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성명서]교과부는 ‘역사’ 교과서 졸속 재집필 지시를 철회하고 집중이수제에 따른 역사교육 붕괴 대책을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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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교과부는 ‘역사’ 교과서 졸속 재집필 지시를 철회하고


집중이수제에 따른 역사교육 붕괴 대책을 마련하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5월 12일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역사, 한국사 개정안을 확정ㆍ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중학교 ‘역사’는 근현대 부분을 한 단원 추가한 정도에 그쳤으나, 고등학교 ‘역사’는 선택과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로 과목명이 바뀌면서 세계사 부분을 삭제하고 전근대 부분을 추가하는 등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교과부의 이번 역사, 한국사 교육과정은 졸속으로 마련ㆍ확정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청회는 반공개적인 세미나 형식으로 한 차례 열렸을 뿐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절차는 전혀 없었고, 교육과정 심의회도 심의 당일에야 회의 자료를 배포하는 등 지극히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졸속으로 고등학교 1학년 ‘역사’ 과목이 ‘한국사’ 과목으로 바뀐 것은 심각한 퇴행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09년 12월 역사학계의 여러 단체들이 ‘역사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역사 교육의 계열화 원리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한국사 교육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이번 개정안은 고등학교 과목 전체를 선택과목화하고 ‘역사’를 ‘한국사’로 바꾸어버렸다. 자국사와 세계사의 경계를 넘어 역사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시작도 못해보고 싹이 잘리고 만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과정이 개정되었으면 그에 맞춰서 교과서를 다시 제작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교육과정에 맞춰 이미 검정 통과된 ‘역사’ 교과서를 ‘한국사’ 교과서로 수정, 재집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지난 5월 6일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쓰여진 고1 ‘역사’ 교과서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해 6종을 통과시켰다. 이 검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탈락 사유도 제대로 밝혀주지 않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또 이의신청을 하려면 재검정 비용을 모두 부담하도록 해 이의신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황당한 점은 검정 통과된 교과서에 대해서 5월 12일 확정된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을 토대로 5월 14일에 수정ㆍ보완 지시를 내린 것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해서 집필하고 검정 절차를 마친 고1 ‘역사’ 교과서를, 단기간에 땜질식으로 수정 보완해 2009 개정교육과정 ‘한국사’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바뀌면 최소한 3년 정도 여유를 갖고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이 순리이자 상식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교육과정을 마구 바꿔놓고 개정 이전 교육과정에 의해 집필, 검정된 교과서를 수정 보완해 새 교육과정의 교과서로 바꾸어 쓰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불법, 탈법, 혹은 편법적인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수정 보완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졸속으로 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교과부의 지시에 따르자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종래의 ‘역사’ 교과서 가운데 전근대사를 1개 영역에서 2개 영역으로 늘리고 근현대사를 8개 영역에서 7개 영역으로 줄여 전체 분량의 1/3을 재집필해야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6월 15일까지 한 달 안에 이 작업을 마칠 것을 지시했다. 현재 검정에 합격된 고1 ‘역사’ 교과서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동안 집필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이런 교과서를 한 달 안에 완전히 뜯어고치라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되는 소리이며, 졸속으로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최근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적용에 맞춰 학교별 교육과정을 짜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학기당 8과목 이상을 개설하지 말라는 교과부의 방침에 따라 역사 과목도 집중이수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2007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고1 역사 수업시수를 한 시간 늘린다는 약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역사 과목은 한 학기 혹은 1년 간 집중이수하고 더 이상 배우지 않는 과목이 되거나 심지어는 아예 선택되지 않는 과목이 될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사 외에 세계사나 동아시아사는 그 명맥마저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2007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역사과목이 독립되면서 이제 역사 과목을 역사 전공 교사가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졌으나, 2009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집중이수제가 실시되면서 이 마저도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닐 까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로 역사교육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셈이다.


교과부는 2009 개정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역사교육에서 ‘독도’ 교육을 강화한다며 생색을 냈다. 그러나 역사교육 그 자체가 고사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독도 교육 강화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2010년에 역사교육을 파탄시키는 이런 비상식적인 조치들이 강행되고 있다는 점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뿌리부터 무너뜨리는 이런 상황에 크게 우려하며, 역사교육의 붕괴를 국민들과 함께 막아내기 위해 교과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교과부는 졸속 수정 지시를 즉각 철회하고, 현재 검정에 통과한 고1 ‘역사’ 교과서를 최소한 3년간 사용하게 하면서, 그 동안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한국사’ 교과서를 신중하게 집필하도록 하라!


1. 교과부는 집중이수제 실시에 따른 역사교육 붕괴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고, 그 대안을 조속히 수립하라!


1. 교과부는 역사를 전공한 교사들이 역사를 가르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라!




교과부는 우리의 상식적인 요구에 성실히 답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외면하고 끝내 편법적인 방식으로 역사교육을 농락한다면,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 뿐만 아니라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힐 것임을 엄숙히 경고한다.




2010. 5. 29.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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