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기자회견] 박근혜 정부는 헌법정신 위배되는 국정화 논의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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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박근혜 정부는 헌법정신 위배되는 국정화 논의 즉각 중단하라


 


2013년 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물론 엉터리 교과서를 쓴 필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부실 검정, 봐주기 검정을 한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의 책임도 컸다. 그런데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랄 교육부는 적반하장으로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엉뚱하게 ‘국정을 포함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는 검정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가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검정 제도를 악용한 데 교학사 교과서 사태의 본질이 있다.


백번을 양보해 국정제도로의 회귀를 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했다면, 교육부는 국정화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 9개월 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필요성에 공감할만한 어떤 합리적인 방안이나 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8월 26일, 교육부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에 대해 반대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에 단일한 역사 인식만을 인정하는 국정 교과서를 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유신 시대로의 회귀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계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토론회가 열리기 직전에는 현장 역사교사의 97%가 국정제를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우리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론’이라 믿는다.


오늘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연구진의 작성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토론회가 교과서 발행 체제 발표를 앞두고 진행되는 마지막 절차라면 당연히 전문가들이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청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보수적인 학부모 단체와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발표자와 토론자에 대거 포진시켰다.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 이외의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 종북 등으로 몰아세우고 수능 필수를 빌미로 국정 교과서 도입을 주장할 것이다. 교육부가 원하는 국정 도입 이유가 겨우 이것이라면, 교육부는 스스로가 한국사 교과서를 이념 전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발표자와 토론자가 그토록 좌편향, 종북 딱지를 붙이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검정을 진행한 교과서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수정심의위원회를 급조해 교학사 교과서 이외의 7종 교과서에 수정명령을 내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모두 관철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친 한국사 교과서를 지속적으로 좌편향, 종북으로 규정하겠다면, 마땅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규정해야 할 것이다. 


<2010 교과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국정·검정 중심의 교과서 발행 제도를 인정 중심의 발행 제도로 정착시켜 온 교육부가 유독 한국사 교과서만을 국정화하겠다고 나선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집권당인 새누리당도 국정화를 당론으로 정하지 못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번 국정화 논란에는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실려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교과서 발행 체제의 자율화 정책을 포기한 교육부도 반성해야 하지만, 교과서를 정치 논리로 바라보며 간섭하는 청와대도 자성이 필요하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4·19민주이념의 계승’,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에 따르면 독립 운동 정신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 통일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현행 교과서 검정제는 한국 민주화 운동이 거둔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검정제를 폐기하고 국정제로 회귀하겠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더욱이 헌법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중립성의 핵심은 국가가 교육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금하는 데 있다. 국가가 직접 교육과정에 개입하는 교과서 국정제는 학생의 알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 교사의 학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반헌법적일 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교육부가 교육을 정치와 이념의 도구로 삼기 위해 국정화를 밀어붙인다면 입으로만 법질서의 존중을 외칠 뿐 스스로는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깨뜨리는 반헌법적·반국가적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꼴이다. 


교육부는 10월 중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에 관한 최종 고시를 한다고 밝혔다. 최종 고시의 내용이 국정화로의 퇴행이어서는 안 된다. 편수 기능 강화 등 교육부의 개입 강화를 통한 사실상의 준국정화 시도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현재의 부실한 검정제를 학계와 교육계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내실 있게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믿으며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는 시대 역행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유발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데 대해 사과하라. 


2. 교육부는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계의 국정화 반대 공론을 수용해 국정화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3. 우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헌법 소원 등 더욱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


 


2014년 9월 25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김정훈(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


   신승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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