 시리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든 아니든 간에 당시에도 손끝에 입김을 부는 이승만의 행동은 하와이 교민들 사이에 일제에 의한 고문후유증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구한말 독립협회와 관련해 5년 7개월 동안 투옥되었으며, 이는 독립운동 또는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는 당대의 소문과 무관하다는 것을 사실로 확인했을 뿐이다. 당시 이승만과 관련 있었던 하와이 교민들이 이승만 스스로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말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으며(자료집, 57~58쪽 참조),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해외에서 강력한 한인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서 일본감옥에서 투옥당한 불굴의 독립운동가라는 (사실과 다른) 대중적 신화 또는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