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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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검찰의 서슬이 시퍼렇다. 그 어떤 잘못도 용납할 수 없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호령한다. 법을 어겼으면 조목조목 따져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에 수십억을 독식한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있다. 수사를 하기도 전에 여론재판부터 하는 이유는 이 변호사들이 우리 사회 인권의 보루였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불의에 눈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끌려가 모진 수사를 받고 재판정에 섰을 때,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외로울 때 곁을 지켜주고, 법적 지원을 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민변은 우리 사회 약자의 동반자였고,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에게는 가장 큰 저항세력이었다.

민변 소속 6인의 변호사에 대한 수사 명분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재직 당시 취급했던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 소송을 대리하고, 수임료를 받아 변호사법 위반을 했다는 혐의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분노할 일이다. 먼저 이들 변호사들이 과거 관계한 사안이 무엇인지부터 되새겨보자. 두 위원회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의문사위는 과거 정권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분명한 사건들을 조사하는 국가기구였다. 진화위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의 희생과 과거 정권에서의 의문사를 포함한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였다. 여기서 인권침해사건은 조작 간첩사건, 납북어부 사건,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포괄한다. 이 많은 사건의 피해자, 희생자들은 누구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는가. 이들은 수사기관을 통해 범죄사실이 조작되었고, 검찰에 의해 강제로 기소되고, 법원의 판결을 통해 중범죄가 되었다.

최종길 교수는 의문사위 조사 결과 전까지는 유럽거점간첩단 사건의 수괴였다. 서울법대 교수이며, 선구적 민법학자인 그가 간첩이 되는 과정에 기여한 자 누구인가. 간첩의 누명을 쓰고 사망한 그의 진실을 밝혀낸 자는 또 누구인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인혁당재건위 8인 열사는 누구에 의해 범죄자가 되었는가.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대전교도소전향공작관련의문사사건’, ‘삼척고정간첩단사건’, ‘장준하선생 의문사 사건’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무수한 사건은 누가 조작하고 누가 감옥에 가두었는가.

이들을 범죄자에서 피해자로 바꾸어 놓은 것은 국가의 반성을 통해 만들어진 의문사위, 진화위를 비롯한 조사기구를 통해서이다. 수십 년 동안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쓴 채, 가족 모두 풍비박산 난 채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준 사람은 바로 이 기구에 참여한 변호사들이다. 소위 과거사라 부르는 사건의 당사자들과, 독재정권의 피해자이자 유족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역사정의실천연대와 우리 피해자 단체들은 검찰의 변호사법 위반 수사와 이에 대한 기초사실의 확인조차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 분노한다.

수십 년 동안 재조사를 요구하고, 검찰청 문이 닳도록 찾아가 진정하고, 청와대에도 청원했지만 단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국가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과거사 사건을 맡아준 변호사들을 단죄하겠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2000년 출범한 의문사위에서부터 2010년 문을 닫은 진화위까지 근 20여 년 동안 조사해야 할 정도로 국가공권력에 의한 피해자가 많았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종합해 조사보고서를 내면서,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10여 년 동안 계속해서 국가의 반성과 책임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무엇 하나 받아들여서, 개선한 내용이 없다.

결국 수십 년 동안 고통 받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하고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소송이란 또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인가. 누가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는가. 빨갱이로 낙인 찍혀 인생이 파탄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하는데, 누가 나섰는가. 결국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앞장서게 되었다. 그래도 국가기구에서 조사에 나섰던 변호사가 안면이 있어 가깝고, 투쟁 현장에서 얼굴을 익힌 변호사들이 살갑다. 그래서 변호사와 피해자는 사건 수임 관계를 넘어선 가족과 같은 관계인 것이다.

유족이나 피해자들이 오랜 동안 동지적 관계에서 함께 실천해 온 변호사들에게 깊은 신뢰를 갖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간곡하게 소송을 부탁한 것이다. 인지상정 아닌가. 법을 위반한 내용이 있으면 따져보고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20여 년의 과정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폭리를 취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사건을 수임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전 사안으로 이제 와서 사후 수임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수사를 개시한 예는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다.

검찰의 억지는 과거 공권력 남용과 오용으로 얼룩진 역사가 양심적인 변호사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속속 드러나는 것에 대해 반성 대신 복수의 칼을 빼어든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보복형 수사이다. 무엇보다 이 소송의 대상이 바로 검찰과 법무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또한 국가상대 소송의 송무를 서울고검이 맡고 있고, 이번 수사가 서울고검에서 시작해 특수부로 확대된 수사라는 점을 보면, 소송의 한쪽 편 당사자가 반대편 당사자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검찰의 칼끝은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한국 법조의 한심한 현실에서 마지막 법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고 있는 민변을 흠집 내어 무력화시키려는 공작에 가깝다. 과거 유신독재가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한국 사회를 민주주의의 불모지로 만들었듯이, 이들 검찰은 법의 정치적 남용과 오용을 통해 독재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양심적 법조인과 시민들이 가꾸어 온 민주주의 싹조차 뽑아버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그 유전자를 내면에 간직해 온 검찰이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사용해야 할 공공의 위임받은 권한을 도리어 국민을 겁박하고 국민의 편에 선 민변조차 와해시키려는 데 사용하는 이 작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최근 법무부와 검찰이 보여주는 반민주적인 행패를 볼 때 유신독재의 유전자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한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 대신 또 한번 역사범죄를 저지름으로써 검찰은 다시는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의 길로 나서고 있다.

검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신 차리고 바로 보아야 한다. 모름지기 모든 법치나 정치는 인간의 참된 모습을 구현하는 바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역사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는 대신 정치적 음모에 찬 엉터리 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민주시민사회의 가치 수호자로서 자기 정립으로 돌아서는 것만이 과거 역사에 대한 자기반성의 출발이 될 것이다. <끝>

2015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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