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방학진
[한국뉴스투데이 이성관 기자] 지난 12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재야 사학가 임종국님을 기리는 의미의 제8회 임종국賞 시상이 있었다. 수상자는 김효순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학술 부문)와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사회 부문)가 선정되었다.
故임종국선생은 ‘친일문학론’ 저술과 친일인명 사전의 모태가 된 친일파 목록을 카드 형태로 남겨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이 뜻을 이어받아 19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백년전쟁’과 ‘친일인명사전’ 등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뉴라이트 계열의 사학자들이 집필한 교과서 논란 및 유관순 열사를 교과서에서 제외하는 등의 문제와 더불어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사무국장 방학진씨를 만나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단체입니까?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이신 임종국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친일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자 뜻있는 후학들이 설립한 연구소입니다. 원래 이름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습니다. 우리가 친일파들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친일파연구소, 이렇게 할 수는 없어서 반민족문제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당시 정부가 그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해서 앞에 ‘반’이라는 글자를 뺀 것이죠. 그래서 현재 이름만보면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인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렇지 않은 것이죠.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날 때부터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시대에 살면서 다른 길을 갔던 친일파들의 행위를 밝혀냄으로써 반대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죠. 저희는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 연구소를 설립하고 운영해 왔던 것이죠. 좀 뒤늦게 출범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 세력을 실질적으로 단죄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족문제라는 것에 모두 관여한다는 뜻이 아니었네요?
네, 그런 건 아니죠. 우리 역사의 문제라는 것을 단군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모두 뒤져야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누구일까요? 우리 아버지 세대, 그리고 할아버지 세대 아닐까요?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개인과 가장 가까운 시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문제를 따지고 가다보니까 문제의 실체가 일제시대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근현대사 교육이 70%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불행히도 그 비율이 바뀌어 있죠.
바뀌었다기보다 심지어 안 가르치기도 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실제로 일제시대에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남녀평등의 문제 교육, 입시의 문제, …중략… 인종문제까지도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또 하나는 정신적인 문제도 기인하고 있다고 봅니다. 백인 우월주의라는 것에서 동남아인들에 대한 혐오주의 등 문제가 다 거기에(일제시대)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현대사 교육은 시급한 문제이죠.
그렇게 모든 문제가 일제시대에 기인했다고 하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텐데 예를 들어 주신다면?
네, 결정적인 이유는 일제시대에 기인하는 것이죠. 여성지위의 예를 들면,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단적으로 천민이었던 기생을 보더라도 그 지위가 요즘의 윤락여성과는 전혀 다른 위치였습니다. 조선시대 기생은 예능인에 가까웠고, 머리를 올린 기생은 다른 양반은 건드릴 수 없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일본의 유곽문화가 들어오면서 윤락여성들은 그저 자신의 성을 파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차원에서 보면 ‘신여성’차원의 여성운동이 이어지는 것도 예가 될 수 있겠죠? 돈과 여성의 지위를 동일 시 하는 인식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전히 그런 문제로 다투고 있죠. 여성들이 돈을 벌면 사회적 지위도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참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과서의 비중은 얼핏 공정해 보입니다. 고대 30%, 중세 30%, 근현대 30%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 심각하게 편향된 역사교육입니다. 유럽의 경우 고대의 역사는 잠깐 배우고 현실과 가까운 근현대사의 문제에 집중하는데 반해, 우리는 단군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해서 흥선대원군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교과서를 덮지 않습니까? 외국의 경우 바로 전전 대통령까지 자세히 배웁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현실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죠. 현실문제에 전혀 관련성이 없는 교과서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쉽게 말해 과거 독재 정권에서 국정교과서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교과서 편성을 했다는 것이죠. 그런 일을 현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것이죠.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하셨는데, 이제는 독립운동가를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으신지?
그것은 이미 많은 뜻있는 연구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주관해서, 수십억 규모의 연구를 통해 독립운동가 열전을 제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함으로써 관련 연구에 영감을 주고 활성화 시키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것이 저희의 연구목적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친일파의 정확한 기준이 뭐죠?
첫 번째는 시기의 문제가 있겠죠. 일제에게 국권을 피탈 당한 시기를 전후해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희는 그 시작 시기를 러ㆍ일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러ㆍ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에 본격적으로 일본의 침략의지가 두드러졌고, 간섭도 심해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분야의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음악인에게는 음악으로 문학인에게는 문학으로 친일행위를 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자발성과 적극성, 지속ㆍ반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선친일 후 항일은 항일입니다. 그 반대로는 친일이겠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힘들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자가 된다는 인식과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연구가 있나요?
독립운동가는 후 삼대가 망하고 친일파의 후손은 삼대가 흥한다는 구절이 담긴 시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3대가 넘어서 4대, 5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것을 지금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돌이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에는 친일파 재산환수 위원회가 만들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친일행위로 불하받은 것이 확실한 재산을 국고로 환수시키겠다는 취지였죠. 그 활동의 과정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악질 친일파 후손들의 거주지는 주로 강남 서초, 용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언론에 나왔습니다. 반면에 저희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설문을 했는데 그 결과 학력이 평균적으로 중졸, 생활정도도 중하, 하상 정도가 가장 많다라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돌려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만약 부와 권력을 가졌다면 적어도 명예까지 양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설립취지도 좋고 활동도 활발한데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중략… 언론은 이런 부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슈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가서 발굴하고 계몽하는 기능까지 할 수 있는 것이겠죠. 참여정부 때까지는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하면, MB정권과 박근혜 정권에 와서는 다시 역사문제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들이 역사에 기인한 것이구나, 설마 했는데 실제로 역사를 건드리는구나 라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하고 생각이 되는 것이죠. 물론 그런 시대를 거치지 않고도 각성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 정권을 거치면서 오히려 저희 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회원도 크게 늘었어요. 이 시대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역사가 진보될 때도 항상 나아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보할 때도 있고 퇴보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희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지만 큰 방향성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와 같은 사회단체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같은 인식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많이 알았으면 좋겠는데…
어찌보면 모르는 게 당연하죠. 교육하지 않잖아요. 결국은 교육문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죠. 헌법에서도 명시된 부분을 감추고 공론화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독립운동가가 12000여명인데 사실 이것은 공영방송에서 하루에 한분씩 매일 방송해야 되는 문제라고 합니다.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저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언젠가 그런 것들이 실현이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꾸준히 여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료를 원할 때 따로 검증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이죠.
-중략-
부정적인 역사라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인데, 우리가 상식적으로도 틀린 답을 다시 보고 배우지 맞는 답을 또 보진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서 틀린 답을 내렸던 시절을 기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4-11-14> 한국뉴스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