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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논란 인물들, 어린이의 우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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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에 살고 있는 ㄱ씨는 집 근처 서울대공원 주변을 산책할 때마다 한 쌍의 동상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불편하다. 두 개의 동상 중 하나는 일제시대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척살한 조명하 선생의 동상, 또 하나는 친일파 논란에 휩싸인 인촌(仁寸)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의 동상이다.

ㄱ씨는 “어떤 사연으로 이 두 사람의 동상이 함께 자리를 하게 됐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봄·가을 소풍이나 수학여행 기간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동상을 철거하든가, 철거가 불가능하다면 어디 안보이는 구석으로 옮겨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

67주년 광복절인 15일, 친일 논란을 빚고 있는 인물들의 동상은 주요 공공시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동상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세워져 있어 교육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공원 내 세워진 인촌 김성수 동상


서울대공원의 인촌 김성수 동상은 인촌기념회가 1991년 11월 인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했다. 인촌 김성수는 일제시대 전국 일간지에 일제의 징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인사로 지목됐다. 유족들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법원은 인촌의 친일행적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서울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에도 친일 논란 인물의 동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에는 유관순, 조만식 등 애국지사 동상과 함께 소설가 김동인 등의 동상도 있다. 김동인은 일제시대 ‘매일신보’에 글을 기고, 일제의 징병·징용참여를 적극적으로 선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 ‘백마강’에선 우리나라와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 나라나 다름없다는 내용을 다룬 바 있다. 법원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중외공원(옛 광주 어린이대공원)에는 친일인사로 지목된 안용백 전 전라남도 교육감의 흉상이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안 전 교육감은 일제시대 친일단체인 ‘녹기연맹’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친일잡지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는 글을 기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인사로 지목됐다.




어린이대공원 내 세워진 김동인의 흉상

문제의 동상들을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네티즌은 “자칫하면 어린이에게 친일 인물을 ‘위대한 인물’로 주입시킬 위험이 있다”며 “대공원 같은 공공시설에 이런 동상을 세우는 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그간 어린이 시설 내 친일인사 동상의 문제를 수차례 지적됐으나 실제 철거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10월 서울대공원 측에 인촌 김성수 동상의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 측은 “현재 인촌과 관련된 친일 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라 최종 판결 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도 지난해 3월 중외공원에서 안용백 흉상을 철거하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측은 “아직은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유족 측 의견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철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들은 상당히 많은데 아직 국가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리가 돼야 우리도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은 동상의 관리 주체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당초 “문제의 동상들은 지방보훈지청에서 관리하는 것”이라며 임의로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확인 결과 보훈지청이 관리하는 것은 유관순, 조만식, 이승훈 등 6명의 동상 뿐이었고 김동인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자 어린이대공원 측은 “문제의 동상들이 보훈청 관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그래도 폐쇄 여부는 우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서울시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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