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논평] 김정배 국편 위원장에게 올바른 국정교과서 편찬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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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김정배 국편 위원장에게 올바른 국정교과서 편찬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1. 12일 교육부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 했다. 이날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직접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역사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하고자 불가피한 선택”을 하였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에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고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라는 생소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교육부장관은 “국편을 국정교과서 책임편찬기관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행히 우리 김정배 위원장님이 균형 있게 잘 하시리라고 생각한다”며, 기대감 또한 감추지 않았다.

2. 그러나 김정배 위원장에게 올바른 국정교과서 편찬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균형 잡힌 교과서 편찬에 필요한 덕목인 업무의 공정성과 학문적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업무 수행의 공정성에 관해서는, 이미 이명박 정권 때 그가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협의회(교협)에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교협은 한중연 원장 임기 만료 2개월을 앞두고 김정배 원장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독선적인 인사행정’등으로 인한 공정성과 도덕성 위배 행위를 조목조목 지적하였다(2011.2.25.). 교협은 성명서에서 “재임 기간 동안 보여준 김정배 원장의 독단적이고 파행적인 운영은 본원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였”기에, 연임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3. 김정배 위원장의 학문적 전문성도 회의적이다. 2013년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이 한참 고조될 때, 김 위원장은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교학사교과서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였다(2013.9.10.). 그는 교학사교과서 파동이, “(교학사) 필자들의 역사관이 지난 10여 년 간 우리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이 분명하다”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왜곡 보도되었던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지금도 사과와 반성은 없이 공격이 가열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 교학사 『한국사』가 ‘사관’이나 ‘사실’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애꿎게 ‘정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며, 구하기에 팔 걷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교학서교과서는 역사단체로부터 “학생들이 시험문제 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저 품질(경악할 수준의 오류들)”의 ‘날림 교과서’라는 판정을 받았다. 교학사 『한국사』는 “조악한 문장, 국민상식을 벗어나는 비뚤어진 역사관(친일미화, 독재찬양)에 바탕을 둔 왜곡과 편향, 전도된 가치관으로 채워진” ‘불량 역사교과서’라는 게 역사학계의 평가였던 것이다.

4. 12일 김정배 위원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1919년인가, 1948년인가”라는 질문에 “그 얘기를 하면 불필요한 얘기가 나온다. 학계의 큰 문제”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헌법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은 ‘학계의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최근 ‘대한민국 건국시점’에 대한 국민인식을 여론 조사한 결과, 국민의 3분의 2가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응답하였다. 국민 대다수가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세운 나라임을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관장하는 기관의 우두머리인 김 위원장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로 바꾸자’는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에 경도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5. 더욱 심각한 것은 김정배 위원장의 정치적 편향성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2014년 4월 뉴라이트 등 보수적 성향의 인물들이 주로 참여한 한 세미나에서, 한국사 교과서 집필 방향과 관련해 “국가 지도자의 경우 어느 하나의 과오를 내세워 독재자나 악인으로 폄하하는 것은 역사학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다”면서, “인물 특히 지도자 품평에 공7, 과3의 상식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바 있다(2014.4.9.). 여기서 ‘공7, 과3’의 국가 지도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공식적으로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진 인물을 ‘공과’를 기준으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을 통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궤변일 수밖에 없다.

6. 국편 위원장 취임을 전후해 보인 일련의 행태, 그리고 어제 박근혜 정부의 국정제 강행에 발맞추어 내뱉은 발언에 비추어볼 때 김정배 위원장은 더 이상 ‘균형’을 갖춘 학자가 아니다. 해바라기가 양지만을 향하는 것처럼 알량한 권력을 따라 곡학아세하는 어용 지식인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컨대 양식 있는 역사학자들 가운데 김정배 위원장이 진두지휘하는 국정 교과서 작업에 동참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건국’ 타령이나 늘어놓는 뉴라이트 내지는 거기에 동조하는 권력지향적 어용 지식인에 의해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정배 위원장은 교육부가 국정제 방침을 밝힌 12일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과 관련해 “근현대사에는 역사가만이 아니고 정치사·경제사·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들을 초빙해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사·경제사·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이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지는 분명하다. 바로 뉴라이트이다. 뉴라이트가 오래 전부터 역사학자들만이 역사 교과서를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김정배 위원장의 발언은 역사학계의 주된 경향과는 동떨어진 얼토당토않은 교과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국가의 이름으로 만들겠다고 실토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정배 위원장에게 조금이라도 학자로서의 양식이 남아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제 강행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끝>


2015년 10월 13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변성호(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최은순(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

  한상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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