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논평] ‘교과부장관의 교과서 수정권한 부여’ 교육법개정 입법예고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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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검정을 거친 교과서를


교과부 장관이 수정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 21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를 내놓았다. 이번 입법예고의 핵심은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을 법제화한 것인데, 이런 입법 시도는 2010년, 2011년에 이어 벌써 3번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논란이 많은 입법을 무리하게 시도하는 까닭이 의심스럽다. 


이번 입법예고안은 그 동안의 비판을 의식해 몇 가지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1. 일단 ‘교과용도서의 검정 또는 인정을 받으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검정 또는 인정을 신청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현재 인정교과서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편찬, 심사하여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교육청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정교과서를 만들어 학교 교육에 활용하고 있고, 다른 시도 교육청도 지역 현실을 반영한 인정교과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하위 규정에 의해 위임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인정교과서에 대한 권한도 모두 교과부장관이 갖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자치의 확대라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2. 이제껏 공고 수준에서 제시되었던 검정 및 인정 기준을 법에 명시했다. ‘1. 교육과정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할 것, 2.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내용일 것, 3.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할 것, 4. 지식재산권을 존중할 것, 5. 그 밖에 대통령령이나 공고로 정하는 교과목별 세부기준을 준수할 것’을 규정한 것이다. 이런 규정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원래 정부나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조항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을 거세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의심된다. 이른바 ‘좌편향’ 딱지를 붙여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 목소리를 억누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욱이 교과목별 세부기준을 대통령령이나 공고에 위임함으로써 교과부장관이 자의적으로 새로운 기준을 추가할 위험이 여전히 매우 높다.


3. 이제껏 없던 감수 조항이 새로 생겼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교과용도서의 편찬, 검정, 인정 단계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감수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감수를 위하여 감수기관을 지정할 수 있으며, 감수의 대상, 범위,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법적 절차인 검정 절차 이외에 감수 절차를 따로 두도록 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교과부 장관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임의의 감수 기관을 지정해 특정 목적을 위해 감수를 진행하고 이를 근거로 교과서 내용을 고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중의 검열로 작용할 것이다.


4.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교과부장관이 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이는 2011년의 입법예고안이 교과부장관의 수정 권한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 오기, 오식 기타 객관적으로 명백한 잘못을 발견한 경우, 2. 통계, 사진, 삽화의 갱신이 필요한 경우, 3. 학계에서의 객관적인 학설 상황이나 교육 상황에 비추어 학문적인 정확성이나 교육적인 타당성을 결여한 경우, 4. 교육과정의 부분 개정 등 사정변경이 발생한 경우, 5. 검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발견한 경우 등에 수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1, 2의 경우는 받아들일 만 하나 3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역사를 비롯해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명백히 ‘객관적 학설’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며, ‘교육적인 타당성’이라는 규정도 매우 자의적이다. 지난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 명령 당시에 학계를 대표하는 수십 개의 역사연구단체들이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2009, 2010, 2011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역사연구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이런 ‘학계의 중론’을 무시하고, 수정 명령이 내려졌고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는 뉴라이트 역사단체로 의심되는 ‘한국현대사학회’라는 신생 역사연구단체의 의견이 수많은 다른 역사연구단체의 의견을 압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3 항목은 자의적, 주관적, 정치적 판단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5 항목도 문제가 있다. 검인정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검인정 과정에서 걸러내야지, 검인정을 통과시켜놓고 나중에 다시 그런 내용이 발견되었으니 수정하라고 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검정에 참가한 전문가가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교과부장관이 나중에 발견한다는 것은, 발견이 아니라 꼬투리 잡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번 입법예고안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의 검정을 거쳐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는 최소한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정말 피치 못할 사정, 즉 오기, 오식, 명백한 잘못이 발견된 경우나 통계, 사진, 삽화의 교체가 필요한 경우에만 수정이 인정되어야 하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정치인이자 관료인 교과부 장관이 자의적 판단으로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이번 입법예고안은 교과부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을 여전히 광범위하게 인정해주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진 입법예고안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역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시민, 전문가들과 함께 입법 저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교과부는 소모적인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이런 법률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다. 국회도 이번 입법예고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잘 알고 국민의 입장에서 입법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 당선 이후 가뜩이나 암울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입법예고안이 강행된다면 새 정부는 역사와 전쟁을 벌이려는 정부로 낙인찍힐 것이다. 새 정부의 성공적 출범을 위해서라도 이번 입법예고안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2013년 1월 22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공동대표: 백석근(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신태섭(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김정훈(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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